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일요일 아침. 아메리카노를 위한 F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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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ke.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기 위해서는 몇 가지 페이크가 필요하다. 세 아이들에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스크램블 토스트나 달걀 후라이 몇 개를 하고 따뜻한 차나 우유, 과일쥬스를 내어 놓아야한다. 밤 새 헝클어진 침대와 거실을 정리하고 와이프를 교회까지 데려다주고서는 그제서야 눈꼽만 겨우 띤채 세수도 안 한 부시시한 얼굴과 목이 축 늘어진 반팔에 무릎이 반질반질한 츄리닝 차림으로 단골 커피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페이크냐구? 그렇다. 내겐 페이크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위한 손놀림과 발놀림이다. 농구 골대 근처까지 가기위한 드리블이고 수비 한두명을 제치기 위한 간결한 페이크다.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집을 치우고 마눌님을 에스코트하는 것은 진심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내겐 그저 일요일 아침 평안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이 중년의 지혜로운 기술이라면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기엔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내게도 좋은 윈윈할 수 있는 즐거운 페이크다. 이 정도는 농구코트에 키가 작은 가드라면 꼭 필요한 페이크가 아닐까? 다시 fake. 내게 레드 어셈블리를 다녀온 소감을 한 단어로 써야 한다면 위 단어로 줄여 쓸 수 있겠다. 워 워. 미리 짐작해서 나쁜 뜻으로만 받아들이진 마시라. 나는 어셈블리를 위해 서울행 일박이일을 기획했고 약간의 페이크로 일의 연장선인 세미나라고 집을 설득했다. 여길 아이셋 아빠인 내가 참석하기 위해 일박 한다고 곧이 곧대로 설명하기엔 일이 너무 커진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하기엔 아직 나는 젊은 남자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한다;;) 가벼운 페이크를 사용한다. 다만 이런 기술은 일년에 세번만 사용하자 다짐하며 ㅎㅎ. 누군가의 동의나 이해는 필요치 않다. 이건 나의 일이다.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고는 레홀에 접속한다. 몇 가지 이야기들과 몇 가지 쪽지들. 쪽지에 답을 하고 주고 받으면서 답답함을 느낀다. 대화로 하면 쉽게 풀 수도 있겠는데. 만나자하면 오해가 될 수도 있겠기에. 결국 쪽지의 한계를 느끼며 하아 한 숨만 깊어진다. 레홀에 접속하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덧글과 쪽지로 대화를 하고. 일을 하면서 결코 쉽지는 않다. 이것이 내 즐거움이라해도 먹고 사는 일에 소홀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 또한 페이크가 아니던가. 서로 오해가 생기고 마음에 안들어도 별다른 수가 없다. 섹스에 대해 대놓고 말하자는 이 공간에서는. 약간의 일탈이 되려 오해받기가 쉽상이다. 그러나 서로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 그렇게들 평범하고 예의 바르며 착할 수가 없다. 오해쯤은 한 여름의 얼음처럼 금방 녹는다. 레홀 세미나를 진행하는 지하 벙커에 도착해서 처음 느낀 감정이 그랬다. 다들 미소띤 얼굴로 서로에게 다가선다. 이것이 페이크라한들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크림작가의 허를 찌르는 강의와 이태리장인의 섹스발랄한 강의가 이어지고 섹스 테라피스트 최세혁 소장의 명상처럼 심도 깊은 강의가 이어졌다. 골반 갑옷과 울혈이란 단어에 관심이 쏠렸으며 섹스를 나누는 상대를 바라보는 마음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차분한 시간이었다. 소통만 있었을 뿐 여기엔 페이크가 없었다. 아. 벌써 대전 역이 가깝다. 지금 시간은 낮 12시58분. 서울에서 출발한지 한시간만에 도착이다. 이 글도 잠시 멍하고 통화한 시간을 제해도 넉히 40분은 이어간 글이다. 시간에게 관용을 구하기엔 늦은 나이라는 생각을 가방처럼 매고 기차에서 내린다. 꼬마 김밥 두개를 포장했다. 아이들과 라면을 끓여 먹을까 하는 마음인데. 너무 늦게왔다고 타박이겠지. 꼬박 하루를 대전역 동광장에 주차되 있던 차안의 공기는 내 마음만큼이나 덥다. 하룻밤새 격은 일들을 내 마음은 얼마나 잘 소화시킬 수 있을까. 에어컨을 맥스로 올리고 시트에 기대어 글을 이어간다. 잔뜩 흐린 하늘이 무겁지만 헛헛한 마음보다야 더 하겠는가. 짧은 혼자만의 여행이 주는 선물이랄까. 이런 헛헛함도 정말 오랫만에 느끼기에 더없이 좋다. 감사하다. 이 또한 가벼운 페이크에서 온 결과물임을 부정할 수도 없으니. 세상은 참 즐겁다. 다시 어제의 현장으로 돌아가자. 평온하나 약간의 긴장과 호기심이 담긴 눈빛들이 반짝 거린다. 대부분이 남자지만 몇 안되는 여자들의 적극적인 강의 참여는 무거운 분위기를 해체한다. 이태리장인님과도 드디어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집사치노님, 핑크요힘베님. 익숙한 감동대장님, 따뜻한햇살님, 늙은탱님, 쭈쭈걸님, 첫째 토토님, 아토님, 쓰리맘님 등등등. 이 만남에 페이크가 있었냐구? 물론 당연히. 그리고 그런 페이크가 오히려 서로를 안심시켰다. 그래 다들 잘나면 얼마나 잘났겠는가. 누군가는1422명과 자고 누군가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주인이고 또 종이든. 그 얼굴들이야 무에 다른가. 사람사는 세상이 그대로 거기 있는 것이지. 달.라.질.것.은.없.다. 서울에 오면 수 많은 사람과 그들의 다름과 다름에 상관없는 표정에 놀라고 세계 각국의 언어가 쓰이고 들림에 놀라고 결국 시크해진다고 할까. 그러니 가벼운 페이크쯤 하나, 둘씩들은 가지고 있어야지.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내게 윈윈 할 수 있는. 손놀림과 발놀림이라면. 최세혁 소장님의 팁을 끝으로 장황한 후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점 점 느리게 할 때 쾌감은 배가가 되어 온다" 우리의 일상도 느리게 보자. 일상도 꽉 부여잡지 말고 살짝만 쥐자, 말미잘처럼. 일상의 쾌감도 배가가 되어 오리라. 일상의 기쁨과 삶의 만족도 그러함을 실행함으로 꼭 느껴보자. 고백하건데 어제 숙소에서 혼자 잠들기전 먹은 컵라면과 맥주는 근래 먹었던 비싸고 유명한 집들의 요리보다 훨신 더 맛있었다. 만배는 맛있고 천만배는 더 외로웠지만. 그게 즐거움이었다. 외롭다는 건 외롭지 않도록 발버둥치게 만들지만. 그 발버둥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한다. 홀로 외롭기에 더 맛있다는 컵라면과 맥주. 그렇다. 이게 나의 페이크다. 이게 당신에게 해가 되었는가? 나에겐 더 없을 즐거움이었다. 자 그럼 이제는 묻고 싶어진다. 당신의 fake는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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