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면도날에 베인 상처를 모른척 하는 남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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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허락된 조용한 하루는 감사할만 했나요.
이제 막 운동을 끝냈어요. 살짝 열이 오르는 것 같길래 좀 더 강하게 몸을 움직였네요. 아직 아프긴 일러. 다독이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마음이 허물어지고 비었을 때 그냥 몸을 마구 쓰다보면 어느 시점부터는 마음이 움직이며 변하려고 하잖아요. 말하자면 행위를 뒤따라 오는 정신력 같은 것. 이를 악물면 입술도 꼭 다물어지고 눈꼬리도 솟구치며 전지를 막 갈아 넣은 후레쉬처럼 눈빛도 강렬해집니다. 가슴은 증기기관차의 굴뚝처럼 열기를 마구 토해내구요. 몸이 뜨거워지면 비로서 그 열이 마음도 데웁니다. 올바른 마음만이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정직한 몸이 마음을, 그 마음가짐을 곧추세울 때가 많음입니다. 실은. 면도를 하다가 그 작은 칼날에 베었습니다. 내가 지닌 작은 칼로도 나를 해하는데 아니라고 몰랐다고 내게 당신을 해할만한 칼날은 없다고 소리치며 얼마나 많은 상처를 또 당신에게 냈던 것일까요. 거울 속에 벌거벗은 나는 그렇게 나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나는 그에게 들어가 내가 됩니다. 이렇게 데워진 내 마음이 무슨 말을 속삭이는지 들리시나요. 종일 조용한 당신을 보면서 당신 마음에 들어가 그 마음을 어루만졌더랬어요. 내게서 입은 상처와 내게서 알게된 아픔과 나로 인해 견뎌야 했던 적막한! 우주같은 시간들을. 어루만지고 싶었습니다. 당신 뒷모습을 꼬옥 안고만 싶었습니다. 여즉 남은 밤이 길어요. 당신은 별빛처럼 아른한 장미의 향기에 물들어 잠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조용한 사랑을 말합니다. 나의 알 수 없는 미열은 내 마음의 미열은 당신의 입맞춤으로만 제자리로 돌릴 수 있겠기에. 침묵도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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