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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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1때 잼버리 대회 같은 게 있었다. 그렇다고 하자. 명칭은 정확하진 않다. 모두의 목적지는 완도였다. 그때 나는 마이마이에 마이 셀프 앨범을 넣고 랩과 가사를 따라 부르고 리버스로 복기 하며 덜컹 대는 버스의 리듬을 따랐다. 경유 광주 터미널. 게욱질. 전라도 사투리인가 보다. 터미널 곳곳에 머리가 깨지고 신체를 관통해 흘러내린 몸의 잔해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그것들이 게욱질이 되어 누군가 내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완도에 도착해 배정 받은 숙소에 2박 3일을 같이 했다. 우리는 낮이면 지도와 나침반을 손에 쥐고 누가 먼저 목적지를 선점 하냐는 프로그램에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석식 후 숙소에 누워 온갖 사투리가 난무하는 공간에 낯선 언어들과 무람하게 뒤얽힌 기억이 선연하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계절은 축제며 나는 무대에 올라 넥스트의 곡과 미스터 빅의 곡을 완창 할 때였다. 이때의 우리는 겉멋에 꽤나 열중했다. 양아치가 되기 싫었던 몇몇 종자들이 서로의 취향을 뽐내던 시기였다. 그리고 음악도시, 고스트 스테이션 간간이 발표하던 곡들. 시사 프로그램과 예능들. 기꺼이 공유 했을 것이다 팬덤에 속절없던 시절에도 그들만의 주파수가 있었던 시절을. 신해철과 윤상이 사운드를 실험했던 때에도 기꺼했던 시절을. 다시 여기. 매년이 아님에도 그의 언어는 가끔 지침으로 찌른다. 감히 말하자면 노란 그대와 그대는 내게 균등히 깊은 무언가를 심어 줬다. 그대들의 아내와 자식들을 때로 생각한다. 이제 남겨진 그대들은 그야말로 남겨진 그대들이다. 원해 목소리 듣는 날이면 뒤돌아 보지 않아도 마음 아프다. 남겨진 나는 살아 갈 것이고 게욱질처럼 가끔 토해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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