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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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의 문항이었고, 사실 이 문제 꽤나 깊게 생각했었는데 자소서에 다 쓰긴 적절하지 않아서 대략 짚는 수준으로 썼더랬죠. 전 이 조어 자체가 좀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혐'이란 단어를 보시죠. 무언가를 싫어한다는 의미이긴 한데 제가 보는 용례는 유전자적으로 싫다는겁니다. 혐기성과 호기성, 어떤 유기체가 산소를 좋아하느냐 마느냐는 것을 표현하죠. 비슷하게 혐수성, 혐광성 등이 있습니다. 유전자적 기피인데, 왜냐하면 이 혐하는 대상이 근방에 있으면 정상적으로 생장이 안되거나 죽거든요.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기피합니다. 그런데 여성은 당연히 인구의 반이거든요. 그런 규모가 혐의 대상이라면 인류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혐'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성이 많은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고, 명백히 그러한 사례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말을 다르게 바꾸어야 한다고 봅니다. '약자증오'로요. 여성은 약자로 확장하고, 혐오는 증오로 바꾸어야 합니다. 약자를 왜 증오하려 할까요? 약자는 리터럴리 약자라서 아무런 조치가 없으면 사회적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입니다. 강자는 강자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고 또한 병행할 수 있습니다. 강자와 약자의 서열을 고착화하도록 강자는 더욱 강해지거나 약자는 더욱 약하게 하는 것이죠. 자강하여 보다 강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약자를 더욱 약하게 하는 방법도 가능하죠. 상대적이니까요. 강한 순서대로 존재한다고 할 때, 야비한 사회는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합니다. 사회의 야비한 성향이 강화될수록 이 연쇄는 강화됩니다. 그래서 최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약자를 증오합니다. 그렇습니다, 증오합니다. 증오란 감정을 품어 가학하는 것이죠. 이런 양상은 적잖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동시에, 약자증오를 교묘하게 여성혐오로 바꿔치기한 의도를 좋게 봐줄 수 없습니다. 여성혐오가 약자증오로 불려야 하는 이유는, 여성혐오라는 조어 자체가 약자증오의 개념에 포섭되기 때문이죠. 여성혐오를 주장하는 분들은 아마도 주류적으로 최약층 우대를 엮습니다. 여성은 사회적 혐오를 당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기회에서 좀 더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죠. 그러나 어퍼머티브 액션을 인구의 절반에 부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성비를 맞춘다면 맞출 필요가 분명한 자리여야 하겠습니다. 보편적으로 성비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곤란합니다. 예컨대 여성분들 군복무 하시겠습니까? 전 군필자고 아직도 국가가 잊질 않아 때되면 부르는 입장이지만 그런 저도 반대합니다. 전쟁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여튼 어퍼머티브 액션이 공격받는 지점은 성과주의의 예외가 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상당히 제한적으로 운용되어야 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성과주의가 너무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죠. 성과와 별개로 보상이 돌아간다는 상상을 해보시죠. 100의 노력을 했는데 누구는 만을 주고 누구는 10을 준다면요? 성과와 무관한 보상이기 때문에 만을 받은 자는 요행을 바라게 되고 10을 받은 자는 분노합니다. 그런 사회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런 결과가 용인되려면 성과주의를 일부 희생해서라도 추구할 절실한 어떤 가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퍼머티브 액션이 제한적으로 운용되는 것이죠. 그래서 너무 무리인 주장이고, 그래서 수용하기 곤란합니다. 바로 그 지점인데, 여성혐오가 약자증오의 양상을 띄는 것은, 그러한 어퍼머티브 액션에 여성만 넣어달라고, 다른 약자를 배제해달라고 주장하거든요. 최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약자를 증오하는 성격을 띄죠, 바로 약자증오에요. 다 그렇진 않다구요? 유감스럽지만 말이에요, 그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 극단주의자들이라구요? 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인 것 잘 압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과잉대표되는 상황을 막지 못했습니다. 