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이라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라!
0
|
|||||||||||||||||||
영화 <겟썸>
혹시 쾌락을 죄악시 여기지는 않나요? 서로에게 쾌락을 주기 위해 진정으로 사랑을 한다면 더 이상 쾌락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쾌락이 죄악이라니 우리는 '쾌락(快樂)'이라는 말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쾌락이 마치 악의 근원이고 죄의 원천인 것처럼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쾌락은 도덕적 타락과 정신적인 황폐를 가져온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성경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쾌락으로 멸망했다고 그려져 있어서 쾌락은 죄악이라는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보면 쾌락은 욕망을 만족시키는 즐거움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무엇 때문에 욕망을 만족시킨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고 거부감마저 가지는 것일까? 어쩌면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일에 대부분 실패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특히 성욕의 경우 거의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쾌락은 남자들의 것? 남자들이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하면서 성욕에 만족하는 일은 자신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왔다. 그래서 자기만의 쾌락을 위해 많은 여자와 섹스를 하면서도 여자의 쾌락은 철저히 무시한 채 오직 성적 노리개로만 취급하였다. 결국 여자는 남자의 쾌락을 위해 바쳐지는 희생 제물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남자들이 성적으로 만족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당장은 사정을 해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언제나 허무감뿐이었다. 마치 탄산음료를 마시고 났을 때 당장은 갈증이 해소되고 시원함마저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갈증이 더 심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남자들은 여자에게서 얻지 못한 만족을 얻기 위해 좀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변태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음탕하게 타락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인간은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쾌락을 술과 마약에 의지해 정신적인 환상 속에서라도 쾌락을 얻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깨어나면 불쾌해지고 몸까지 해치는 좋지 않은 결과만 만들어냈다. 쾌락에 회의론이 생기다 반면에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보면서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들은 어차피 만족하지 못할 바에야 아예 쾌락을 추구하지 말자고 금욕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저질스럽게 생각하고 금욕을 내세우는 사람은 숭고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과연 쾌락은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에 불과한 것일까? 그 대답은 분명히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인간이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남자의 이기심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들은 쾌락이 단순히 자신만이 느껴야 하는 특권처럼 착각해서 여자에게는 쾌락을 주려 하지 않았다. 쾌락이란 분명히 욕망을 만족시키는 즐거움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자기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상대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즐거움이라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여성의 쾌감이 쾌락을 완성한다 섹스에서의 성적 쾌감은 여자가 성적 쾌감을 느낄 때 비로소 남자도 그 쾌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자의 질이 조이고 질벽의 파장이 일어날 때만 남자의 성기는 강한 자극을 받으면서 진정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시간이 길면 길수록 남자는 성적 만족을 더 크게 얻는다. 그러나 이런 질의 변화는 남자의 사랑이 없이는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의 몸을 사랑해서 잠들어 있는 성감을 깨워주고 오랜 자극에 의해 몸이 뜨거워져 쾌감을 느끼기 시작할 때 성적 쾌감을 남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여자를 그렇게 만들어주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무조건 발기된 성기로 여자의 건조한 질 속에 삽입을 해서 사정을 하기 때문에 꿈틀거리는 질의 움직임으로 얻는 쾌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혼자만 쾌감을 얻으려 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어느 한쪽도 진정한 쾌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섹스다. 여자의 몸이 쉽게 뜨거워지지 않는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쉽게 흥분하고 빨리 뜨거워지는 여자를 찾아 헤맨다. 그런 여자이어야만이 전희를 하지 않아도 질이 만들어주는 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특정한 여자가 아니라 해도 모든 여자는 남자에게 충분히 애무를 받기만 하면 당연히 몸이 뜨거워지고 쾌감도 느낄 수 있는데 그런 노력을 남자가 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쾌락을 얻기 위해서는 쾌락을 주어야만 한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여자의 몸을 뜨겁게 만드는 일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진정 자신의 쾌락을 원한다면 먼저 여자에게 쾌락을 주면 되는 것이다. 쾌락은 사랑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남자가 여자의 몸을 뜨겁게 사랑하면 여자는 감사의 표시로 질벽의 파장을 만들어내고 질을 조여서 남자의 성기에 자신의 쾌감을 전달해준다. 지금까지 남자가 경험했던 단순한 사정의 쾌감이 아니라 여자의 질이 끊임없이 만들어주는 자극에 남자는 황홀해 한다. 또 여자도 자신이 만드는 자극에 더욱 단단해진 남자의 성기를 느끼면서 열락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섹스의 쾌감은 어느 한쪽이 더 만족하고 덜 만족한다는 것이 아니라 쾌감을 함께 나누고 공유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서로에 대한 노력과 헌신이 있을 때만 사랑을 확인할 수 있고 경애심마저 느끼게 된다. 이렇게 느끼는 쾌감은 포만감을 준다. 만족하지 못해서 느끼던 갈증도 힘껏 끌어안아도 부족했던 허무감도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뿌듯한 만족감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더 이상 서로에게 바랄 것이 없고 더 줄 것이 없는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냥 그가 있어 좋고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미 세상적인 욕심도 없고 상대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 그냥 이대로 행복하고 영원하기만 바랄 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섹스의 쾌락이다. 그래서 여러 섹스 상대가 필요하지 않으며 오직 한 사람만으로도 만족한다. 진정한 사랑은 진정한 쾌락의 추구라는 목적이 없으면 아름답지 않다. 섹스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만족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있다. 도덕적 타락과 성적 문란도 어쩌면 인간이 진정한 쾌락을 얻지 못해서 생겨난 것인지 모른다. 만약 인간이 서로에게 쾌락을 주기 위해 진정으로 사랑을 한다면 더 이상 쾌락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적극적으로 사랑을 하며 서로에게 진정한 쾌락을 주기 위해 노력하게 될 뿐이다. 서로에게 만족할 때 인간의 욕심은 사라진다. 그래서 서로의 육체를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알 때 우리의 정신까지 순수해질 수 있는 것이다.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