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에 대한 열망과 희열 사이, <익명성에 대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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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익명성 기능의 효과를 심리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고 그와 연결되는 <효과의 지향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이미 존재하는 여러 글을 발췌하였고 그 내용을 차용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내용과 연관되어 연상될 수 있는 레홀 회원분들께는 미리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 1. 익명의 효과는 다양하다. 아무도 내가 그 글을 썼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와 익명이 아닐 때 하지 않을 표현을 표출할 때 느끼는 희열 사이에서의 견제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익명은 여러 단계로 존재한다. 이는 해당 커뮤니티의 운영방식과 상관이 있다. 일체의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 익명 커뮤니티를 시작으로, 회원가입 절차에서 일부 개인 정보인 이메일이나 전화번호 등을 요구하는 경우, 익명 게시글이지만 2차 기능(레홀의 뱃지와 같은)에 따라 게시자를 식별할 수 있는 경우 등에 의해 익명을 인지하거나 식별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이러한 차이 표현의 태도로 연결된다. 2. 익명성에는 ‘자기 고백’ 효과가 존재한다. 익명은 나의 조건과 상관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나의 외부적 생활과 관련하여 강제되는 생각이 아닌 진정한 내심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제일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자기 고백은 고해성사에서도 보듯이, 그 자체로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효과가 있다. 익명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후련해진다거나 본인의 상황이 정리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으며 무엇보다 익명 댓글을 통해 일회적이지만 어느 때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객관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소통 상대와의 거리감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경우에 해당한다. 흡사 여행 중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낯선 손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와도 같다. 그 이유는 이 관계의 유지를 떠나서 현재는 이 관계가 내 삶에서 ‘포착’, ‘연결’, ‘추적’되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3. 다만 익명성은 ‘표출 단계’를 단순화 시킨다. 클라렌스 데이란 작가는 우리가 말(표현)을 할 때 황금과 같이 소중한 세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참말인지? 그것이 상대방에게 필요한 말인지? 그것이 적절한 방식인지? 이 세가지를 기준으로 판단한 후 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익명성은 이러한 표출 단계 자체를 무마시키고 표현에 대한 책임이나 반성을 회피시키는 여지를 준다. 레홀 커뮤니티 상에서는 이러한 의도는 없겠지만, 익명 뒤에 숨은 이용자들은 특정 사안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을 왜곡하는 데 충분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데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들의 선동적인 화법이 토론의 온전함을 망가트리고 실질적 담론을 방해해 다른 이들도 공격성과 조롱의 문화로 빠뜨려버린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주된 이유는 '인정 욕구'를 시작으로 '정체성 욕구'까지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용자의 동기가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며, 이 과정에서 본인의 실제 모습과 동일화시키거나 차별화시키는 메커니즘이 연속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익명 기능의 주요 효과 중 하나는 일시적 ‘인정 욕구’이다. 그럼에도 익명 이용자들은 본인이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는 이를 자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정체성 욕구’가 충족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므로 '익명 활동'과 사용자 식별이 가능한 '닉네임 활동' 사이에서 '인정 욕구' 및 ‘정체성 욕구’를 충족하려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익명과 닉네임 활동 사이에서 내용을 표출하거나 수용하는 정도의 차이가 극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4. 익명 커뮤니티의 운영은 쉽지 않다. 미국의 소셜미디어 익약(Yik Yak)의 사례를 보면, 익약은 위치기반+익명성을 특화한 소셜미디어로로서 대학들을 거점으로 가파르게 확산하였고 기업가치 또한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는 불과 4년후 2017년 끝을 맞이하게 된다. 익약을 통한 집단 괴롭힘, 인신 공격, 성희롱 등이 꾸준히 발생하여 익약 금지 캠페인이 벌어지고, 사용자들은 자연스럽게 떠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익약을 자주 사용하는 이용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나빠지게 된 것이 주요 요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사용자층을 유지하고 있는 ‘블라인드’의 경우 회사 메일로 인증을 하고, 회사라라는 환경 안에서의 동업자 정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약간의 논란 속에서도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익명 커뮤니티는 서비스 초반부터 엄격한 경고를 하거나, 신고 기능을 통해 그 수가 일정 횟수를 넘어서면 글이 감춰지는 자체 블라인드 기능을 갖는 등 부작용을 관리하고 있다. 익명 게시판의 여러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이 속출하자 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부터 시작하여 이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순기능에서 발생하는 이익보다 역기능에 의한 피해가 막대하게 크다면 운영자의 개입이 중요하다. 하지만 커뮤니티의 운영 방식과 가치에 따라 규제의 한계가 존재하기에 이 또한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익명게시판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자정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5. 익명성을 포함한 다양한 표현의 방식은 표현에 대한 표출과 해독 능력을 키우게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육의 정규과목은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과정을 포함하지 않고 있고, 오롯이 개인의 능력에 책임을 지운다. 농담과 칭찬이 고도의 지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것처럼,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려면 각기 다른 처지를 고려하면서도 그 누구도 비하하지 않는 방식을 한꺼번에 제대로 구사해야 한다.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 능력을 키울 수는 있다. 레홀 자체의 목적이 교육의 장은 아니기에 이러한 기능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익명과 관련된 현상을 지속해서 이해하며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을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회원간에 느낄 수 있는 동질감이나 유대감 형성이 필요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통해 얻는 이익과 함께 감수해야 할 노력이 병행될 때 우리의 표현에 대한 열망과 희열의 견제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고, 우리의 인정 욕구와 정체성 욕구 또한 함께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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