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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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럽고 심란한 것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해야만 한다. 지난 밤의 기도를 위해 기꺼이 한 몸 희생한 캔들의 틀 여덟개, 밀린 설거지, 건조대의 가득 쌓인 그릇들, 헤집어 놓은 옷가지들, 바싹 마른 이불 빨래, 찌그러진 맥주캔 세개와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부은 내 얼굴만큼이나 크게 뭉쳐진 휴지덩어리, 뭐라고 적었더라..... 새까만 낙서가득한 노트와 볼펜, 그리고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늘 니가 앉아있던 그 자리. 지난번 나를 쓰다듬어주던, 키스를 나눴던 소파가 있다. 나는 변해지는 니가 서운했고 너의 마음이 궁금했다. 우리는 서로의 섹스를 위한 사이니까. 아차, 내가 잘못됐구나. 착각이 컸다. 너와 나는 그 외 서로를 위해주어야 하는 이유도 없고 의무도 없는 사이일 뿐인데 나는 어느새 빠져있던걸까.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요즘 많이 힘들다. 마냥 나만 탓하지 않을래. 너의 탓도 하련다. 너를 향한 눈길에 순정이 흘러들게 된 것은 미안하지만 나만의 잘못도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너를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자'로 정하고, 너와 나 각각에게 벌을 내리노라. 너에게는 다음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 나를 떠올리며 '왜'를 생각해 볼 것. 나에게는 너를 떠날 것. 나는 무척이나 후회할 것이 분명하지만 이것이 너와 나를 위한 것이라 긴 밤 동안 결정해내었다. 늘 그렇듯 마음과 전혀 다르게 먼저 내뱉으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마음도 따라가겠지.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너는 변해가는 중인데도 내가 그립다, 아니 내 몸이 그립다 했지. 아니... 니가 옳구나. 그건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지. 착각하지 말자. 더 끌지 말고 다음 만남, 우리의 마지막 섹스를 끝내고 마음과 전혀 다른 말을 내뱉고 마음과 다른 이별을 하자. 쿨하게. 그리고 이제는 연애를 하자. 나와 어울리는 색을 찾다보면 또 너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이렇게 또 마음 하나 정리한다. 에고 골치야... 일어나자. 정리하자. 치울 게 많다. 뭘 먼저 치워야할까... 휴.. 그래 휴지덩어리. 괜히 오래 두면 얼굴 붓기도 안 빠질 것 같은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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