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10
|
|||||||||||
|
|||||||||||
-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드디어 새해가 된 기분이에요. - 입장이 분분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결과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사상의 자유로부터 나오되, 그 사상의 자유는 다른 사상을 배척하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적인 개인들, 단체들이야 싫거나 미운 어떤 입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공적인 수준에서 그것을 허용할 수 없지요. - 저는 어쩌다보니 벙커원 인근에 삽니다. 벙커원이 이전하더니 저기 있더군요. 계엄령이 선포된 날 생방송으로 보았고, 윤의 독랄한 가학의 의지를 뿜어내는 언사에 경악했습니다. 벙커원에 군인이 배회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지간한 한국 남성은 다 군인이기에 무장한 군인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잘 압니다. - 잠을 못이루며 밤새 추이를 지켜보았습니다. 계엄 해제가 의결되어도 윤은 한동안 묵묵부답이었고, 거부권 행사를 검토한다는 뉴스가 들려왔을 때 기함했습니다. 탄핵 의결을 압박하기 위해 집회를 찾았습니다. 첫 의결이 무산되었을 때, 저는 여의도 한 복판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윤은 미치광이이고 그의 곁에도 더 미친 놈이 아닌 이상 붙어있기 어려울 것이므로 어느 장성이 그에 부응할 정도의 미친 놈이라면 여의도에 미사일 폭격을 퍼부어 다 날려버리고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과민했을까요? 국회의 조사를 통해 드러난 것은 대량학살과 전쟁 불사 내지는 환영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첫 부결 날에는 오버였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었지만 드러나는 상황들은 모두 제 공포감이 허구가 아니었음을 증명할 뿐이었습니다. - 내란은 확정적이고 외환은 좀 더 보아야 하겠지만 사실상 외환도 기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란과 외환, 어려운 말입니다. 전 그 상황을 간단하고도 명확한 단어로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대량학살 착수였고 저지된 것입니다. 어쨌든 미수가 되겠지만 군을 투입하고 체계적인 특정된 다수(정치인과 언론인들)와 불특정 다수(좌파로 묶어버린)에대한 살인 계획이 있었죠. 그게 대량학살입니다. 투입된 순간부터 착수한 것이고 해제와 군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저지된 것이라 미수라 할지라도 제가 보기엔 감경요소가 없습니다. 어쨌든 죽은 사람이 없지 않냐? 이 상황이 그냥 술자리에서 병깨고 거꾸로 쥐는 취객과 동등하게 취급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 그러다 서부지법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여기도 가깝습니다. 벙커원보다는 덜 가깝지만 걸어서 20분이면 가는 거리죠. 경약했습니다. 이런 폭동이 정말로 일어나다니? 우리는 비폭력을 대개 상식으로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그 비폭력의 근거는 무엇인가? 단지 당신이 가진 타인을 해하면 안된다는 도덕의 목소리인가요? 아니면 괜히 깽값 문다는 형법의 구속으로 인한건가요? 우리는 다 잘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는 국가와 사회계약을 한 채로 태어났고 또는 귀화하며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 계약에 있어 이 국면에 중요한 요소는 국가가 폭력을 독점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에게는 폭력을 행사할 권리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죠-정당방위, 자력구제 정도로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이상 개개인에게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권리가 없습니다. 깽값 문다는 것은 우리에게 폭력 행사권이 없다는 것이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겠고, 사회계약이 중요하냐 내면의 도덕률이 중요하냐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는 단언키 어렵습니다만, 뭐가 어쨌든 우리는 폭력 행사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권이라는 식으로 폭력을 행사한 것이죠. - 파시즘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과거 다독하던 시절에 관심있게 본 이슈이기도 했습니다. 파시즘은 규율과 결속을 강조하는데, 다 전체화되는 것의 다른 표현들이죠. 규율은 그 구성원이 전체에 있어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결속은 전체화된 그 덩어리 자체를 말하죠. 개인은 희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주의 혹은 자유주의와 전체주의는 역사적으로 내내 길항했습니다. 가족, 부족, 씨족, 이런 적당한 수준의 공동체가 있어왔고 그 안에도 어느 정도 규율과 결속이 있어왔죠. 중앙집권이냐 귀족정이냐의 갈등.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강고한 결속.