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세이] H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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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익명으로 쓰곤 했는데 이제는 저를 드러내는게 부끄럽지 않아요. 굳이 장르를 [소설/에세이]라고 정한 이유는 사실을 바탕으로 쓰면서도 특정 정보를 가리기 위해 허구를 입혔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대로의 경험을 전달하는 [썰]과는 조금 다르게, 저는 제 생각과 감정 전달에 더 집중하고자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 #0 “모든 인간의 생활은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하나의 길이고, 그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암시이다” -
데미안의 작가인 헤르만 헤세는 스스로 소망하고 꿈꾸는 바를 실현할 것을 말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오는 고통을 아기새가 알을 깨고 나올 때의 충격으로 비유했다. 아기 새는 알 안에서 껍질을 깨려고 힘쓴다. 어미 새는 알이 깨질 수 있도록 알 밖에서 껍질을 쫀다. #1 시작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시작이 더 빨랐을 수 있을까. 후회에서 오는 질문은 아니다. 그만큼의 고민과 주저함이 있었기에 그 시작의 경험이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더 빨리’의 섣부름이 아닌 ‘무엇을 해했고’,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의 상태와 단계의 준비였다. 아 물론 섣부름과 적극성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나는 이런 상태와 단계를 중요시하며 레홀에서의 만남을 이어왔다. #2 익명의 글을 읽고 쓴이에 대해 궁금해졌다. 뱃지를 보내면서 쪽지로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는 댓글을 남겼다. 보통은 소개글을 보고 관심이 가면 쪽지를 보내고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인연을 만들곤 한다. 관심이 가는 익명의 글에 뱃지를 보낸적은 종종 있는데 댓글까지 보내서 “쪽지 보내주세요”라고 한 적은 처음이었다. 쪽지가 올 것이라는 기대는 크게 안했다. 몇분이 지났을까, 쪽지 알람이 왔다. 익명의 글쓴이는 H였다. “쪽지달라고 뱃지까지 보내시고..우선 뱃지는 감사합니다” 건조한 내용 안에서 조금의 의미라도 찾아본다. 단순히 뱃지에 대한 감사함을 전달하려는 것일 수 있기에 나는 내 소개를 짧게 하면서 대화를 해보고 싶다고 답신을 주었다. 그녀도 나의 글에 대한 화답으로 본인이 썼었지만 올리지 않았던 자신의 소개글을 전달해주었다. 몇 번의 쪽지를 주고 받으면서 우리는 오픈카톡방으로 넘어갔다. #3 H는 올 해 레홀 활동을 시작했고 아직 레홀에서는 누구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일탈을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고, 해보고 싶은데 상상이야 쉽지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라 주저하고 있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랬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바로 적극성을 표현하기가 주저되었다. 서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서로의 만남에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도록 일탈에 대한 대화도 이어갔다. “어떤 이유로 일탈을 해보고 싶으신건가요?” - 애인과 결혼생각으로 만나고 있는데 서로가 서로를 남녀로 안봐요 “성욕이 적으신 편이가요? 혼자 자위를 하시나요? - 막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레홀 활동을 하다보면 성욕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만나왔던 애인이외에는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해본 적이 없어요. 섹스에 적극적인 편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일탈을 시작해보고 싶으신건가요?” - 애인이 아닌 사람과의 섹스? 그리고 H는 나에게 물었다. “애인이 있는 사람과의 섹스도 괜찮으세요?” #4 몇번의 대화 이후에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주고 받을 정도로 서로를 오픈했다. 얼굴에 ‘순수’가 써 있을 정도로 일탈과는 거리가 먼 인상이었다. 물론 내 외모가 일탈과는 거리가 가까운 인상은 아니다. H는 이 모든 대화가 이전의 자신이라면 생각해지 못했을 정도의 내용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H는 최선을 다해 표현하였다. “저도 애무를 많이 받고 싶은데 물이 많아서 금방 젖으니까.. 바로 삽입을. 그래서..사실 섹스가 좋아. 이런거가 없어요 아마도 배려가 부족하거나 솔직함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요. #5 나도 레홀에서 연애 상대를 찾는 것은 아니었다. 욕심이지만 그냥 편한 만남을 원했다. 누구나 다 만나는 것은 아니다. 레홀에서도 이어진 인연이 열 명이면, 섹스까지 이어지는 대상은 다섯 명 정도일정도로 나의 취향도 중요하다. 한번의 섹스라도 서로에게만 집중하고, 서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최대한의 솔직한 섹스를 하고 싶었다.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만나자, 만나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나의 목적을 모두 솔직하게 오픈하였기에 우리 만남의 키는 H가 가지고 있었다. “제가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어서..그냥 대화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만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혹 만난다면 저는 님과 만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마음의 어느정도 결심이 선 H에게 우리는 사는 곳이나 일하는 곳의 지역도 같으니 마음의 준비가 되면 편하게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H가 용기를 내었다. “그럼 우리 약속을 잡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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