어느 어리석은 여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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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보니 이 일이 떠올랐다.
오래 전 일이지만 그 때 정리해놓은 걸 읽으며 다시 기억해본다. 어두운 조명 아래 그는 풀린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머리와 귓가에 얼굴을 파묻으며 좋은 향이 난다면서 숨을 들이키고 뺨에 몇 번 키스를 하고. 내가 고개를 그에게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 내 입술에 키스를 시도했다. 뭐 키스쯤이야. 한동안 못 했으니. 그는 왼손으로 내 오른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고 이내 단추를 풀어 브라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흠짓. 내가 이런 터치를 원했던가? 이윽고 내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옆 테이블로 나를 이끌었다. 잘 보이진 않지만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있어 보일 수 밖에 없는 자리. 뭐가 급했는지 그의 손과 입술은 나를 과감하게 탐하려 했고 나는 피했다. 가끔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싫었다. 그가 풀어놓은 단추도 다시 채웠다. 내가 피하는 걸 보다못한 누군가가 답답했는지 우리를 골방으로 밀어넣었다. "여기 이런 데가 있었어?" 여러 번 와봤다던 그가 놀라워했다. 난 당연히 처음 보는 곳. 그는 나를 소파에 밀며 눞혔다. 한 마디로 발정난 상태. 난 이 사람과 섹스할 준비가 되어있었는가? 그저 술 한 두 잔하며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얘기나 하다 와야지 했던 나는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 원치않는 방식으로 섹스를 하게 되었다. 왜 난 더 단호히 '그만해'라고 하지 못했을까. 그가 씻지 않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내가 '콘돔 없으면 안 된다'라고 했건만 막무가내로 삽입할 때 왜 더 단호하게 싫다 그만하라고 밀어내지 못했을까. 그는 관계하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 - 본인 판단으로 - 성병이 없다고 했다. 피스톤을 시작한 그를 멈추고 싶은 마음에 '당신은 괜찮아도 내가 뭐가 있을 수도 있지않냐'고 반문했지만 상관없단다. 지루라고 했다. 그저 빨리 끝내야겠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의식적으로 질수축을 하며 그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끝나기를. "너 내 꺼 하고 싶어. 우리 다음에 방 빌려서 하루종일 하자. 먹고 섹스하고 마시고 섹스하고. 아침부터, 어때?" "....." "나한테 번호 줄거야?" "아니....." 그는 속도를 높이더니 질싸를 하겠다고 했다. 정말 단단히 돌았구나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절대 안 된다고 하며 그를 밀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난 벌떡 일어났고 그는 소파에 사정을 했다. 오랜만에 시원하게 금방 쌌다며 개운하단다. 옷을 추스리고 방에서 나왔다. 혼란스러웠다. 집에 가야겠단 생각밖에 없었다. 그가 "먹버인가?" 라고 혼잣말 하는 걸 들었다. 대체 내가 뭘 먹었다고 생각하는걸까? 역시나 보호되지 못한 섹스는 후유증을 동반한다. 다음 날부터 간지럽고 따끔거렸다. 그렇게 난 급성질염에 당첨되어 약을 먹어야 했고 다시 수절할 이유가 생겼다. 질염만 걸린거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 그 때 난 왜 칼같이 행동하지 못했는가. 이런 상황을 제 3자로서 들었을 때 그 누구보다 분개하고 나쁜 새끼라며 열폭할 나인데. 그를 원망한다. 골방으로 우리를 밀어넣은 그 사람도 원망한다. 저항하지 못했던 나 자신도 원망한다. 허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다시는 그를 볼 일은 없을 것이고 앞으로 그런 상황에 나 자신을 처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싫으면 싫다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상대가 화내더라도 밀쳐낼거니까. 스스로의 투미함에 답답하지만 남녀불문하고 이 글을 읽는 다른 이가 뭐라도 얻어갈 수 있으면 난 족하다. 싫으면 싫다고 단호하게 거절하길. 이건 나에게도 하는 주문이다. 그리고 상대가 싫다, 안 된다라고 하면 멈추고 그만 하라. + 그가 콘돔을 썼더라면 상황이 달랐을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괴로움이 덜 했겠지. ++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건강도 평정심도 되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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