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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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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내게 쪽지는 인연의 시작이라기보다, 잠시 스쳐가는 마음의 흔적에 가까웠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첫 게시글은 검푸른 바다 사진 한 장과 짧은 문장 몇 줄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머문 이유라면 단순히 무거운 글은 아니라는 육감이랄까.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감지할 수 있는 미묘한 시그널. 망설임 끝에 짧은 글과 추천곡 하나를 덧붙여 쪽지를 보냈다. 내용은 희미해졌지만 추천곡만큼은 또렷하다. 최백호의 <바다 끝> 이후 일정한 간격이나 약속된 리듬 없이 쪽지가 오갔다. 듣는 음악, 사진 속 여행지, 다녀온 전시, 읽고 있는 책 이야기 등. 쪽지의 내용은 단정하고 조심스러웠지만 온기가 있었고, 쉽게 소모되지 않을 진심이 전해졌다. 욕망 대신 취향으로, 욕구의 노출 대신 결로 이어진 대화. 대중적이라 하기엔 애매하고, 마니아라 부르기엔 선명하지 않은 나의 문화적 취향이 누군가에게 정확히 읽혔을 때의 기쁨, 오랜만이었다. 돌아보면 가장 희한한 점은 꽤 오랜 시간 쪽지를 주고받았음에도 29금은 커녕 19금조차 말하지 않았다는 것. 레.홀의 슬로건이 ‘섹스의 패러다임’이라면, 우리는 그 흐름을 비껴가고 있었다. 가장 은밀해질 수 있었던 소통 방식임에도 아쉬움이 없었던, 그저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가’만으로 좋았다. 그 박자에 맞춰 소소한 위안과 응원을 건네는 일. 그것으로 관계는 충분했고, 더 알지 않아도 괜찮았다. 지난여름, 마지막 쪽지를 남긴 채 그는 사라졌다. 만약 여전히 쪽지를 주고받고 있었다면... 김동률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했는지, 공연의 잔향은 어땠는지, 호기롭게 발권했다가 취소한 파리행 티켓의 속 사정, 가을 동안 이어진 손열음의 연주회와 최근 다녀온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았을까. 여전히 이곳에 로그인할 때마다 새 창으로 뜨는 쪽지 알림은 반갑다. 간혹 당혹스러운 메시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설명하려는 문장과 서사가 담긴 쪽지들이었다. 보낸 이의 의도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화답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은 남은 채로. '침묵'이 가장 분명한 의사 표현이라 믿으며 보내지 않은 답장들에 대해서는, 이 글을 빌려 조심스레 양해를 구하고 싶다. 레홀을 드나든 이유가 성적 호기심이나 욕망의 해소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국 내가 원했던 소통은 다른 방향에 있었던 것 같다. 현실의 '나'는 커튼 뒤에 남겨둔 채 ‘포옹’이라는 이름만으로 이어가는 대화. 가까워지지 않음으로써 유지되는 온기. 생각해 보면 꽤 아이러니한 욕망이 아닐까... 그 대화들은 끝내 인연이 되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관심과 호감에 고마움은 남았다. 깊게 얽히지 않았기에 가볍게 닿을 수 있었고, 붙잡지 않았기에 무리 없이 흘러갔던, 인연이라 부르기엔 짧았고 지나간 일이라 하기엔 진심이었던 표현들. 그렇게 스친 마음의 흔적을 감사로 여기며 그들과 나의 무탈함을 바란다. 인연이 되지 못한 쪽지들처럼 짧았지만, 충분히 따뜻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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