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프고, 씁쓸하고, 공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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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하고 나서 잠옷을 안가지고 들어온걸 깨달았다.
어쩌지. 이 시간이면 남편은 잠들었을 시간이고, 침실 방문은 닫혀있다. '역시 자는구나' 생각하고, 알몸으로 나와서 돌아서는 순간 옷방에서 나오는 남편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0.5초 뇌정지. 그리고나서 나도 모르게 "어머 깜짝이야." 소리치며 욕실로 다시 뛰어들어갔고, 당황한 남편도 시선을 피하면서 나오던 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에 안방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역시 자연인 모습 그대로인 채 나와서 옷방으로 뛰어들어가 잠옷을 걸친다.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나신을 보여준게 얼마만이던가. 3년은 당연히 넘었고, 4년 됐나? 5년? 마지막 섹스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살갗이 스쳐본 기억도 없다. 남편도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아 보였다. 한여름에 현관문 열어놓은채로 샤워하고 나왔는데, 지나가던 옆집 아저씨랑 마주치면 나올법한 반응이지 않았을까 싶었던 장면이었다. 그렇게까지 정색하며 놀라고 당황할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그게 살부비며 20년 가까이 지내온 남편과의 상황이었다는게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는 이내 씁쓸해졌고, 공허해졌다. 아..... 우리가 이제는 진짜 이웃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구나. 이웃하고는 마주치면 웃으면서 안부인사라도 하고, 맛있는게 있으면 나눠먹기라도 하지. 우리도 뜨겁게 사랑하고 너 아니면 죽을것 같이 가슴 절절하던 때가 있었던거 같은데... 너와 내가 어리석었던건지, 세월이란게 원래 그렇게 무서운것인건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이제 너랑 나랑은 이렇게 되버렸다. 아기원숭이 실험이 생각났다. 갓 태어낸 아기 원숭이에게 금속 모양으로 만들어진 엄마원숭이와 솜을 채워 푹신한 인형 모양으로 만들어진 엄마원숭이에 매달려 우유를 먹도록 했는데,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금속 엄마 원숭이에게 매달려 우유를 먹던 아기원숭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질병들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어버렸다는 실험. 사람의 온기와 마음이 부쩍 그리워지는 밤이다. 나도 시름시름 않다 죽어버리면 어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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