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여름, 어디론가 떠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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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벨트를 풀고. 시트도 뒤로 넉넉히 제낍니다. 여름처럼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입에 한 모금 물고 라디오 볼륨은 들릴 듯 말 듯 하게 하지요. 먼 하늘, 내 마음 같이 꾸깃한 구름을 보다가 눈을 감아요.
이제서야 일요일 아침 같군요. 오늘은 시동을 끄고 창문을 엽니다. 라디오를 숨죽이게 하는 매미소리와 아스팔트 햇빛에 달궈진 공기가 먼저 차 안으로 들어와 뒷좌석에 앉아요. 내어 줄 게 따뜻한 커피뿐인 걸 알고는 실망하는 표정입니다. 넌 어째 아이스 커피는 안마시는 거야? 가끔은 우리 생각도 해야지. 어이. 겨우 이천원 짜리로 생색내는 것 같지만 말이야, 난 뜨거운 게 좋아. 일단 풍미가 다르다구. 커피가 날개짓 하는 거 본적 있어? 신선한 원두와 적당한 배합의 뜨거운 아메리카노라면 새장에서 뛰쳐나온 새 같아. 그 뜨거운 갈망의 날개짓에 매료되지. 그 때 뿜어져 나오는 향과 풍미란 말이지. 음. 내가 몰래 엿보는 걸 알지만 모른척 샤워하는 그녀 같다고 해야할까. 암튼 그래. 그러니 그냥 마셔두라고. 미안하지만 널 위해 준비한 커피는 아니야. 오늘만큼은 나를 위한 거라구. 문자로 폭염주의 경보가 오네요. 이런 문자를 받으면 가까이에서 이 문자를 받는 사람끼리 함께 떠나는 상상을 합니다. 저기요~ 폭염경보 문자 받으셨어요? 그럼 타세요, 가까운 바다로 같이 가자구요. 모든 경비는 나라에서 지원한다니까 우린 그냥 떠나면 되요. 아 그 쪽 이름은요? ... ㅎㅎㅎ 이런 날이 온다면 모두들 폭염경보에도 아랑곳 하지 않겠지요? 그나저나 길거리가 썰렁합니다. 이래선 경보가 발령되도 혼자 떠나게 생겼어요. 누군가 하늘거리는 원피스 차림으로 이 옆을 지나간다면 앞 뒤 가릴 것 없이 말을 걸어 보겠어요. 저기요, 혹시 폭염경보 문자 떳나요? 그럼 저랑 가까운 서해로... 잠시 이렇게 혼자 놀아요. 여름의 아침은 너무나 짧군요. 여즉 아침이라기엔 오후에 가까운 뜨거운 바람이 들이치고 있슴입니다. 샌드위치 하나 사들고 들어갈까 해요. 내가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아침은 이걸로 마무리 짓겠네요. 차안에 앉아 글을 쓰는 매 순간 순간마다 당신이 옆 자리에서 날 지켜 보는 듯 하다는 걸 아시나요? 고개를 기웃거리며 안보는척 하다가도 어 자기야 그 단어 틀렸어, 띄어쓰기도 좀 잘해라, 애도 아니고. 다 썻어? 아직이야? 그럼 내가 노래 불러줄까? 치마를 요기까지만 살짝 올리고. 어때, 이쁘지? 잇몸을 들어내는 당신 미소. 그런 당신을 꼭 안고 들어갑니다. 바람과 매미소리를 떠나보내요. 차창을 닫으며 눈인사를 건냅니다. 다음 주에 보자구. 그땐 따로 아이스커피를 준비할께. 응. 약속. 볼륨을 키우고 부드럽게 악셀을 밟아요.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에 맞춰 드라이브를 하고 들어가렵니다. 스타카토에는 브레이크를 ㅎㅎ 혼자 놀기 잘하지요? 네. 당신이 있기에. 사랑하는 당신이 날 바라봐 주기에 가능한 놀이예요.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당신. 듣고 싶고 맡고 싶은 당신. 커피 잔 속에 든 당신을. 너무 벅차 어쩌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 여름 햇빛에 녹는 아이스크림을 보며 울먹이는 아이처럼. 바보가 되어 버리는 아침이 그저 좋습니다. 그래요. 바보처럼 사랑하기에. Ps. 누구나 떠날 때는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그만큼 순수해지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누구보다 당신만큼은 순수한 여름을 있는 그대로 즐기시길 바래봅니다. 전 순수한 여름을 즐기기에 나이가 들어버린 느낌이예요. 그러니 더 젊은 이들에게는 더 더 더! 뜨거운! 여름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아디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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