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두 번째 편지
46
|
||||||||
|
||||||||
실수, 약속, 사랑
이 세 단어는 아마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나의 것이 조금 다른가 봅니다. 내가 생각하는 실수란, 볼펜을 집으려다 그 옆 물이 든 컵을 엎지르는 것, 돈을 잘못 계산하는 것, 셔츠 단추를 잘못 꿰는 것과 같은 찰나의 것들을 의미하는데요. 더이상 만나지 말자고 약속한 나의 사는 동네 터미널까지 장장 10시간에 걸쳐 몰래 왕복하는 일이나, 그것을 알게 된 내가, 이후부터는 극구 오지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에는 기어이 집 앞에 5시간을 죽치고 버텨내다 공권력에 의해 질질 끌려나가는 것이 당신이 말하는 실수인가요? 나에게 약속이란 반드시 지키려고 하는 것이었으나 당신은 그저 나를 안심시키고 싶어서, 답장을 받아내기 위해 뱉어낸 묘책이었나봐요. 신경 쓸 일 없게 하겠다던 당신의 말, 약속은 아니었던 거지요. 나는 무서워 잠에 들지도 못 하는데 당신은 모양 좋게 술이나 마시다가 생각 끝에 내가 닿는 날이면 전화를 했지요. 내가 사무치면 익명게시판에 나를 그리는 편지를 썼지요. 글을 읽은 내가 싱숭생숭하기를 바랐지요. 신경 쓸 일 없게 한다던 그 말은 약속이 과연 맞았을까. 마지막으로 사랑, 갖은 방식으로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을 누가 사랑이라 칭하리오. 내가 느끼는 사랑은 존중과 배려의 응집체인데, 당신의 방식은 존중도 배려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더이상 누군가와 교류하는 것을 원치 않아하는 나에게 출국일정을 핑계로 만남을 종용하고 채근했던 것은 당신이었고, 당신의 존재에 대해 극도로 불안해하는 나를 침범한 것 역시 당신이었어요. 망할 도파민? 나답지 않은 실수? 그것은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랑을 하는 이들이 당신처럼 추악한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 당신이 했던 그것들은 결코 사랑이 아니었어요. 나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또다른 글을 연재한다고 하여도 나는 묵묵히 먼 발치서 지켜볼 테요. 당신이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나에 대한 이야기를 왜곡되게 전달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어요. 그러나 글의 소재로 나를 포함한 당신이 가해했던 인물들을 소비하지 않기를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소설이라는, 허구라는 빠져나가기 좋은 구멍을 이용하여 그리움이라는 미명 하에 누군가의 마음에 피 흐르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또, 나에게서 가져갔던 모든 것을 없애주기를 바랍니다. 나와 관련한 모든 것들이요. 사진과 동영상이라 함은 내 나신 뿐만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우리 집 근처의 풍경까지도 포함이겠고, 물건이라면 내가 입었던 지린내 나는 팬티와 너덜거리는 커피색 스타킹도 포함이 되겠군요. ‘적어도 올해는 경고장도 받았겠다. 안 찾아갈게요.’ 아니요, 제발요. 언제고 어디고 나를 향한 발걸음과 끄적임을 포함한 모든 노력을 이제부터라도 하지 말아주세요. 나의 새해는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당시 경찰에게 처벌불원의사를 밝혔던 것은 외력을 통하지 아니하고 당신이 오롯이 뉘우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싸운 여자친구의 기분을 풀어주러 왔다며 경찰에까지 거짓말을 하는 당신의 말에 동조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뭘 더 할까요. 더 할퀴지 말아요. 자극하지 마요. 숨도 힘겹게 쉬고 있으니까.’ 윽박지르는 당신 앞에 무기력하고자, 당신이 미련을 갖게끔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법정에 서서 서로에게 이를 드러내며 갉아먹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굳이 처벌하지 않더라도, 다시는 나를 괴롭게 하지 않겠지- 하는 일말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하건대 더이상 아프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부디 아픈 곳 씻은 듯 나아서 훨훨 나비처럼 날아다니기를 바라요. 비로소 하나도 아프지 않게 되었을 때 나 같은 비겁한 썅년은 떠오르지 않기를. ------Original Message------ 우울감에 이름을 붙여주면 더욱 선명해지다 떨쳐 낼 수 있다고 하는데 내 우울감의 이름은 늘 그리움이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향해 달려오면서도 끝을 바라보고 시작했고 나는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영원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망할 도파민의 장난이 도가 지나쳐서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면서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웃다가 울다가 당신이라는 존재가 뚜렷다하가 지금은 잔상으로. 큰 상처에서 곧 떨어질 작은 딱지처럼 흐릿해요 당신이 내가 처음 쓴 그 편지를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당신이 이 편지를 또 다시 발견하지 못했으면 좋겠지만. 발견하고서 아주 조금은 아주 잠깐은 싱숭생숭 했으면 싶기도 해요. 그럼 안녕 나의 여름, 나의 작은 머피.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