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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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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들 제 닉은 처음 보실 것 같은데요 가입은 2013년에 했지만 이제야 첫 글을 올려봅니다.
자기소개를 먼저 올리고 글을 쓸까 했는데 레홀의 여러 이야기를 읽다가 새벽 감성에 의존해서 쓴 글이라
이 글부터 올리게 되네요ㅋㅋㅋㅋㅋ 곧 자기소개서도 올리겠습니다.

레홀에 워낙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많아서 제 글이 엄청 두서없고 엉망인 것 같지만요ㅠㅠ
그래도 이왕 쓴거 올릴게요!





***


 오랫동안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자 라이터의 불꽃이 눈앞에 일렁거렸다.

 문득, 작지만 안정적인 그 불꽃이 나의 20대와 같다고 느껴졌다.

 치기 어리고 자신감 넘쳤던 그때의 나는 연애에 대한 확고한 지향점이 있었다.

 누군가는 사랑이 열병이라 말했지만 내게 사랑은 안정과 균형이었다.

 형태를 빚어 보자면 축제를 밝게 비추고 사라지는 캠프파이어가 아닌, 날이 밝을 때까지 소소하지만 차분하게 일렁이는 모닥불일 것이다.


 내 첫 연애는 늦은 시기였다.

 군대를 다녀올 때까지 난 사랑에 대한 감정을 알지 못했다.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열망도 없었고 꼭 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도 없었다.
두어 번의 짧은 연애 아닌 연애를 거쳐 본격적으로 시작된 첫 연애는 잔잔한 바다처럼 이어졌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타인과 잘 어우러지고 대화가 잘 통하며 이성적인 여성에게 끌렸고 그때는 그런 끌림과 감정의 교류가 사랑인 줄 알았다.

 첫 연애는 1년, 이후 두 번째 연애는 3년의 만남. 작년에 헤어진 전 여친과는 2년을 만났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고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었으며 문제가 생기면 이성적으로 해결했다. 아니, 난 해결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들에게는 아니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성숙함인 줄 알았고 완성된 연애인 줄 알았던 것이다. 뜨겁게 불타오르지는 않았지만 큰 트러블도 없었기에 사랑이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여자 친구와 싸우고 한탄을 하고, 주위의 형, 동생들이 여자 친구와 트러블이 발생해서 술을 함께 마실 때도 난 내 연애 방식에 취해 있었다. 여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도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슬픔은 있었지만 그녀를 보지 못한다는 것에 슬픔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것 역시 성숙한 이별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형태가 다를 뿐, 만나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자 했고 기념일을 챙기고 소소한 이벤트와 선물을 받으며 기뻐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했으니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니까. 사랑이 아니었다면 1년, 3년, 2년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다만 그것이 일종의 자기만족이었으며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누가 보기에는 비약일 수도, 자책일 수도,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 여친이 헤어지면서 했던 말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우리 만나면서 한 번도 안 싸웠잖아. 그래서 헤어지는 거야.’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연애관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말이었다.
 
 누군가 망치로 내 머리를 세게 내려친 것 같았다.
 

 ‘안 싸운다는 건 안 맞는다는 거야. 잘 맞아서 안 싸운 게 아니라 우리는 맞춰가는 과정조차 없을 만큼 안 맞는 거야. 얼굴 볼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전화로 말해서 미안해.’
 

 난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안정과 균형이 내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지만 바꿔 말하면 안정과 균형이 깨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나면서 다툼이 없었던 것도, 이별이 죽을 만큼 힘들지 않았던 것도, 그녀들을 빠르게 잊을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내가 사랑이라 생각했던 이 감정이 사실은 그 정도로 깊게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니 아마 더 긴 시간이 지나도 그 말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사랑에 대한 생각, 인간관계에 대한 확신이 얼마나 오만하고 자기기만적인 생각이었는지, 제대로 된 사랑도 해보지 못했으면서 마치 다 이해한 척, 알고 있는 척을 해왔는지 말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모든 결과가 이별로 이어진 작년의 그날 이후로 뜨겁고 활활 타오르는 사랑에 대한 갈증이 피어올랐다. 아무런 조건에도 얽매이지 않고 훗날 떠올려도 ‘아, 그때는 진짜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사랑했었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랑 말이다.

 물론 사랑의 형태는 모두 다르고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제대로 된 사랑의 형태를 알지도 못한 채 그것이 내 사랑의 형태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성 속에 감정을 숨기고 본 모습을 숨긴 채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 마냥 행동했던 나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미처 털어내지 못한 담뱃재를 털어내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30대가 된 지금에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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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키리 2019-07-28 23:45:45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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