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쎅설] 민석의 기묘한 모험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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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꼬이지 않는다. 단지 풀기가 어려울 뿐. 특히 연애가 그렇다. 민석은 얼마 전 소개팅을 했던 고미연으로부터 까였다. 참 잘 풀리던 흐름이었고 진심으로 호감이 갔다. 차인 이유는 참 이스테리 했다. 미연이 개를 키우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둘은 서로의 저녁 메뉴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서로에 대해 숨기는 것이 없었고, 그날 하필이면 엄마가 보신탕을 사 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까이고 말았다. 주변에서도 고작 식성 가지고 까일 소개팅이었으면 지금이나마 쫑난게 낫다고 말해주었지만, 민석은 진심으로 상처입고 괴로워 했다. 그리고 민석은 타락했다. 타락은 별게 아니었다. 까인 당일 날 친구들이 위로를 해준답시고 그를 노래방에 데려간 게 시초였다. 민석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들은 노래방 도우미를 불렀다. 소개팅만 좀 해봤지 삼십대가 되도록 모태솔로였던 그는 여자에 대해서는 쑥맥이었다. 민석은 그날 아무것도 못했다. 다만 그는 무언가 그 자리에서 깨달은 건지 무너진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건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혼자서라도 노래방을 가기 시작했다. 가면 으레 도우미를 불렀고, 점점 노래방 도우미에 중독되어 갔다. 그는 여자가 없기에 남는 건 돈과 시간 뿐이었다. 진짜 미친 사람처럼 노래방을 갔다. 심지어 노래방 경험이 없는 친구들을 모아 나름대로 베풀면서 자신의 노래방 편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노래방을 처음 갈 땐 아무 말도 못했던 민석은 점점 말이 늘어갔으며 나중엔 스킨쉽도 곧 잘하기 시작했다. 뭐든 하면 는다. 원래 공부를 잘했던 민석은 유흥도 빠르게 늘어갔다. 거의 진짜 미친 사람처럼 유흥을 했다. 노래방 도우미를 다루는 능력이 늘었을 때 그는 이제 더 깊은 세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차마 표현하지 못할 영역까지 넘어갔다. 그건 넘어가기로 하자. 다만 돈을 무지막지하게 썼다는 것 하나만 말하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신이 무너져 있던 민석에게 기묘한 인연이 찾아왔다. 소개팅을 주선해준 주선자를 떠올린 그는 뒤늦게나마 고마움의 표시를 다시금하기로 했다. 어찌됐건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준 사람 중 한명이니까. 아, 또 한명 고마운 사람이 있다. 소개팅 상대방이 소개팅 주선자의 친구의 사촌동생이었다. 그러니까 이중 주선자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관계도가 참 복잡하구나 하고 민석은 생각했다. 뭐, 그건 큰 의미 없으니 일단 직장 동료였던 주선자한테 말을 걸었다. “밥 한 번 쏠게.” “오, 왠일이에요?” “아니, 생각해보면 미연이 소개팅을 해준게 너니까.” 그렇게 저녁약속을 잡고 카톡을 주고받고 있는데, “아, 근데 친구랑 지금 놀고 있는데 친구 데려가도 돼요?” “어, 뭐 상관없지.” “네, 그럼 이따가 일곱시에 시청역에서.” “이따보자.” 그렇게 일곱시가 되었고, 민석은 별 생각없이 시청역으로 갔다. 시청역에 가자 이미 주선자인 김유선과 또 한 명의 아가씨가 와 있었고, 일단 시청역 근처의 무난한 식당을 가고자 하였다. “회 먹고 싶어요.” “그럼 무난하게 일식집을 갈까. 시끄러운 것도 싫고.” “참치 사줘요!” 돈이 무지 들겠는걸. 근데 뭐 감사인사 형식으로 하는 거니까 상관없다고 민석은 생각했다. 그는 평소 가족끼리 가던 참치집으로 갔다. 룸을 하나 잡고, 참치 머리를 시킨 후 식사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는 멍하니 있다가 문득 한 명의 손님이 더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유선이 민석에게 눈치를 주자 “아 우리 통성명도 안 했네요. 저는 김민석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고 민이에요.” “고민이라구요?” “이름 이상하죠? 외자기도 하고 고민이라고 엄청 놀림 받았어요.” “뭐 잘 생각해보면 이쁜 이름이기도 한데요.” 뭔가 요즘 내 주변에 고씨가 많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무렵에 먹을 게 들어왔다. 민석은 종업원을 향해 “그러고보니 같이 먹을 술도 필요할 거 같네요. 추천 좀 해주시겠어요?” “사케 종류로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추천 받은 사케를 골랐다. 술 한병에 거의 십여만원 짜리였다. 참치값도 꽤 드는데 술값도 많이 들겠구나. 민석은 긴장하였다. 술이 들어가고 더워지자 유선은 웃옷을 벗었는데 안에는 반팔만 있었다. “아니 3월인데 반팔을 입어?” “더운걸요.” “여름에는 어쩌려구?” “더 얇게 입고 와야죠, 뭐.” 이에 옆에 있던 민이 거들었다. “얘가 이렇다니까요. 뭐 몸에 열이 많다나.” “몸에 열이 많은 것도 죄였어?” “아니 그런데 노출이 심하잖이.” “내 몸 내가 노출한다는데 뭔 상관?” 사실 민석도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유흥이고 뭐고 그냥 지인의 노출에는 익숙하지 못한 것이었다. 분위기는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무언가 흥미로운 것은,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 민과 민석 사이에서 무언가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민석씨는 정말 재밌는 사람 같아요.” “뭐 그렇게 재밌는 사람은 아닌데, 고맙습니다 하하.” “민석씨는 제 첫 인상이 어떤 거 같아요?” “좋은 분 같아요.” “민씨는 제 첫인상이 어떤데요?” “호감이 가네요.” 