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풋나기의 첫사랑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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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은이네 집에 놀러가게 된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 얼떨결에 초대를 수락하고도, 그리고 지은이네 집으로 향해 가고있는 그 순간까지도 사실 나는 지은이가 왜 나를 초대한 건지 정확히는 알지 못앴다. 사흘전... "언제 우리집에 놀러 한번 안올래?" 확실히 얘는 나를 놀래키는 재주 하나는 분명 있는가부다. 도대체 이게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인지... 휘둘림이 뭔지도 모를 나이에 난 이미 상대방의 페이스에 완전히 말려 있었다. 그나마 헤어나오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단지 너무 서툴렀을뿐... "내가 왜?" 이런식이다. "저기... 니 공부 잘하자나. 뭐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학교에서 물어보면 되지?" "학교에서 물어보면 애들이 놀리자나." 그렇다. 말한마디 건넸다 하면 바로 공식커플 각이다. 그 유치찬란한 얼레리꼴레리와 함께 말이다. 11살짜리 애가 학업 관련 의문사항으로 인하여 동급생에게 개인적인 도움을 요청하고있다. 장소는 자기네 집! 게다가 얘는 여자!! 나는 남자!!! 당시 내가 이렇게 논리적인 검증 과정을 거쳤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암튼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정도는 충분히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그냥 묘한 기대와 설렘이 이끄는 데로 나를 한번 맡겨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그럼 한번 가께. 근데 언제?" "음... 그건 내가 내일 알려줄께." "그래." 사흘뒤... 그날은 아침부터, 아니 전날부터 어찌나 설레던지 소풍 전날 마냥 밤잠도 설쳤던 걸로 기억한다. 이틀전 몰래 건네받은 쪽지에 적혀 있던 대로 방과 후에 학교에서 두블럭 정도 떨어진 교회 뒷편에서 지은이는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10분여를 더 걸어 도착한 지은이네 집은 아파트였다. 상류층 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산층보다는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살만한 비교적 고급 맨션이었고 처음 놀러가보는 아파트사는 친구네 집, 거기다 처음 놀러가보는 여자애 집이다 보니 난 잔뜩 긴장한 정도를 넘어 살짝 겁까지 먹고 있었다. "딩동~" 벨이 울리고, 잠시후 문을 열어주며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지은이네 엄마였다. "안녕.^^ 니가 정현이구나? 어서 들어오렴." 환한 미소와 함께 나를 반겨주던 하이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3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ㅋ 참 단정한 아주머니였다. 옷 매무새, 머리모양, 깔끔하게 정리된 집안 하며... 물론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손님맞이용 세팅이 아니었다. 예고없이 놀러갔던 날도 그 단정함은 언제나 한결같았고, 아주머니가 집을 비웠던 날도 집안 어디 한군데 흐트러진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때는 여름방학을 2주일여 앞둔 초여름이라 날씨가 살짝 더웠고, 지은이네 엄마가 내어온 오렌지주스를 담은 유리컵에는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식탁에 마주앉은 우리는 무척 전형적인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았고, 나는 학교 성적, 사는 동네, 부모님 직업, 형재관계 등등의 신상을 탈탈 털리고 있었다. 분명 물어보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웃는 얼굴로 기분 좋게 탈탈탈인데 왜 난 이렇게 이마에서 삐질삐질 땀이 흐르는지... 그걸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에어컨을 켜준다. 오~~~에어컨! 