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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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태어난 나는 제주를 좋아해요. 바라만 보고 있어도 평온해지는 바다색과 파도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하늘과 바다가 계속 이어지는 듯한 그 경계가 모호한 풍경. 멀리서 서 있어도 그렇게 이어진 바다와 하늘을 볼수 있는 제주가 그래서 좋은가봐요. 로또가 당첨되면 애월에 허름한 집 두채를 사서 내 손으로 조금씩 고쳐살고 싶다고, 가을엔 당근이랑 무를 뽑고 겨울엔 귤따는 일을하며 살고 싶을 만큼 제주가 좋아요 또 나는 비를 좋아해요. 어떤날은 비릿한 냄새 어떤날은 묵직한 흙냄새가 느껴지는 빗속에서 비를 맞고 서서 폐가 열리도록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비 냄새 너무 좋다... 라고 할만큼 비를 좋아해요. 한달전쯤 미리 약속해 두었던 당신을 만나기로 했던 날은 비가 내렸고. 내가 좋아하는 제주에서 좋아하는 비가 내리던 날 그리고 당신까지.. 완벽! 제주에 먼저 와 있던 나를 만나러 제주로 내려온 당신을 공항에서 기다리던 그 시간 긴장하려 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나는 사실 너무 많이 긴장하고 두근거렸어요. (물론 일 때문에 오긴했지만 서울도 아니고 왜 우린 하필 제주에서 첫 만남을 했을까) "이렇게 첫 만남을 진짜 제주에서 하게 되네요." 당신의 첫 인상은 깔끔하고 역시 목소리는 좋고 다리가 엄청..길다.. 음.. 길다.. 멋있다. 그리고 분명 당신을 처음 봤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 나는 키가 크고 너무 마르지도 크지도 않은 체형을 가지고 목소리가 좋고 노래도 잘하고 거기에 엉덩이도 예쁘면.. 쌍꺼풀 없는 눈 너무 곱지 않고 약간 남자스런 굴곡의 턱선 살짝 높은 코 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내가 모르는 걸 차분하게 잘 설명해주는 남자 평소에 깔끔한 스타일을 즐기고 착 걸친 수트가 멋지게 어울리고 샤프하지만 다정함도 가지고 있는 그런 남자. 이건 내 이상형. 그리고 내 이상형은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아빠 아... 그 지하철 그때 그 사람! 살면서 외모가 내 이상형과 딱 맞는 남자를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완벽하게 내 이상형에 일치했던 지하철에서 스쳐간 후 잊었던 그 남자 그 남자가 내 앞에서 가끔 나를 놀리는 말투로 웃고 말을 하고 살짝 까칠해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털털하고 복스럽게 고등어 회와 달달한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는게 믿기지 않았던 꿈인가? 이게 기적인가? 라는 마음 얼마나 설레고 긴장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말을 내게 해주었는지 마치 영화속 어떤 장면처럼 귓가에 윙윙대고 지금도 명확하지 않은 기억 그리고 조금 더 지나 알게된 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된 이유 당신의 나이 정도쯤의 우리 아빠의 젊은 모습 사진을 보는데 그냥 당신이 거기 있더라구요. 입매 눈매 살짝 꺼진볼 귀까지! 빗속을 걷다 멈춰 선 걸음 힘든일이 있었다고 힘겹게 꺼낸 당신의 말 그리고 그 표정 나는 지금도 그때의 당신을 그냥 꼭 안아주지 못했던 걸 후회해요. 당신은 너무 컸고 나는 너무 용기가 없었죠. 그때 하지 못했던 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주고 싶어요. "많이 힘들었죠.. 내가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온기는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쉽지 않았을텐데 나에게 말해주어서 고마웠어요. 우리에겐 아무일도 없었지만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그 밤 피곤함에 잠든 당신을 조금 떨어져서 한참을 보다 비가 내리고 있는 창밖을 보다 나는 그때 알았어요.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겠구나.. 그래서 나는 어쩌면 당신의 배려에 계속 괜찮다고 했었고, 그 거절에 당신은 내가 거리를 둔다고 생각했을수도 있었겠지만, 아침부터 바쁜 일정이 있는 걸 알아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과 나는 당신을 좋아하게 되는게 좀 두려웠던 거 같아요. 나이를 먹어도 애정이 담겨진 감정에는 서툴고 사랑의 감정은 두려운 쫄보라서 혹시나 괜한 내 고백에 돌아올 당신의 거절이 두려웠고, 꼭 애정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오래 보고싶은 사람이였거든요. 나는 원래 밝고 유쾌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예요. 당신을 만나고는 왠지 그 밝음을 내보이는게 어려웠고 조심스러웠어요. 힘든 시간을 겪고있는 당신의 마음을 늘 살피느라 정작 내 마음은 살펴주지 못했고, 진짜 내 매력은 하나도 보여주지 못해서 많이 아쉬운 당신의 눈을 보며 내가 잠시 당신을 많이 좋아했었다고 그리고 다시 누군가로 인해 설레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안타깝게 그럴 기회가 우리에게 놓여지지 않았지만 당신이 꿈꾸는 모든 만남을 당신의 멋진 일을 언제나 응원할께요. 당신의 소소한 얘기와 비밀 내 얘기를 들어주던 밤과 낮 그리고 따뜻함과 위로를 주고 나를 설레이게 했던 시간 저는 오늘 제주의 밤바람과 밤바다에 그때 그 설레이던 마음들을 모두 다 놓고 갑니다. 홀가분하게 남김없이 >> 익명으로 올린글에 유부다 제주도에 계신 분이다 라는 가짜 뉴스와 제주 홍보를 위한 글이다... 라는 분까지 ㅎ 그런 사람도 그런일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이 분을 만나고 제가 느낀 감정들을 가끔 끄적여 본적이 있어요. 레홀에도 그리고 제 노트에도 .. 그 글들을 모아모아 그리고 잘 다듬어서 작은 책을 내보려고 마음 먹었답니다.. 아직은 엄청 많이 부족하지만.. 책을 내어도 저 혼자 소장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보려고요. 어려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감정이 많이 흩어지면서 그런 꿈을 놓고 살다 이런 얘기를 했을때 '다시 조금씩 글을 써봐요. 그럼 또 좋은 글을 쓸수도 있으니까요' 라고 말해준 좋은 사람.. 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던 사람에게 나중에 꼭 책을 선물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제주의 밤은 깊고 푸르네요. 마치 그 사람과 아침이 올때까지 대화했던 그 깊은 밤처럼. 밤이 너무 깊고 아름다워서 주절주절 긴 글을 써보며 설레이고 가끔 많이 울었던 마음을 이제 정리하고 싶었어요. 보아주셔서 감사하고 레홀스럽지 않은 글이라 죄송합니다. 깊고 푸르고 아름다운 시간이 흐르는 밤이 되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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