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 하루 마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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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전, 단 둘이서 소주를 7병이었는지 8병이었는지를 나눠 마셨다. 2차에 걸친 술자리. 투자사에서 지정한 사람이라서 기싸움을 안할 수 없었다. 숙취를 헤어나지 못하는 아침. 오전 6시 50분 부터, 9시까지 넋을 놓고,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하루를 시작해야지. 움직여야 해. 결국 다짐과는 달리 11시나 되어서 사무실에 나갔다. 좀비 같은 모양새로... ... ... ... 중학교 3학년... 녀석은 수업을 한 시간 제껴(?)버리고, 병원에 갈 수 있다는 땡땡이에 즐거워 했다. 이미 수업이 끝난 것이 아니었나보다. 그것도 모르는 아빠라니... 아빠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크리스마스 이후, 4개월만에 만난 녀석은 키가 훌쩍 커버렸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누나보다 더 작았던 녀석은 이제는 10cm 는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떤다. 많이 자랐다. "딱 아빠만큼만 클래요" "아빠보다 좀 더 크면 좋을 것 같은데요?" "너무 커요! 징그럽다구요" "이미 징그러우시거든요?" 걸쭉하기까지한 목소리는 이질감 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말투나 행동은 정말 이 놈이 내 새끼가 맞긴 맞구나 싶었다. ... ... ... 녀석과 함께 병원을 갔던 것은 녀석이 받았던 눈 수술이 매 6개월마다 검사가 필요한 수술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 전에 예약을 했음에도, 5분이나 일찍가서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30분 가까이 기다렸다가 받는 3분간의 검사의 결과는 '안도감'만이 아니라, 의사라는 직업이 참 좋긴 하구나 하는 생각들... 이럴 줄 알았다면, 정말 의대나 가볼껄 하는 생각.. 그노무 피만 무서워 하지 않았다면 하는 우수운 생각.. 의사를 기다리던 동안... 내 팔에 어깨가 잡혀 꼼작 없이 내게 기울어진 녀석이 핸드폰을 만지작 만지작 거린다. 곁눈으로 지켜보다가 잡아낸 사진 하나... 학교 축제를 위해서 그려낸 그림이라 했고, 여전히 그림을 그리곤 한단다. 몸만 불쑥 자라버렸을 뿐, 여전하다. 게임 좋아하고, 그림 좋아하고... 여자 친구는 없냐는 말에 얼굴을 발그레 붉힌다. 녀석.. 있구나.. 그래.. 그노무 피가 어디 가겠니... 어쨌거나, 검사 결과는 양호하단다. 6개월 뒤에 다시 보자는 의사. 3분의 검사비 치곤 적지 않은 6만원 가까운 돈을 내고 길을 나선다. ... ... ... 조수석에 올라탄 녀석은 잠시 후면 마트에서 집어들 과자들 생각에 연신 싱글벙글하다. "아빠, 저 방학때부터, 미술학원 다니고 싶어요" "시간은 있구요? 놀기 바쁘실텐데요?" "그래도 학원은 다닐 수 있어요" "영어나 수학 학원 중에 하나 빼달라는 이야기로 들려요?" "헤헷.. 걸렸네요" "엄마랑 이야기 해보세요. 학원비는 보내줄테니까" 동네 마트 앞에 차를 대놓자마자, 웃으며 달려가는 녀석은 여전히 내겐 꼬맹이 같은데, 감히 녀석이 학원을 두고 아빠와 협상을 하려하다니... 과자를 하나씩 둘씩 집어들며 싱글 대는 녀석에게 묻는다. "누나꺼는 안사요?" "아.. 누나는 하나면 되요" "또 싸우려고요?" "아.. 이거 나눠 먹으면 되고, 그럼 하나 더 살께요." 4개월의 무게 뒤에 남은 과자는 고작 6천원 어치. 욕심도 더럽게 없다. 아니면, 미련한 것일까? ... ... ... 오랫만에 저녁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곧 학원엘 가야 한단다. 그리곤, 누나와 함께 새벽 1시까지 독서실에 있어야 한단다. 자기가 보디가드라나... 우수운 놈. 마음이 씁쓸하다. 이젠 무엇을 하려해도, 간단한 저녁을 한 번 하려해도, 미리 일정을 조정해야 할만큼 빡빡하게 살아간다. 어찌보면, 녀석은 이미 내 손을 떠나버린 것이구나 싶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다. 중학생이면 오후 4시까지 수업이 이어진다는 것을 잊었던 것에서 시작한 생각들.. 같이 저녁도 못했다는 아쉬움이 강제로 편의점 상품권이라도 몇 만원 짜리를 쥐어줄껄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 ... ... 무인 택배 보관함에 택배가 왔다는 문자가 왔다. 내가 있는 곳은 홀로 거주하는 이가 많아서인지, 택배보관함으로 택배를 받고, 배송기사가 보관함에 택배를 넣으면 자동으로 문자가 온다. 괜히 IT강국일까.. 일요일에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에 대비해서 주문해뒀던 사파리 셔츠라는 예상은 맞았다. 업무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택배를 핑계로 사무실을 나섰다. 잠시 들려서 옷만 확인하고 다시 돌아가야지 하면서.. ... ... ... 그녀와 통화를 하며, 저녁 메뉴를 정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언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12시가 다 되버렸다. 그녀가 남겨둔 카톡 메시지들을 읽어내려가다보니 내가 잠들고도 꽤 오랫동안 전화기를 쥐고 있었나보다. 미안함이 사무친다. 잠이 오질 않는다. 아들 녀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와 마무리 못한 통화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아마도 둘 다이겠지. 빨리 하루를 닫고, 새로운 하루를 열어야 할텐데.. de Dumb squa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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