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 오지 캠핑 #3(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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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같이 왔던 잘생긴 친구 기억해요?
응.. 기억하지. 니가 여자만 데려오다, 오랜만에 남자였으니까.. J가 그러지 않았던가? 여자나 남자나 넌 맨날 달달한 애들만 데리고 다닌다고. 유유상종이라고. 근데 그 친구는 왜? 사실... 저 바이에요. 응.. 바이... 근데 그게 뭐... 응?? 바이????!!!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바이섹슈얼의 바이? 불길했다. D가 이야기를 다 풀어놓기 전에도, 이미 불길함이 온몸을 훑어내려갔다. 난 꽤 오래전에도 바이섹슈얼에 대한 트라우마가 한 번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남자인 내가 봐도 혹할 정도로 정말 자~알 생겼던 바이섹슈얼 녀석이 있었다. 물론, 사고가 터진 그날까지 여자친구-같은 패거리가 아니었다-와 한참 불꽃이 튀기고 있는 나와 좀 칠칠맞지 못했던 녀석 하나, 우리 둘은 그녀석이 바이인 것을 절대로 몰랐었다. 나를 포함해서 남자 여섯에 여자 넷. 열 녀석들이 삼삼오오로 함께 몰려 다니곤 했는데, 반반하게 생겼던 녀석 하나가 나머지 여자 셋은 물론이고, 우리 패거리 공식 커플의 남녀를 각각 유혹해서 잠자리를 가졌다. 아니, 그것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서로만 알고, 다른 친구들만 모르면야 다 개인사일 뿐, 어떻다를 구지 판단할 필요까지 있으랴. 하지만, 오랫만에 열명이 모여 있던 자리, 그 자리에서 그날따라 술에 심하게 취했던 한 녀석-당연히(?) 바이 녀석과 잤던 녀석이다-이 바이 녀석에게 키스를 해버렸고, 순식간에 여자 전원은 물론, 바이 녀석과 함께 잤던 다른 두 녀석들까지 합세해서 난장판이 벌어졌다.
멱살 잡이와 주먹질…. 그리고, 울부짖고, 애원하고... 절친한 친구라고 떠들고 다니던 인간관계가 순식간에 회복 불가능 상태가 되버렸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썰로 정리 한 번 해볼 생각이다. 이야기 분량도 제법된다)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사실 오늘 데리고 온 애는 좋아서 사귄게 아니에요.
좋아서 사귄 것도 아닌데 J를 그렇게 죽도록 팼어? 허... 기가 찬다. 기가..
D는 타고난 체형에 몸도 좋은 편이었지만, 평소 운동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다. 꼬박꼬박 몸을 만들곤 했고, 그게 D녀석의 자존감을 높여준 것은 물론이고, 처음엔 장난 삼아 시작한 남자 사냥이 생각보다 수월했고, 그러다보니 반복하게 됐단다. 그리고, 어느새 생각해 보니, 자기 자신도 여자를 좋아하는 것인지, 남자를 더 좋아하는 것인지 헷깔리기 시작했고, 한동안 방황도 했단다. 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손아귀에서 제물이 되어가는 남녀들을 보며 즐거웠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단다. 그런데, 몇 개월 전, D가 다니던 헬스장에 K가 새로 등록을 했단다. 지난 달에 같이 캠핑을 왔던 그 K.
운동 방법이나 취향도 비슷하다 보니 같이 운동도 하고, 함께 다니곤 했고, 급기야 많이 끌리기 시작했단다. 어느새 K를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나더란다. 그런데 유독 K만큼은 다른 남자 녀석들과 달리 쉽게 안되더란다. 심지어는 사랑 어쩌고 저쩌고 까지 이야기 했는데.. 그 이야기는 일단 남겨두련다.
게다가 K는 이미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는 아주 고지식한 스트레이트였다. 3개월 가까이 기회를 봐도 방법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고른 것이 그녀였다.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그녀를 발판으로 K에게 접근하려고 했고,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던 D는 그녀와 관계를 가지려 할 때마다 제대로 발기조차 되지 않았단다. 야.. 진짜.. 너 그럼 진짜로 J를 그렇게까지 팰 이유가 없잖아!!! 머릿속이 깜깜했다. 금슬 좋은 유부남 녀석은 거의 스무살 차이나는 아가씨와 불이 붙었고, 그 녀석을 죽도록 패던 녀석은 바이섹슈얼에 그녀의 오빠를 더 좋아한다니.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문득, 같이 다니던 나와 친구들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음흉한 생각을 했을 녀석을 생각하니 섬뜩하기도 했다. 야.. 너 나보고도 흑심 품은건 아니지? 아.. 형... 지금 그런 소리가 나와요? 형은 내 타입 아니거든요. 그........ 그치? 쩝... 뭐.. 흠냐... J형 이라면 또 모를까.. 그럼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정리하자. 어차피 일어난 일, 그리고 우리가 하루 이틀 알던 사이도 아니고, 이렇게 끝내는 건 아닌 것 같지 않아? 아.. 근데 잠깐... J라면 모른다고? 이건 또 뭔소리야? 아 그게 사실은.... 지금까지 이야기도 어려운데, 폭탄이 터졌다. 물론, 그 덕분에 꼬인 실마리가 한 번에 풀리긴 했지만, 이건 정말 막장도 개막장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던 천하의 난봉꾼 D녀석은 캠핑을 나올 때 마다 J를 호시탐탐 탐내곤 했지만, K를 옆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날까지 최소한 티는 내지는 않았던 것이다. 사나이의 의리라나? 한숨이 다나온다.
