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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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같은 악몽을 꾸다 일어난다. 몸은 단단히 굳어있고 그 때문에 눈조차 떠지질 않는다. 맥박이 어찌나 빨리 뛰는지 맥박 소리에 맞춰 내 몸이 요동을 친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복도형 아파트를 숙소로 쓰던 회사를 다니던 때의 일이다. 아파트 주민의 대부분이 근처 공단의 근로자였던 그 아파트의 아침 출근 시간 승강기는 내가 머물던 층 아랫층에서 매일 만원이었다. 아랫층 사람들은 만원인 것을 알면서도 매일같이 끈질기게 만원 승강기에 타려고 했는데 지체되는 시간에도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었다. 승강기 안 사람들은 서로가 회사 유니폼을 입지 않는 이상 어느 회사 사람인지도 몰랐고 나이도 이름도 몰랐지만 아침 출근 승강기 안에서는 눈인사를 나눴다. 매일 보는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 아이도 있었다. 열흘 정도 보다보니 익숙해져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사이까지 되었다. 나는 매일 같이 야근을 하는 설계팀이었던터라 퇴근 시간 승강기에서 그 여자아이를 만날 수는 없었다. 한번의 거대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야근이 잠시 사라졌을 무렵에는 퇴근 승강기에서 몇번 그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예쁘게 생겼고 착하게 생겼고 성실하게 생겼었던 아이였다. 하지만 특별히 이성에게 갖는 감정이나 욕구가 일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침마다 보고 종종 퇴근길에도 보니 이쯤되면 친해져도 되지 않을가 싶어 퇴근길 승강기 안에서 단둘이 있게 되던 날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 저 9층인데요, 아시죠?" " 네, 알죠." 기분 나쁘지 않은 얼굴로, 억지가 아닌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 저는 2x살인데 그쪽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아 저도 2x살이에요. 친구네요!" " 그렇네요. 동갑이네." " 하하 오빠인줄 알았는데." 이년이... 그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새 9층. " 안녕히 가세요." 나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밀폐된 공간에서 어렵사리 말을 건내어 대답까지 듣게된 성취감에 가슴이 콩닥거리지도 않았고 잘 될 것 같다는 기대감도 없이 씻고 TV를 보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승강기에서도 그 여자아이를 봤다. 평소보다 더 밝은 눈인사를 나눴다. 그 여자아이는 항상 밝았다. 나도 물론 그랬다. 몇번의 퇴근길 승강기에서 단둘이 만나게 되었고 존댓말로 시시콜콜한 대화를 짧게 짧게 나누었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보통 때보다 곱절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퇴근길. 승강기 안에서 그 여자아이를 만났다. 평소 밝아보이던 그 아이의 얼굴에 그늘이 지어있었다. 나는 눈치껏 너무 밝지 않은 인사를 건냈고 그 아이도 기운 빠지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대화없이 승강기 안 거울이나 만지작 거리며 올라가고 있었다. 내가 사는 9층에 거의 다 도착했을 쯤. " 저기... 올라가서 같이 맥주 마실래요??" 라고 그 아이가 말했다. " 띵~" 승강기가 9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나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 제가 술을 안마셔서요. 안녕히 가세요." 하고 뒷걸음질로 승강기를 나왔다. 그 날 이후로 한번도 그 아이를 본적이 없다. 아마도 그 날이 회사 마지막 출근 날이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의 말을 이렇게도 해석해보고 저렇게도 해석해보는 것을 매우 귀찮아 한다. 그렇기에 남의 말은 곧이 곧대로 듣는다. 약점이면 약점이고 단점이라면 큰 단점이다. 남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 줘도 못먹는 병신, 죄못병.' 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먹을 것이 맥주였을지 그 아이의 살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크게 신경쓰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냥 내 선택이었으니까. 그런데 몇년이 지난 후부터 그날의 일이 악몽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똑같이 승강기 안에서 펼쳐지는 꿈이었지만 어느날은 그 아이가 내 옆집에 사는 이웃이 되어 현관문 바로 앞에서 검은 봉다리를 들고 말하기 까지 한다. 현실에선 그냥 넘어갔던 일이었지만 꿈속에선 그 말이 너무 무섭게 들려 잠에서 깨게 된다. 그냥 줘못병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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