저지할 움직임도 크게 보이지 않구요. 예컨대 말이죠. 저는 극우개신교를, 네 명확히 '증오'합니다-전 종교가 자기 본령에 충실하며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고 실현하는 선에서 활동한다면 뭐든 리스펙트합니다. 그들의 주장이 약자혐오에 속하지요. 남자의 자지를 항문에, 특히 남자의 항문에 넣으면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던데, 저는 그들이 자신이 모시는 신을 어째서 '관음의 신'으로 격하시키는지 ㅋ 아주 우습지요. 그런데 제가 이런 성향을 드러내면 어떤 개신교인들은 그건 일부라고 주장합니다. 그 주장에는 일부를 가려주지 않는 저를 힐난하는 정서가 충분히 담겨있죠. 네, 그거 분간해드릴 친절을 제공할 이유, 나노 입자 하나만큼도 없습니다. 난 당신들에게 진 빚도 없으니까요. 페미니즘 진영도 개신교도 저게 월급을 주거나 밥 한 술 주지 않으며 요구할 생각도 없고 성사될리도 없으며 준다한들 굶어 죽기를 택하겠습니다. 우리는 철저한 남입니다. 상황에 따라 연대할 가치가 있다면 거기 응해줄 수는 있다 정도죠. 그것도 아주 느슨한 연대로요. 그러나 일말 여성혐오라는 주장에 동조하시는 것도 저는 이해할 수 있고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의 잔혹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죠. 예컨대 저는 일상에 불안이 한 점도 없습니다. 불시에 위협을 받는다는 생각 자체가 의식에 없습니다. 그런 경험이 직간접적으로 전혀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남자의 완력은 여자를 압도하며, 뭐 전 운동도 하고 아주 늘씬한 키는 아니어도 덩치가 좋거든요. 하지만 여성분들은 전혀 다르죠. 예컨대 저는 신촌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당시 유영철이 학교 뒷산이 시체를 묻었구요, 제 엄니는 약수터 갔다가 유영철이 현장검증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조두순 사건이 났을 적에 엄니는 제게 말하셨습니다. [너도 초등학생한테 욕정을 느껴?/엄마, 나 엄마 아들이야/남자는 다 똑같다 ㅉㅉㅉ] 친아들을 불신할 정도로 그 공포가 강렬하셨겠죠. 이외에도 여성을 향한 잔혹한 범죄의 사례는 수두루빽빽입니다. 그런 사건들에 강렬한 인상을 받으며 동시에 적잖은 성추행 내지 질척임을 받았다면 시너지가 발생해 여성혐오 주장에 동조하는 것,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게 또 하나의 약자증오로 발현된다는 것을 깨닫고 자정하는 활동에 천착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권해드립니다. 주제를 좀 바꿔서, 이 약자증오의 정서는 아주 야비한데, 저 최약자를 굶겨서 최약자 아닌 내 배때지에 기름을 채워달라는 식이거든요 ㅋ 다른 선택, 자강의 선택을 해야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약자증오의 양상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은 동시에 여성을 원합니다. 내가 강자가 되면 여성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믿음을 가진 분들 적잖다가 아니라 백이면 백입니다 ㅋ 그렇죠, 아마도 성도착증에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안범, 유영철 부류가 아니면 그럴겁니다. 왜 이럴까요? 그건 여성을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대가 가능한 것이구요. 학대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정의는 이렇다고 봅니다. 인간을 목적이 전혀 없는 수단으로 보는 것이죠. 칸트 정언명령인가 그거 반대죠? 인간은 인간 아닌 취급을 받았을 때 자기 존엄에 대한 가장 가혹한 상처를 받고, 마음의 상처는 복구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데, 제가 보기에 그건 진통제에요. 오래 진통제 맞아서 거의 마비되었을 뿐이죠. 같은 양상을 반복하면 그 상처는 격렬히 터질겁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안겪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학대할 상대방을 '혐'하셔야죠. 혐학, 학대를 혐오하는 성향을 갖는게 하나의 방법이라고 봅니다. 뭐 그렇다고 bdsm에 반대한다는 입장은 아닙니다. 제가 글들 읽어봤을 때는 그게 성적 쾌감을 더 고조시키는 역할을 해서 하는 것이고, 애정을 표현하는 다른 방식이라고 보거든요. 그 둘만이 공유하는 특별한 언어이기 때문에, 그 언어가 애정 표현이라 믿고, 가타부타하지 않습니다. 전 별 생각없지만요. 그럼 이만 총총 덧. 무선 키보드 너무 싸구려를 써서 그런지 입력이 뭔가 씹히는데, 오타는 알아서 교정해 읽으시리라 믿습니다 ㅋ 덧덧. 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출제자의 의도를 곡해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면, 문항 구성이 여성혐오 믿고 거르라는 느낌으로 구성되서 그렇습니다. 전 알고 거르지, 믿고 거르지 않는 성격이라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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