그러다, 꼼짝도 않는 K옆에서 안달이난 D가, 그날 따라 심하게 취한 J의 텐트에 몰래 숨어들었다고 한다. 어찌어찌해서 J의 입에 D의 물건을 넣는 것까지는 성공을 했지만, J는 완강했고, 그날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근데, 그 J가 버젓이, 그것도 마치 D가 보란듯이 그녀와 관계를 가졌으니 화가 난 것이다. 더 재밌는(?) 부분은 단지 그녀와 잔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아닌 그녀와 잤다는 것에 격분했다고. 난감하다. 이걸 어쩌나. 그래서 J가 웃기 시작하니까 도망친거야? 네... 얌마 넌 바이 맞아? 게이 아냐? 그 정도의 여자가 나체로 덤비는데 안 선다는 게 말이 돼? 그러게 말이에요. K형 따라다닌 뒤부터 여자보다 남자한테 더 기울어졌어요. 야... 너... 너 좀 떨어져 있어봐. 문득, J가 떠올랐다. J는 술기운이었지만, D의 성향을 알게 됐고, 어제 D가 술에 취해 곯아 떨어졌기에, 술기운에 그녀를 취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다. 오히려 D가 더 보란듯이, 화롯대 옆에서 대놓고 보여주려고 했던건 아닐까? 다만, 시작과 달리 그녀에게 푹 빠져버린 것이 더 문제라면 문제다.
족보가 꼬인다. 족보가 꼬여. 10년, 3년 지기 우정이 꼬여간다. 머리가 다 지끈지끈 아프다. 이거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거야. … … … 네놈들 둘 다 내 앞으로 좀 와봐!! 새벽부터 눌려 왔던 분노가 한 번에 쏟아져 나온다. 태어나서, 그렇게 빠른 속도로 말을 뱉어보긴 처음이었다. 수 십 분을 욕과 애원, 그리고 설교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른 두 친구에게도 혹시라도 J의 와이프에게는 입을 열지 않도록 단속했고, 그녀는 내 차에 태워서 철수해야만 했다.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는데, 앞은 깜깜했다. 도대체 이 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끝. 완결입니다. #에필로그 머리를 쥐어짜던 내가 찾아낸 극약 처방은 그녀를 카사노바 후배 녀석에게 우연을 빙자해 소개 시켜주는 것이었다. 내 후배 녀석은 아주 집요하게 그녀를 공략했고, 결국 J 몰래 그녀를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다행히 J가 더 빠져들기 전에 빼낼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좀 미안한 방법이었지만, 결혼 15년차에 첫바람을 피우기 시작한 친구 녀석이 사랑과 바람을 구분하지 못하는 통에, 달리 뾰족한 묘책이 떠오르질 않았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차이고, K에게서도 멀어진 D는 K와 정말 똑같이 생긴 녀석을 찾아내서 4개월째 쫓아다니다 결국 함락시켜버렸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나? 끈질긴 놈. D와 J는 아직도 나와 함께 캠핑을 가곤 하지만, J는 D가 나타나는 날에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았고, D도 J를 피하고 있다. 오히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녀석들 둘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연이 끊어져 버렸고, 다른 녀석들이 빈자리를 메꿨다. 그들은 D가 바이 인줄 몰랐고, 나와 J도 구지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D가 합류하는 날에는 절대로 알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뻐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장난 과도를 대체하겠다며, 새로산 오피넬 폴딩 나이프를 희번득할 정도로 날카롭게 갈고 주머니에 우겨 넣고 다닌 뒤로 부터, 절대로 D는 나를 친근하게 대하지도 접근하지도 않았다. 너무 좋은 형으로 영원히 플라토닉한(?) 사랑하겠단다. 고마움에 눈물이 다 날지경이다. de Dumb squ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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