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만난 그녀 다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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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녀를 보았던 날의 그 가슴 떨림이었다. 나도 모르게 지그시 눈이 감겼고 입꼬리가 올라가기까지 했다. 돼-지- - 하!..... 붉으락푸르락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추억에 젖어드는 내가 기가 막혀 웃음이 났다. 그녀 - 재밌니? 돼-지- - 아니, 그냥 좀 웃겨서. 그녀 - 뭐가 웃긴데? 돼-지- - 그냥. 그녀 - 나도 웃겨. 내가 지금 여기에 와서 너한테 별 것도 아닌 일로 따지고 드는게. 돼-지- - 아니, 그런거 아니고. 그녀 - 그럼 뭐가? 돼-지- - 하... 나는 대답은 하지 않고 한숨 섞인 웃음소리를 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시선을 카페 여기저기로 돌리며 자기의 양쪽 뺨을 손등으로 매만졌다. 그녀도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화와 슬픔이 가시기 시작했다. 장난끼 섞인 눈빛으로 나를 흘겼다. 돼-지- - 너도 생각났니? 그녀 - 그래! 그녀도 살짝 웃었다. 그녀 - 진짜 화를 못내겠다 너한테는. 돼-지- - 나도 그렇네. 그녀 - 진짜 얄밉다 너... 돼-지- - 그래? 그녀 - 그래! 서로 멋쩍게 웃었다. 돼-지- - 아직도 담배 피니? 그녀 - 응. 돼-지- - 나가자. 그녀와 나는 카페를 나왔다. 돼-지- - 차 가까이에 있어? 그녀 - 응 저기. 그녀는 자동차 리모콘을 꺼내어 눌렀다. 길건너 견인지역에 세워져있는 아우디의 라이트가 번쩍 거렸다. 돼-지- - 차 좋네. 그녀 - 네 덕이라니까. 콧방귀가 나왔다. 돼-지- - 좀 타자. 그녀 - 타. 그녀의 차 조수석에 앉았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아우디는 참 좋았다. 돼-지- - 재떨이 있니? 그녀 - 그냥 펴. 그녀가 내 쪽 창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녀 - 담배 바뀌었네? 돼-지- - 그건 이제 안나와. 그녀 - 그렇구나. 그녀도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10년전과 같은 담배였다. 그리고 10년전 내 지퍼 라이터였다. 그녀 - 알았어. 하나만 묻자. 돼-지- - 말해. 그녀 - 너랑 헤어지면 아프고 슬플 내 마음 보상해줄 수 있어? 돼-지- - 아니. 그녀 - 그래. 그녀의 질문은 ' 나중에라도 너의 생각이 바뀔 수는 없겠어? 그럼 다시 올 수 있어?' 라는 의미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그녀 - 나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싫어. 나가고 싶다. 그런데 나가려고 일어서서 옷을 입는 시간. 엄청 어색하겠지? 이별 통보 받고 옷입고 나갈 생각하니까 여자로서 너무 자존심 상한다. 돼-지- - 내가 나갈게. 그녀 - 그래. 네가 나가. 그녀는 하얀 이불속으로 몸을 숨겼다. 나는 조용조용 옷을 챙겨입고 모텔 방을 정리했다. 그녀가 이불밖으로 나왔을 때 나와 함께 있었던 흔적들을 보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녀 - 뭐해? 돼-지- - 치우고 있어. 그녀 - 옷 다 입었으면 빨리가. 돼-지- - 치우고 갈게. 그녀 - 그냥 빨리가! 울먹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음같아서는 이불로 싸매진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그녀가 행복할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마저 정리를 했다. 불을 끄고 신발을 신을 때 이불이 부스럭댔다. ' 나를 보고 있는거구나...' 돌아볼가 싶었지만 그대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녀 - 인사는 하고가. 울고 있었다. 돼-지- - 갈게. ' 잘 지내.' 라는 말은 필요없었다. 당분간은 잘 지내지 못할테니까. 나는 방을 나와 모텔 복도에 섰다. 소리내지 않고 한숨을 쉬었다. ‘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후회가 됐다. 돼-지- - 어머니 오세요! 지금부터 국내산 양념돼지갈비가 세근반에 만원씩! 마감떨이입니다, 마감떨이! 선착순 열분만 오세요. 국내산 암퇘지로 만든 맛좋은 양념돼지갈비 떨이입니다. 밤 열한시가 넘었다. 마트 전단상품으로 깔아놓은 돼지갈비가 생각만큼 많이 팔리지 않았다. 팀장 – 아 씨발. 재고 좆나 남았는데. 좆됐다. 돼-지- - 내일 더 많이 팔면 되죠. 팀장 – 지랄한다이씨. 그럼 새끼야 네가 다 팔어봐. 돼-지- - 헤헤. 제가 다 팔게요. 걱정마세요. 저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요. 팀장 – 이새끼가. 야, 이거 다 팔고가. 조금 있으면 마감인데 어딜가? 돼-지- - 잠깐만요. 팀장에게 까불거리며 경례를 붙이고 직원 휴게실로 도망쳤다. 담배를 피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돼-지- - 어디야? 그녀 – 집에 가는 길이야. 돼-지- - 버스는 아니지? 음악 소리가 들리네? 그녀 – 응. 차 안이야. 돼-지- - 누구? 그녀 – 과 선배. 돼-지- - 그래. 도착하면 전화해. 그녀 – 알았어. 매장으로 돌아와 뒷정리를 하고 12시가 되어서야 ‘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하는 노래와 함께 매장을 빠져 나왔다. 한시간이 넘도록 그녀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다. 