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 내부를 겷속하고 그 뭉쳐진 힘을 행사하고자 했던 근대 파시즘. 여러 양상이 있는데 요즘 생각하는 파시즘은 좀 다릅니다. 충동에 의해 결속이 발생하고, 그 결속된 덩어리가 정치 세력의 선택을 받거나 결탁이 되거나 그리고 어쨌든 그 덩어리가 정체세력 자체를 짐어 삼키는 양상. 지금의 국힘이 그러하고 미국의 공화당이 역시 그러합니다. - 그러나 그 덩어리의 결속은 대개 증오에 기반하고, 그 증오는 용인할만한 것이 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세상이 위기에 빠졌고 스스로가 그에 분연히 일어선 용기있는 자라 자신을 여길 수 있겠지만, 대체로 그럴리 없으며 당신 개인의 힘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나도 집회를 참여하며 여러 가지를 느꼈습니다. 그 당시 얻은 나의 결론은, 나는 여기에서 하나의 숫자 하나의 점 하나의 질량이 되어 이 의지의 존재감을 만들어내는 하나로서 존재하는, 그 뿐입니다. 직접 행동해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허용된 의사표시 방식은 집회로서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거나 투표하거나 그 외에는 사실상 없습니다. 지금의 덩어리는 제가 보기엔 단지 분노에 침식된 것으로 보이고, 그 분노의 방향이 올바르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프로세스로 살아갈까요? 문제를 인식하고, 가치판단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선택된 대안을 실행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이죠. 문제의 인식과 가치판단 단계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에 차후의 행동은 의미가 없습니다. 부정선거, 친중, 친북 이러한 주장에는 근거가 사실상 없습니다. 부정선거는 참관인 제도와 교차검증 그리고 수차례의 소송으로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친중 친북은 단지 프레임으로서 대외 여건을 고려해 통상과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에 비추어 어떤 매국 행위를 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중국을 보면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은 막대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북한을 보면 당연히 위기 관리의 대상입니다. 호전적인데 실제 전쟁수행능력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 다행이죠. - 전쟁하자는 입장도 있을텐데, 헌법은 평화통일을 명시합니다. 위헌적인 발상이며 전쟁을 너무나 우습게 보는 일입니다. 전쟁이 무어라 생각합니까? 그것은 멋진 전쟁장비들을 근육질의 강건한 군인들이 화려하게 수행하는 화염과 피의 축제일까요? 제가 보는 전쟁은 셋으로 압축됩니다. 1. 약탈 2. 강간 3. 학살. 이게 전부에요. 결과로 폐허가 남지요. 우리 사회는 긴 시간 삐그덕대어도 상당히 멀쩡하게 작동했습니다-윤이 놀랍게도 그걸 다 박살냈지만요. 얼추 작동하는 세계를 폐허로 돌리며 그 과정에서 약탈, 강간, 학살에 노출되자? 그건 가당찮은 소리입니다. 내가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북이 노출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텐데, 그 쯤 되면 당신에게 되물어야죠. 당신이 인간이 맞습니까?
- 하여튼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그동안 드러난 매우 심각한 문제들이 쌓여버렸습니다. 어떻게든 해야죠. 저는 요즘 알베르 카뮈를 다시 떠올려 그를 생각합니다. 당장 직면하는 현존 세계에 여러 불합리, 부조리가 있습니다. 까뮈는 시지프스 신화를 이야기하며 끊임없이 돌을 사면을 따라 밀어올리는 형벌을 이야기하죠. 삶은 그와 비슷한 측면이 분명이 있습니다-형벌이라니 가혹하긴 하네요. 하여튼 우리가 올바른 판단을 하고 부조리와 불합리를 고쳐나가는데 필요한 방법을 찾아 그것이 고쳐질 정도로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그러한 희망만은 가질 수 있습니다. 당장 무언가가 좋아지고 나아지진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그 희미한 희망을 마음 한 켠에 등불로 삼아 이고 지고 끌고 밀며 가다보면 언젠가 도달할 것입니다. -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유기에 나오는데, 대충 천계를 쑥대밭을 만들고는 부처님에게 제압당해 갖혀 있다가 삼장을 수행하여 서천에 불경을 가지러 가는 내용이죠. 삼장이 서천이 얼마나 되느냐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손오공은 자기는 한 나절이면 다녀오고 저팔계와 사오정도 자기보다는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몇 일이면 다녀온다고 말하죠. 그러나 이렇다할 신통력이 없는 한갓 인간인 삼장이 가고자 한다면, 가다가 늙어 죽고, 그 자리에서 다시 태어나 가다가 자라고 다시 늙어서 죽고, 그걸 반복해도 못이를 곳이라 말하지요. 이를 듣고 삼장이 낙담하는데, 그 때 손오공이 덧붙입니다. 그러나 견성지성하여 걷다보면 고개를 돌린 그 곳에 서천이 있을 때가 옵니다. - 우리 헌법은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그 헌정질서가 최후에 무너지지 않고 지켜졌습니다. 모두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