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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독일, 차범근, 국제시장 그리고 한국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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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독일, 차범근, 국제시장 그리고 한국축구
 
기다리고 기다리던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조별리그에서 1승2패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29일 영종 국제공항을 통해서 “금의 환향(?)했다.
 
평소 같았으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도망치듯 사라졌을 성적이지만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을 조별리그에서 탈락시켰다는 승전보로 독일을 제외한 전세계를 기쁘게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국인 대한민국도 전세계인에서 예외일 리 없다.
 
지구 밖 외계행성으로 잠시 출장을 다녀온 우주비행사가 전후사정을 모르고 독일과한국의 경기를 관람했다면 한국이 월드컵 결승에서 우승이라도 한 것이라고 오해 할 정도의
흥분과 강동의 물결이 그라운드를 넘어 전세계를 술렁이게 했다. 하지만 결과는 두 팀 공동 틸락이었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냐면 본선 16강은 월드컵이라는
축구이벤트가 존재하는 한 언제든 도전 할 수 있지만 “팀 독일”을 이긴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독일이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이 82년만이라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모두
들 아는 사실이 되었지만 월드컵 지역예선에서의 무패행진 기록은 무려 32승4무였다. 이
말이 무슨 뜻인고 하니 독일이라는 팀이 창단 이래 지역예선에서 처음 진 것이 1985년
 10월 포르투칼전 이었다는 사실이다. 독일이라는 팀은 대등한 전력이 겨루는 토너멘트가 아닌 하위 시드 팀들과 뒤 섞인 예선리그에서는 무적이고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
 
호주오픈에서 정현이 조코비치를 이겼을 때 페더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계에서 조코비치를 꺾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일반인들은 모른다” 이 말을 조금 비약하면 조코비치를 이기는 것이 우승하는 것 보다 어려울 수 있다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독일 전 승리가 월드컵 우승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 될 수 있는 일을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해낸 것이다. 팀 독일을 친선경기가 아닌 컵 쟁탈전에서 이겨본 국가가 지구상에 얼마 안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에서 결승진출을 좌절시킨 팀도 다름아닌 독일 이었다. 올드팬들의 뇌리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클린스만의 다이빙 헤더도 1994년 미국월드
컵 조별리그에서 터졌다. 당시만 해도 축구전용구장은 커녕 변변한 잔디구장도 없이 맨땅에서 공을 차야 했던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한 골 더 넣자고 경기장에서 몸을 던진다는
것은 자살행위였기에 슬라이당 태클도 자제하던 분위기에서 클린스만처럼 공중을 날으는 퍼포먼스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아니 상상해 본적도 없는 플레이였던 것이다.
 
독일전은 한마디로 길짐승과 날짐승의 경주였던 것이다. 치타가 아무리 기를 쓰고 달려본 들
(사실 그 당시 대한민국 대표는 치타도 아니었다) 참새조차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986년 처음 출전한 멕시코 월드컵에서 말로만 듣던 마라도나의 환상적인 플레이를 목도하면서 축구는 “악과 정신력”으로 하는 게임이 아니라 “재능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첬다면 94년 독일전은 축구는 “자갈이 구르는 맨땅이 아닌 양탄자처럼 부드러운 잔디 위에서 해야한다”는 사실을 일깨웠고 그 때부터 축구장에 부랴부랴 잔디를 깔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축구사에서 독일과의 인연이 꼭 안 좋을 것 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첫 만남은 매우 해피했다. 차범근이라는 불세출의 공격수를 영입한 팀이 독일 분데스리가의 “프랑크푸르트”였으니까 말이다. 분데스리가 경력 10년을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절 반 씩 나누어 뛰고 은퇴한 차범근은 그저 좀 했던 흔한 공격수가 아니었다.
 
차범근은 독일 축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아직도 많은 독일인들은 차붐(차범근의 독일식 애칭)을 전설로 기억하고 있다. 전성기 차범근은 독일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몸 값이 비싼 축구선수였다. 나폴리가 마라도나를 영입하기 전 차범근을 먼저 영입하려 했지만 차범근의 높은 이적료를 감당 할 수 가 없어서 대체자로 선택한 것이 마라도나였다는 것이 축구계의 정설이다.
물론 마라도나는 세게최고의 이적료를 경신하며 바르셀로나에서 나폴리로 이적했다.
 
 차범근의 선수시절 중에 유럽의 꽤 권위있는 축구 전문 잡지 “풋볼”에서 20세기 가장 뛰어난 축구선수 4인(40명이 아니다 4명이다 단 4명)을 선정했던 적이 있다. 그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이름을 적어보자면 펠레, 마라도나, 베켄바우어, 그리고 차범근이었다.
농담하냐고? 이렇다! 차범근이 축구공으로 전 유럽을 폭격하는 와중이었지만  위성방송도 없던 시절그 상황을 알리 없는 자국민 만이 차범근을 무시한다.
 
펠레와 마라도나는 항상 지존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존재들이니 재론의 여지가 없고 베겐바우어는 고개가 좀 갸우뚱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아니라고 반박도 힘든 인물이지만 네 번째 자리는 그야말로 “죽음의 조”를 방불케 하는 혼전이다.
 