내가 받지 못한게 아닌가 싶어 휴대폰을 열어보았지만 부재중 전화도 메시지도 없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돼-지- - 집에 들어갔어? 그녀 – 응 지금 막 들어왔어. 돼-지- - 차타고 가는데 학교에서 집까지 한시간이나 걸려? 그녀 – 응~ 그게 아니라 20분?? 정도밖에 안걸렸는데 오빠랑 차에서 얘기하느라. 돼-지- - 오빠? 그 과 선배? 그녀 – 응. 돼-지- -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해? 그녀 – 그냥 이것저것. 돼-지- - 이것저것 뭐? 그녀 – 그~냥~ 이것저~것이요~~ 돼-지- - 친구들이랑 술 마신다고 하지 않았어? 그녀 – 아~ 애들이랑 먹었는데 그 앞에서 만났어. 과 오빠라는 자식이 그녀에게 작업을 건 것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심술이 났다. 돼-지- - 차타고 집에 가니까 편하지? 그녀 – 응 편하더라. 버스보다 1/3밖에 안걸리는 것 같애. 돼-지- - 그럼 맨날 태워다 달라 그래 그녀 – 됐네요~ 돼-지- - 왜? 그 사람이 너 좋아하는 거 같은데. 일주일에 두세번은 만나는 것 같던데. 그녀 – 무슨 두세번이야? 학교에서 맨날 봐. 히히히. 돼-지- - 좋아? 맨날 보니까? 그녀 – 아 좋긴 뭐가 좋아. 그냥 농담하다가 웃은거지. 요즘 들어 그 과 선배라는 자식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그녀가 미웠다. 심술이 더 커졌다. 돼-지- - 아닌거 같은데? 그녀 – 너 지금 내가 그 오빠 차 탔다고 삐진거야? 돼-지- - 내가 왜 삐져? 그녀 – 근데 왜 자꾸 삐딱선 타? 돼-지- - 누가? 그녀 – 누구긴 누구야 너지! 돼-지- - 내가 언제? 그녀 – 엄마? 돼-지- - 내가 왜 엄마야. 그녀 – 아빠? 여보? 키키킥 평소 같았으면 웃어줬을 그녀의 농담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돼-지- - 나 지금 집에 들어갈거야. 그녀 – 자기야. 돼-지- - 왜. 그녀 – 오늘 우리 집에 엄마 아빠 없어. 돼-지- - 문단속 잘해. 평소 같았으면 ‘오~예~’ 하고 달려갔겠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 – 아아아~~ 아아아~ 와요~ 씻고 기다릴게요. 히힛. 그녀가 애교를 부렸다. 돼-지- - 오늘 자전거 없어. 그녀 – 어? 자전거 어쨌어? 자전거는 전날 밤 퇴근길에 보도블럭 공사장을 지나다 미쳐 발견하지 못한 구덩이에 쳐박혀 나와 함께 앞으로 꼬꾸라지고는 세바퀴를 구른 뒤 고철이 되었다. 그녀가 걱정을 할 것 같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돼-지- - 버렸어. 그녀 – 왜? 돼-지- - 사고났어. 그녀 – 어? 왜? 어디서? 돼-지- - 아 있어 그런게. 한번도 이런식의 대답은 해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짜증을 부렸다. 그녀 – 근데 왜 말 안했어? 내 짜증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돼-지- - 뭐하러 그런걸 얘기해. 아무튼 나 집으로 가. 그녀 – 아아아아아이~ 그럼 택시 타고 와. 돼-지- - 택시비 없어. 그녀 – 음… 그럼 택시비 빌려서 와. 응? 짜증이 밀려왔다. 돼-지- - 야! 처음으로 그녀에게 ‘야’소리를 했다. ‘아차’ 싶었지만 화가 난 내 감정이 우선이었다. 그녀 – 네? 그녀는 역시나 대수롭지않게 받아들인 듯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돼-지- - 됐어. 집에 갈거야. 그녀 – 그럼 내가 택시비 줄게 그냥 타고 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돼-지- - 네가 날 키우냐? 내가 거지야?!! 불같이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돼-지- - 아오!!!!!!!!! 혼자 씩씩거리다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돼-지- - 씨발… 아오 씨발… 개새끼… 좆만한 새끼… 화는 내가 내놓고 그 탓을 과 선배라는 놈의 탓으로 돌렸다. 한참동안 혼잣말로 욕을 했다. 그리고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알 수 없는 열등감이 내 머리를 채웠다. 버스를 타고 다닐 돈도 없는 놈보다야 차 있는 놈이 낫겠지. 여자친구에게 택시비 준다는 소리를 듣는 나라는 새끼. 참 한심하다. 그 새끼 돈도 많고 얼굴도 잘생겼겠지? 하기사 나 같은 놈 만나다 잘생기고 돈 많은 놈이 좋다고 추근덕거리면 마다할 이유야 없지. 라는 생각들 때문에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내가 이대로 가버리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 딸깍.’ 그녀가 있는 방안에서 지퍼 라이터 여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 아… 라이터를 안갖고 왔네…’ 그리고 부싯돌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라이터 소리가 밖으로 들릴 정도면 내 발걸음 소리도 분명 방안에 들릴거라 생각했다.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복도 끝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돼-지- - 그 라이터 오랜만이다. 그녀는 라이터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뒤집고 만지며 그녀 – 돌려줄가? 돼-지- - 아니. 괜찮아. 그녀 – 너는? 돼-지- - 나는 뭐? 그녀 – 너는 나한테 뭐 돌려주고 싶은거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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