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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길은 왜 이렇게 다른 피로도가 느껴지나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번잡한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씨앗이나 농기구를 파는 골목을 지나, 논 밖에 보이지 않는 길을 텅 빈 막차 버스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녹슨 빛이 나오는 어둑어둑한 버스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많이 상했네.” 나는 녹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위로 넘기며 습관적인 한숨을 쉬었다. 내 얼굴마저 조금 흐릿하게 보이는 차창으로 덩그러니 앉아있는 소녀가 뒤에서 내 쪽을 빤히 바라보는 게 보였다. 면사포 같은 재질의 하얀 리본, 미니드레스 같은 하얀 원피스, 온 다리를 덮는 하얀 레깅스 까지 거부감이 들 정도의 하얀색이 소녀를 감싸고 있었다. “스무 살, 스물한 살?” 몇 살이든 참 악취미이거나 정신이 나간 것 같아 안쓰러웠다. 아닌가, 녹색 머리의 나도 딱히 뭐라 할 자격은 안 되는구나. 얼마 전 이사한 시골 동네에 버스는 멈췄다. 나는 교통카드를 찍고 ‘퉁퉁’ 소리를 내며 배웅하는 계단을 내려와 기지개를 켰다. 하품을 하며 본능적으로 뒤를 바라보았는데, 흰 구두가 ‘또각 퉁. 또각 퉁.’ 소리 뒤에 지면에 닿았다. 나는 다시 돌아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아래로 향했다. 등 뒤로 또각또각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걸어 다니라고 만든 붉은 벽돌의 길을 따라 갔고, 그녀는 아스팔트가 포장된 지름길로 향했다. 그러나 분명 같은 방향이었고, 그녀는 나를 의식하며 빨리 걸었다. 늘 짜증나는 일이다. 덩치에 상관없는지는 모르지만 종종 치한으로 오해나 의심 받는 일은 이해가 되면서도 늘 짜증나는 일이다. 또각또각 소리가 빨라지며 멀어지는 것이 그녀를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그렇게 첫 번째 동에 들어가나 싶더니 지나쳤다. 나는 멀뚱히 서서 그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다렸다. 그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나를 보더니 두 번째에 위치한 동으로 들어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필 내가 사는 동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까지 기다려야하나? 아니 내가 왜? 내가 이렇게 까지 소심한 놈이었나.” 나는 그렇게 만감이 교차하다. 조금을 더 기다리고 동의 현관문으로 들어갔다. 등기함과 치킨 집 전단지 통을 지나 안심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헐.” 하는 표정의 소녀가 3층까지 내려온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결국 우린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나는 7층을, 소녀는 14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영화의 연출처럼 늦게 올라갔다. 분명 그렇게 느껴질 뿐이었던 거겠지만. 4층 정도에서 어깨에 흐르는 노트북 가방을 고쳐 멨다. ‘또각’ 그녀는 흰 구두 소리를 내며 움찔했다. 나는 그녀를 안심 시키려 구석에 포스트잇처럼 붙어있는 그녀에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내 억지웃음은 눈은 반쯤 죽어있고, 입만 빵긋 한 것이라, ‘한니발’처럼 무서웠을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이 도살 직전의 소의 눈을 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었다. 그냥 웃음을 거둬내고 바지에 똥이라도 지린 것처럼 당혹스러운 사람의 표정을 자연스럽게 지었다. 그러자. 7층에 도착했다. “잘 가요.” 나는 손을 들어 흔들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근데 이것도 아니다 싶어 시무룩하게 손을 내리고 집 문 앞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검은 후드티를 대충 입고 고양이식 세수 후에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는 14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7층에 엘리베이터는 도착해 주황색으로 칠해진 문이 열렸다. 제법 큰 키에 소녀가 교복을 입고 코앞으로 다가왔다. “앗.......” 그녀는 허둥대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 벌써 도착한 줄 알았나보다. 그보다 어젯밤 그 소녀였다. 긴가민가했지만 역시 그녀가 맞다. “또 보네요.” “계란 먹을래요?” 정적을 깨려 가볍게 건넨 인사가 겹쳐 작은 소란을 만들었다. “왠 계란?” “단백질만 먹고 운동하면 살 빠진대요.” “왜 시비냐?......” “시비 아니라. 성의표시, 그리고 말 놓지 마세요. 고딩 무시해요?” “미안합니다.......” “농담이에요. 말 편하게 하세요.” 굳은 표정에서 입고리만 살짝 들어 보이며 소녀가 말했다. 세심한 건지, 호탕한 건지 모를 태도에 나는 멍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우린 불협하게 걸으며 같은 정류장으로 향했다. “계란 잘 먹을게. 근데 몇 번 타? 어제처럼 62번?” 나는 어색함에 말을 붙였고, 그녀는 곧 바로 온 버스를 향해 잰걸음으로 갔다. “으른이~ 얘기하시는데 어디가!” 나는 짜증을 내며 급히 소녀를 따라 탔다. 우린 뒤쪽 2인석에 같이 앉았다. 그녀는 잠깐을 흥얼거리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왠지 놀리고 싶은 사람같아요." 눈부신 햇살이 빠르게 스치는 정면을 바라보며 소녀가 말했다. "그런 얘기 자주 들어. 반반이야. 무섭다거나 놀리고 싶다거나." 나는 그렇게 대꾸했다. 그러나 반응은 이 아이가 듣고 있을 노래의 허밍이었다. "난 왠지 너가 싸가지 없는 사람같은데?" "음?" 그녀는 이어폰을 빼고 나를 바라보고 귀을 의심하는 사람처럼 다시 듣길 원했다. "아니야." 그리고 서로의 목적지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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