우리집에도 에어컨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동수저 정도는 살았으니... 하지만 그 에어컨(아마 지금도 후미진 장급 여관 외벽에 툭튀어나온 Goldstar 마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이 실제로 돌아가는 것을 보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추석날 일가친척 다 모였는데 늦여름 더위가 가시지를 않았다면 그날 하루 정도 틀었을까? 암튼 그런 식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은이네 아빠는 일본거래처를 상대하는 무역일을 했었고 벌이가 꾀나 훌륭했었지 싶다. 부모 모두 한국사람이지만 지은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2살 무렵까지 일본에서 한동안 살기도 했었다고 한다. 티비, 비디오, 밥솥 등의 일본 가전제품이 집안 곳곳에서 눈에 띄었고 일본어로 된 책도 여러권 있었다.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 끝나고, 1/4 정도 남은 남은 오렌지주스를 원샷하고, 아주머니의 인솔하에 우리 둘은 지은이네 방으로 들어왔고, 방문은 밖에서 닫히고, 지은이와 나는 자연스레, 아니 진짜 어색한 상태로 둘만 남겨졌다. 방문을 살짝 열어놓는다든지, 아니면 수시로 엄마가 들락날락 한다든지 그런거 없다. 여기 게이들의 상상력이 풍부해서 그렇지 성에 일찍 눈을 떴건 말건 간에 현실적으로 보면 11살짜리 애들이다. 꼬꼬마란 말이다. 게다가 나는 1등을 놓친적 없는 범생이에, 외모는 또 어땠냐면 꼭 순풍 산부인과에 나오던 의찬이 스러웠다. 하물며 안경까지... 의심따위 개입할 여지라고는 없었다. "우리 같이 숙제나 하자." 먼저 어색함을 깬 건 지은이였다. "그래. 그러자." 가방을 열고, 책을 꺼내고, 아니 잠깐... 근데 이게 아닌데? "근데 니 저번에 뭐 물어볼거 있다고 안했나?" "아...그거...다음번에 놀러오면 그때 얘기할게." '다음번이라... 이게 뭔 개수작이지?' 진짜 이거 비스무리하게 생각했었지 싶다. 물론 입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지은이네 엄마는 일주일에 두번꼴로 어떤 모임 같은데를 나간다고 했다. 당연히 낮시간에 집은 비었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오신다고 들었다. 그 '다음번'이라 함은 바로 집이 비는 날 되시겠다. 물론 지은이네 엄마에겐 알리지 않았었고, 일부러 엄마 있을때 불러서 인사시켰겠다, 이미지 좋겠다, 혹시 둘만 있다 누가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복선을 깔아놓는 것이 바로 오늘 이 자리였다. 뭐, 당시에 내가 알 턱이 있나. 알고보면 지은이 얘 참 주도면밀한 구석이 있다. 그로부터 이틀 뒤, 그 '다음번'이 바로 오늘이다. 지난번과 동일한 접선방식에 똑같은 루트를 거처 도착한 바로 거기 지은이네 집! 다만 지난번과 다른 점이라면 엘레베이터 타기 전, 아주머니가 맡겨놓은 집열쇠를 받아가기 위해 경비실에 들렸다는 것과, 엘레베이터를 내려 도착한 대문앞에서 벨을 누르는 대신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어짜피 빈집, 우린 굳이 방안에 자신들을 가둘 필요가 없었다. 나란히 앉은 거실 소파에서 드디어, 드디어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있자나...니...비밀 지킬 자신 있나?" 역시 지은이가 먼저 입을 땐다. 이건 또 무슨 뜬금없이... "무슨 비밀?" "자신 있나 없나 먼저 말해라. 아니면 아무것도 안가르쳐 줄거다." 물어볼게 있다더니 이젠 뭘 가르쳐준다지를 않나...참... "그래. 지킬께. 비밀." "진짜제? 진짜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된다?" "알겠다. 근데 뭔데? 비밀." 내 눈을 바라보며 받아낸 다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이윽고 지은이는 몸을 일으켜 티비 앞으로 걸어간다. 티비 앞에 다달아서는 갑자기 주저 앉더니 티비를 받치고 있는 여닫이 장식장의 문을 연다. 그 안에는 비디오 테잎들이 잔뜩 들어있었고, 그 쌓여있는 테잎들 아래로 열쇠구멍이 달린 장속의 서랍이 하나 더 있다. 지은이는 옆에 있던 다른 장식장에 놓여있던 도자기를 뒤집어 바닥에 그 내용물을 쏟더니 그 안의 클립, 커튼핀 등등 금속재질의 자질구래한 잡동사니들 안을 뒤적거리다가 작은 열쇠 하나를 줏어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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