이름만 떠 올려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대스타들이 즐비하다. 영국 축구의 자존심 “보비찰튼” 토탈사커의 창시자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 게르만 전차 “칼 하인츠 루메니게”
독일 축구의 혼 “로타어 마테우스” 레알마드리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지상최고의 공격수 아르헨티나의 “알프레드 디 스테파뇨” 포루트칼의 흑표범 “에우제비오” 골키퍼로서 유일한 발롱도르 수상자인 러시아의 검은 거미 “레프 야신” 기타등등의 스타들을 제치고
“갈색 폭격기” 차범근을 선정한 풋볼지도 머리가 지끈거렸을 것이다.
 
당시 독일인들은 꼬레아가 어디 붙어있는 나라인지는 몰랐지만 차범근의 나라라는 사실 하나만은 알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국제시장이란 방화가 얼마나 아쉬운 영화인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개인의 일대기를 통해서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재 조명해보고자 하는 제작의도는 이미”포레스트 검프”를 통해 사전 학습이 되어 있어서인지 신선함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정말
아쉬운 것은 국내에 일자리가 없어서 서독으로 광부와 간호사로 떠나야 했던 인물들의
독일 생활이었다. 이국만리까지 날아가 석탄을 캐야 하는 광부와 시체 닦는 간호사의 고단함이야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거기에 덧 붙여 인종에 대한 차별도 당연히 만만치 않았을 것이었다.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차범근의 활약이 매우 큰 힘이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자기들이 기피하던 3D업종에서 근무하는 동양인들을 멸시하는 분위기는 어쩌면 당
연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디서 왔냐고 물었을 때 서툰 발음으로 “꼬레아” 라고 외치면 독일인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한결 같이 “차차붐?”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고압적이기만 하던 독일인들의 태도가 굉장히 많이 누그러졌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차범근이라는 인물은 단지 한 때 잘 나갔던 축구선수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굉장히 비중 있는 인물로 재평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 보았다. 그리고 그 전 까지만 해도 스포츠를 한 낱 흥행업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필자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아무리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찾아와서(그들의 방문이 의미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루 이틀 순회하며 위문을 해 준다고 해도 차범근 만큼 재독 한인들에게 자부심과 위안을 안겨
주지는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차붐 현상은 현재 진행중이라는
사실이다. 영화제작진이 축구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고 재독 한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외로움을 한번만 다시 생각해 보았더라면 그 당시의 독일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차범근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빼 먹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뭐 영화 평론할 생각은 아니고 그냥 서독 시퀀스에서 황정민과 김윤진의 만남이 단체 미팅이 아니라 단지 축구영웅 차붐의 나라라는 사실만으로 축구공 이라고는 구경도 못 해본 황정민이 현지인 축구시합에 끌려 나갔다가 다리가 골절이라도 되어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만나는 것이 좀 더 낫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인은 대한민국 축구가 최소한 현 시점에서는 더 이상 축구 후진국
도 변방도 아니라고 힘주어 외치고 싶다. 사실 이 말은 그 전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하라고 핀잔을 줄 때마다. 본인은 이렇게 일갈했다.
“차범근을 배출한 나라가 어떻게 축구변방일 수 있느냐? 중심이면 중심이지”
비단 축구 뿐만 아니라 야구로 좀 더 시야을 넓히더라도 월드 베이스 볼 클레식에서 대한민국이 선전을 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아무래도 시장이 좁고 인프라가 약한 국내리그 수준이 좀 떨어진다고 해도 탑 클레스의
선수들만 모아 놓으면 다들 소싯적 축구천재 소리 들으며 공만 찬 것은 독일이나 브라질
이나 대한민국이나 매일반이라는 생각이다. 어차피 인간의 신체능력이라는 것이 도진개진일 것인데 초반부터 너무 기가 죽어서 스웨덴전처럼 지지 않는 경기를 넘어서 여간해선 도저히 이길수 없는(상대방이 자책골을 넣지 않는 한.그마저도
문전에서 혼전상황이라도 만들어야 기대할 수 있는) 일방적인
수비 축구 전술은 지옥에나 던져버리고 상대가 아무리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위에 있다손 쳐도 적어도 상대방의 골 문을 열 수 있는 최소한의 활로는 가지고 경기를 운영해 나가는 축구야 말로 현 시점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삶이 아무리 모질고 답이 없는 것 같아도 그래도 살 수 있는 아니 살아야 할 한 갈래의 희망.
축구와 인생. 어쩐지 많이 닮았다.
 
개인적으로 이번 독일전은 대한민국 축구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있는 1승이라고 생각한다.
“하면 된다” 라는 구 시대의  되지도 않는 구호를 외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일본처럼 공 돌리기로 시간 떼우기로  승리하면 뭣 하겠는가. 우승을 해도 부끄럽고 답답할 뿐이다.  적어도 스포츠가 인간에게 갖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서 승패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만들어 나가는 축구를 갈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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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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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18-07-01 07:10:44
자게로 고고. 신문에 기고 하셔도 될 듯. 진심으로 널리 알리고 싶네요. 축구사에 대한 열정과 지식. 가치관에 감동했습니다.
익명 / 한국이 너무 일찍 귀국하는 바람에 너무 아쉬워서 썼습니다. 관심 보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익명 2018-06-30 19:07:08
우와 글 좋네요. 직접 쓰신글?
익명 / 네 자작인데 오타가 많아서 죄송합니다. ㅎㅎ
익명 / 진짜 신문에 칼럼으로 기재해도 손색없는 글입니다. 저는 어디서 퍼온 글인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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