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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아저씨~!” 시골의 하나뿐인 새벽의 편의점에서 소녀는 나를 불러 세웠다. “어? 겨란 싸가지.” “계란 싸가지가 뭐에요!” “토마토는 뭐냐 그럼!” “녹색 머리, 꼭 안 익은 토마토 색이잖아요.” “뭐 청사과라던가, 라임이나 뭐 그런 상큼한 건 안 떠오르니?” “네 전혀. 푸흡......하하하하하하하!!” 말을 끝내고 소녀가 웃었다. 볼을 불룩 거리며 참다, 침까지 튀겨가며 웃음을 질렀다. “아.......기분 나빠.” 나는 냉담한 표정으로 침을 닦으며 다른 코너로 발을 옮겼다. “감정 같은 건,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면 입 밖으로 내는 게 안 좋댔어요.” 언제 그랬냐는 듯 소녀는 차분하게 뒤따라와 말했다. “표현은 뭐든 할수록 좋은 거야. 그 말은 어떤 등신이 그러디.” “우리 아빠요.” “명언이다 정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듯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푸흡!......” 소녀는 재차 웃었고, 나는 이를 악물고 침을 닦았다. 알 수 없었다. 묘령의 신비로움 보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쁜 고무공처럼. 언제는 섣불리 떠난 겨울바다의 강추위처럼 당혹스러울 만큼 차갑더니, 지금은 참 봄 햇살처럼 감사한 미소도 지을 줄 아는구나. “모르겠다. 여자는.” “뭐가 모르겠는데요? 다알려줌.” 내 앞을 막아선 소녀의 곁에서 희미한 술 냄새가 났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기분 좋게 한 잔 더할까요?” “미쳤다고 사장님이 교복 입은 애한테 술을 파냐.” “아저씨가 사주면 되잖아요-.” “응아니야. 안 사줘.” “아 제에바알.” 소녀는 내 팔을 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이미 눈치는 챘지만, 술보다도 당혹스러운 내 모습이 보고 싶다는 흥미로운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에 응해줄 생각이 없어도 갑자기 덜컥 들어오는 상황은 늘 당혹스럽긴 했다. “누구세요 학생?”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소녀를 노려보고 팔을 뿌리쳤다. “과자나 우유는 사줄게. 먹고 바로 자.” 왠지 팔을 세게 뿌리쳤는지 뒤따라오지 않는 소녀가 마음에 걸려 말했다. 소녀는 흥얼거리며 과자 쪽으로 가서 뚫어져라 쳐다봤고, 나는 계산대에 서서 내가 고른 맥주와 땅콩을 계산대에 올려 두었다. “쟤가 가져오는 것도 같이요.” “여동생이 둘이나 있어요?” 바코드를 찍고 봉투에 담으며 편의점의 사장님이 물었다. “아뇨. 쟤는 그냥.......윗집 사는 애에요.” “어휴.......다정하시네.” 단어를 한참 찾다 말한 건지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 모를 뜸을 들이다 아저씨는 말을 완성했다. 그래도 소녀는 한참을 오지 않았고, 인내와는 상관없는 상황에서 사장님에게 눈웃음을 보이며 그녀에게 다급히 걸어갔다. “왜 이리 못 골라.” “칩 종류가 좋은데 추천 좀 해주세요.” “네가 먹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니야.” “하나만 고르라고 하니까 그렇잖아요.” “그런 말 한 적 없거든.” “그래도 염치는 있어요.” “아 x발 빨리 골라!” “와~ 입도 생긴 것만큼 대박 험해.” “고르기나 해.” “세 개로 추려봤어요. 도리토스랑 콘칩이랑.......인디언 밥?” “으휴잇!!!!!”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떠올라서 진저리를 치다 앞서 말한 과자들을 들고 계산대로 도망치듯 걸어갔다. 계산을 마치고 짧은 산책로 같은 귀갓길을 걸었다.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 때문에 주변이 더욱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래도 몇 걸음 앞이 보이고, 과자를 세 개나 끌어안은 소녀도 보이니 괜찮았다. “뭔 고민이 있다고 술을 처먹어.” 조심스러운 주제를 가볍게 포장해서 내밀었다. “아저씨는 섬세한 건지, 거친 건지 모르겠어요.” “데자뷰!” 맥주 캔을 따며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처럼 외쳤다. “데자뷰요?” “응, 뭔가 나도 그런 생각 했던 것 같은데.......” “데자뷰랑 다른 거 아니에요?” “그러냐?” “아무튼 모르겠어요. 신기해.” “무슨 이유든 드러내기 싫고 무섭고 부끄러운 나약한 자신의 부분을 감추고 싶을 때 그 반대로 드세게 행동이 나가는데 사람은 자기 고집이 있으니까 그것마저 포기 하기 싫고, 맞물려서 섞이고 뭐 그런 거 아니겠냐.” “다들 그런가......” “그보다 오빠야. 아저씨 아니라.” “오빠라는 소리에 목숨 거는 사람이었어요?” “아니 진짜 오빠라니까. 나 이십대 초반이야.” “윽, 생긴 거랑 말투는 완전 아저씨인데.......” “그럼 아저씨라고 부르던지. 군인 아저씨들도 스무 살 스물 한 살이니까.” “그보다 그 것 좀 줘요.” 소녀는 발을 껑충껑충 뛰며 맥주에 손을 뻗었다. “무단횡단도 막 하고, 메로나 껍질도 길에 잘 버리는데. 미성년자한테 술 주는 건 좀 도의적으로 그렇지 않냐.” “그럼 다음에 사줘요. 언제 사줄 거 에요?” “거지가 아니면 네가 좀 사먹었으면 싶은데.......” “아 언제!” “수능 끝나고?” “수능 끝나고!” 그렇게 훅 들어오는 새끼손가락을 얼떨결에 걸고 우린 엘리베이터에 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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