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경험담#5] 따스한 에셈 vs. 차가운 에셈
0
|
|||||
|
|||||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의 에셈 문화는 서양의 지하 고문실을 연상케 하는 무거운 이미지보다는 정감 어린 관계성과 애정의 흐름 속에서 디에스(DS)의 구조를 그려내려는 경향이 짙습니다. 연애 감정과 상호 소통에 기반한 에셈을 우리는 ‘따뜻한 에스엠(Warm BDSM)’이라 부르고, 지하실의 차가운 공기와 차디찬 도구들이 빚어내는 쾌락에 집중하는 유형을 ‘차가운 에스엠(Cool BDSM)’이라 부릅니다. 한국은 그중에서도 따뜻한 에셈에 마음을 두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렇듯 정서적 연결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지하 고문실의 살기 어린 분위기는 현실감 없는 소설 속 장면처럼 멀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올린 고문의 기원에 관한 글 아래 한 통의 비밀 댓글이 달렸습니다. “에셈의 기원을 정리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따뜻한 에셈보다는 차가운 쪽인 것 같아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여쭤보고 싶은 게 조금 있어서요…” 저는 그 메시지를 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도 그런 차가운 에셈 성향의 여성분이 계시다니— 저는 조심스레 비밀 댓글로 제 이메일과 메신저 주소를 남겼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 저는 메신저로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차가운 에세머 분이 계시다니, 정말 놀랍네요.” “차가운 에셈인지는 모르겠지만, 님이 쓰신 지하 고문실 이야기… 꽤 와닿았어요.” 그녀는 과거 몇 번의 디에스 관계를 겪어보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끝은 하나같이 씁쓸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거친 섹스에만 몰두하거나, 작위적이고 유치한 명령들에 마음이 닫혔으며, 때로는 연애 감정이라는 이름으로 사생활이 침범당한 기분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상대방과의 궁합이 잘 맞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랬을까요… 어쩌면 너무 기대가 컸던 걸지도 몰라요.” “그럼 어떤 환타지를 원하시나요?” “음… 글쎄요… 고문실 같은 공간에서 다양한 도구로 능욕당하고 싶은 느낌이랄까요…” 그녀는 ‘고문’과 ‘학대’라는 단어에 묘한 감정을 품고 계셨습니다. “고통을 즐기시는 마조히스트 성향이신가요?” “아뇨, 너무 아픈 건 오히려 싫어요. 그리고 절대 흔적이 남으면 안 돼요… 좀 모순적이죠?” 그녀는 엉덩이를 맞는 감각에는 빠져들었지만, 진짜 상처를 남기는 고통에는 공포를 느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문실이라는 상징과 그 안에서의 연출, 그 자체가 욕망을 자극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심리를 설명하는 이론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죄책감 이론(Guilty Theory)’입니다.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란 여성일수록 성적 쾌락을 무의식적으로 죄악시하게 되며, 자신을 벌함으로써 죄책감을 완화시키려 한다는 내용입니다. “혹시 가정환경이 보수적인 편이셨나요?” “맞아요. 아주 많이요. 지금도 그렇고요… 제가 이런 취향이라는 걸 아무도 몰라요.”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복종이나 수치가 아닌, ‘벌’이라는 형태로의 위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체에 흔적은 남기지 않으면서도 고문과 형벌의 느낌을 주는 방식이 필요하시겠네요?” “네, 그게 제가 가장 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가능할까요? 비위생적인 건 싫고, 상처도 절대 안 돼요.” 흔적 없는 고문이라— 어렵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중세 유럽의 고문관들조차 비즈니스와 쾌락을 위해 그 해답을 이미 찾아낸 바 있지요. 그 원리를 이해한다면 지금도 충분히 응용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스팽 시 멍이 드는 이유는 근육 때문이 아니라 피부의 표면이 찢어지기 때문입니다. 열로 인해 피부가 건조해진 상태에서 채찍이 닿으면 상처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때는 스팽 전후로 수건을 적셔 피부를 식혀주거나, 채찍(케인)을 물에 담가 수분을 머금게 하면 피부의 손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발바닥이나 손바닥처럼 피부층이 두껍고 멍이 잘 들지 않는 부위를 활용하면 상당히 안전한 쾌락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채찍의 재질에 따라서도 그 흔적의 정도는 달라집니다. 소가죽은 가장 강한 자극과 흔적을 남기며, 양가죽은 그보다 부드럽고, 인조가죽은 중간의 균형을 이룹니다. 이렇듯 그녀의 욕망은 아픔이 아닌 자극, 상처가 아닌 긴장 속에서 죄책감을 용해시키는 장치였던 셈입니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