민석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래저래 모든 대화에서 민은 묘한 돌직구로 민석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다. 술이 점점 취해갈 무렵이 되어서는. “아니이 그러니까 오빠 내가 사실은 섹드립을 무지 좋아해요.” “아니 안 그렇게 생기셨는데.” “오빠 여자 끼고 놀아본 적 있어요?” 민석은 유흥의 달인이었지만 주변에서는 모태솔로 순진남 이미지였다. 사실 주변에서는 바보취급을 했다. “아니 없는데요.” “옆으로 가서 앉아도 되요?” 민석은 기겁했다. “아뇨 아니에요.” “반응봐 리액션 너무 마음에 들어.” 유선도 같이 웃었다. 유선이 말하길. “아 너무 더운데 반팔티도 벗을까” “아니 그건 안된다구.” “그냥 놀린거야.” 두 여자의 야한 농담 파상공격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민석은 그렇게나 놀리기 좋은 남자였다. “오빠는 여자랑 자본 적은 있어요?” “아니 이 오빠가 나이가 몇 개인데 여자경험이 없겠어?” 사실 민석은 유흥을 제외하고 여자랑 자본 적이 없다. “아니, 없는데...” “병신이네!” 두 사람이 웃는 소리. 얼굴을 붉히는 민석. 그럼에도 딱히 화는 나지 않았다. “오빠 그럼 숫총각이야?” “아니 그게 내 잘못이야?” “난 이 오빠 좋은데?” “뭐?” “모태솔로 매력있어!” “제가요?” 내가요? 술은 계속해서 들어갔고, 야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세 명은 중간중간 나가서 담배도 피웠다. “저는 담배피는 여자가 좋더라구요.” “여자 양아치 좋아하시는구나.” “평생 공부만 하고 살다보니 그런 로망이 있어가지구.” “진짜 특이 취향이다 오빠는.” “내 모솔 친구들은 다 그런데?” “모솔들은 그런 면이 있는건가?” “아 그러고보니 모솔 친구 한명이 내일 인생 첫 소개팅 하는데.” “와 대박.” “그래서 소개팅 만큼은 줄창 겪어본 내가 조언 많이 해줬지.” “소개팅 줄창 겪어보고 연애회수는 제로!” “그래도 소개팅은 열 번은 넘게 해봤다구?” 유선이 불렀다. “뭐해 들어가자!” 담배 시간이 끝나면 다시 술을 먹고 술을 먹다보면 다시 담배를 피러 나오고 반복되는 사이클. 다만 그럴수록 각자 마신 술은 늘어나고 취기가 머리 끝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참치집에 사케 세병. 돈은 끝내주게 많이 썼다. “와 육십만원 가까이 썼네.” “오빠 잘 먹었어!” “오빠 노래방 가요!” 근처를 뒤져 노래방을 갔다. 노래방에서 받은 가격이 터무니 없자 민이 싸우기 시작했다. “아니 이 시간대 노래방 가격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가격을 깎아주지는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점원. 사실 민석은 왜 그렇게 비싼 가격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노래방은 도우미를 받는 타입의 노래방이었던 것이다. 그럼 기본 가격이 비싸게 나온다. “그냥 들어가자.” “흥 기억해둘거야!” 안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엔 자신은 없지만 이상하게 고음 뽑아내는 곡만 부르는 민석은 온갖 고음 노래를 골랐고, 나머지 둘도 이런 저런 재밌는 노래로 흥을 띄웠다. “오빤 노래방에 아가씨 불러 놀아본 적 없죠?” “있겠어?” “그럼 내가 놀아줄게.” 말죽거리 잔혹사의 김부선도 아니고. 그렇게 민은 민석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민석은 당황하면서도 익숙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적어도 도우미가 아닌 여자가 노래방에서 민석의 품 안으로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유선은 둘이 노는 꼴을 보고 웃어재꼈다. 민이 자기 노래 차례가 되어서 앞으로 나가서서 부를 때, 유선이 말을 걸었다. “오빠 어때 좋아요?” “좋은 거 같은데.” “망한 소개팅의 상처를 잊어보라고 내가 자리 만든거니까 한번 잘 해봐요.” “뭐라고 해야하는데?” “좋다구 하면 되지.” 민이 다시 앉아 둘의 대화를 물어보았다. “무슨 대화 했어요?” “너 좋다구” 유선이 “멍청아 지금 말하면 그게 무슨 타이밍이야.” 민석은 순진한지 바보인건지 쓰레기인건지 알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렇게 재밌는 노래방 자리도 끝났다. 세 번째 자리는 맥주집이었다. 맥주를 하면서 다시 별의 별 대화를 하다가 민이 갑작스레 고백하기 시작했다. “저 사실은 한 번 갔다왔어요.” “뭐를?” “흔히 세간에서 말하는 돌싱...이에요.” “음?” “아이도 있어요 세 살 된 아들.” “아 그러시구나.” 그러나 한 번 생긴 호감이 그리 쉽게 사라질까. 애초에 민석은 어딘지 그런걸 나누는게 없는 인간이었다. 원래부터 그랬다. 편견을 혐오하는 타입이었던 민석은 생각이 열려 있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닫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뇌구조를 지닌 생물이었다. “최근에 영화를 봤어.” “아니 이 상황에서 무슨 영화 얘길.” “아니 짧게 얘기할게.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거든.” 민석은 영화를 되새기며 얘기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잘못이....아니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민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민석도 그 감정을 이해했는지 손을 잡는다. 중간쯤 상황을 눈치챈 유선은 자리를 떠나고, 이제 둘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둘은 맥주집을 한 차례 더 돌고, 그리고 모텔을 들러 섹스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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