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오래 남는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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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똑"
친구: “찾았어?” 나: “뭘 찾아?” 친구: “가출 성요기 말이다.” 나: “ㅋㅋ아놔...걔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애가 아닌 것 같단 말이징~” 이렇게 시작된 톡. 사실은, ‘멍XX의 성요기를 찾아서’라는 가벼운 농담으로 흘러가던 대화였는데, 갑자기 친구녀석이 말한다. “남자의 성기가 크면 여자들이 다 좋아할까?” ...그리고 돌아간 답은, “미.친.놈.” 하지만,그 농담 같은 질문 하나가, 곧 우리들의 수다 삼매경이자 섹스를 둘러싼 많은 오해와 진심을 들춰냈다. 톡을 주고받는 사이, 문득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중 하나는 이것. '섹스는 단순한 욕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 문화, 관계, 자존감까지 얽힌 복잡한 감정의 총합이라는 것.' 대중문화는 종종 남성의 성기를 크기나 지속력으로 평가하고, 안타깝게도,그 자체를 일종의 ‘능력’처럼 포장한다. 이런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접한 남성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자기 가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몇 몇의 남성들은 말한다. “나는 크다.” “나는 잘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확신보다는 불안과 자존감의 방어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착각은 종종 조용한 연기로 되돌아오곤한다. 여성은 섹스를 통해 ‘느껴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며, 그래서,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상대의 기대, 분위기,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배려. 모든 것이 입을 막고, 감정을 숨기게 만든다. “느끼는 척을 했지.” “차라리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이런 말들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욕망을 미뤄두고, 타인의 자존심을 먼저 생각하고, 보호한다. 그 사람은 '좋았어?'라고 물었지만, 그 순간 내가 느낀 건 대답이 아니라 순간의 망설임이었고, 사소한 그 침묵 하나에 서로의 진심이 닿지 못하는 공기가 감돌곤 한다. 하지만,그렇게 감정을 연기하고 욕망을 감추는 일이 반복되면, 섹스는 점점 소통이 아닌 역할극이 되며, 관계는 유지되지만, 마음은 조용히 '고립'이라는 나만의 땅굴을 소유하게 된다. 왜 욕망을 말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까? “이건 별로야.”(조심스럽게) “이 부분은 불편해.”(조심스럽게) 그 짧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비난처럼 들릴까 봐 망설여진다. 혹시,예민하다거나 까다롭다는 인상을 줄까 봐, 우리는 조심스럽기만 하다. 솔직해지고 싶었지만, 우리의 사랑이, 우리의 관계가 저어될까 두려워, 차라리 느끼는 척, 괜찮은 척, 사랑받는 척을 택하고,그렇게 진짜 감정은 점점 흐려진다. 관계 안의 섹스는 ‘서로의 경험’이 아닌, ‘혼자 감당하는 외로움’이 되어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좋은 섹스를 꿈꾸는 마음은 여전히 존재한다. 좋은 섹스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을 읽고, 반응을 존중하고, 욕망을 나누는 호흡의 문제다. 서두르지 않는 손길, 미세한 떨림을 살피는 눈빛, 어색함을 넘기지 않고 천천히 맞춰가는 리듬. 그런 시간 속에서야 욕망은 부드럽게 풀리고, 섹스는 쾌락을 넘어선 대화가 된다. 좋은 섹스는 끝나고 등을 돌리는 일이 아니라, 함께 여운을 나누는 일. 가벼운 손끝, 마주 본 눈빛, 그리고, 사랑이 이 안에 아직 남아 있다는 조용한 확신. 섹스는 욕망이지만, 동시에 마음이고 관계. 그 안에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도, 말로 하기 어려운 외로움도 스며 있다. 그리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섹스는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둘 사이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진짜 좋은 섹스는 잠깐의 쾌락이 아니라, 기억보다 느리게 사라지고, 몸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온기와 숨결은, 시간이 흘러도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오래도록 머무는 '감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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