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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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늦어버린 하루를 맞으며 깨어난다.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하는 요즘, 가끔은 쉼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좀 다른 일요일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전화를 최대한 자제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뭐 그래봐야 다섯 시간을 채워버렸지만... 나우시카, 라퓨타, 폼포코, 그리고 원령공주. 지브리 작품만 네 편을 보내줬다. 어찌보면 반강제로 강요하 듯 던져준 애니메이션들. 라퓨타를 보던 그녀가 '재미있다'라는 상투적인 반응을 보인다. 착해.. 착하다. ... ... ... 오늘 하루만큼은 따로 생활해보기로 한다. 그녀는 빨래를 돌리고, 라퓨타를 끝까지 보고, 그리고는 목욕을 가려한다고 했다. 그리곤, 나에게도 요즘 지쳐있는 몸을 사우나에서 풀고 오기를 종용한다. 싫다 했다. 귀찮았다는 이유만으로. 내 것은 강요를 하고, 자그마한 배려는 귀찮음이 앞서서 싫다 했다. 조금은 실망한 듯, 뽀루퉁해진 그녀. 여려.. 여리다. ... ... ... 10시에 다시 전화하기로 하고, 밀린 숙제를 한 번에 처리하기라도 하는 듯, 태양의 후예를 줄줄이 본다. 7시쯤이었나.. 잠시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이미 10시 54분. 받지 않은 전화가 3통. 미안함이 밀려온다. 미안했다. ... ... ... 요즘 그녀가 생각이 많은 것 같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유독 힘이 없다. 주거니 받거니라도 하는양 내게 많았던 생각이 마치 그녀에게 옮아라도 간 것처럼, 그녀는 여러 가지 고민을 내려 놓는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음에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표정을 떠올린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 외에는 없다. 무기력에 빠진다. 내가 무능력해 보인다. 미안함이 커진다. 많이 미안했다. ... ... ... 뭔가를 자꾸만 생각하려는 그녀에게 그대로 잠들라 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자꾸만 뭔가에 자꾸 함몰된다. 숙면에 도움이 될만한 음악 몇 곡을 골라두고, 며칠째 냉장고에 묵혀 놓고 있는 닭가슴살을 마리네이트 한다. 아직도 잠들지 않은 그녀. 오늘은 그녀가 잠든 뒤에도 한참을 잠을 이루지 못할 것만 같다.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에, 타버리고 남아 있던 다이소 캔들 덩어리들을 중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여분을 끓이고 나니 어정쩡한 캔들이 다시 만들어진다. 다행히 그닥 나쁜 상태는 아니다. 그녀도 그닥 나쁘지 않은 상태로 잠들었어야 할텐데... ... ... ... 글을 쓰다 보니 오른손 검지가 아려온다. 키보드를 바라보니 피가 묻어 있다. 아까 캔들을 재생하다 유리 조각에 베인 상처.. 타이핑을 편하게 하려고 붙여뒀던 아쿠아 밴드를 떼버린게 실수였다. 미련해.. 미련하다. 마치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조차 없는 필명처럼.. 멍청하다. 더 멍청해지기 전에 잠들어야 할 것 같다. 7시가 되기 전에 걸려올 그녀의 전화를 받아야 하니까. de Dumb squa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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