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고자와 기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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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모가와 호르모> <단군신화>에 보면 환웅이 풍백과 우사, 그리고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인명·질병 등 360여 가지의 인간사를 다스렸다고 했으니 고대의 신권군주는 백성의 생존을 위해 풍년이 되기를 빌고 비가 오기를 비는 등 종교적 행사와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진평왕 50년 여름에 큰 가뭄이 들어 장(市)을 옮기고 용을 그려서 비를 빌었으며(眞平王 五十年 夏大旱移市 龍祈雨)" <고려사>에는 "현종 12년 4월에 가뭄이 들어 토룡을 만들고 무당을 모아 비를 빌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무당·소경(판수)·내시를 시켜서 한강 등에서 기우한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성현은 <용재총화>에 비를 비는 의식을 기술하였는데, 도성 안 1만호의 집에서 병에 물을 채우고 거기다 버드나무 가지를 꽂는다고 하였다. 이는 불가에서 관세음보살이 괴로움과 어려움을 구하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로 감로수를 뿌린 것과 유사하다. 한편 조정에서는 관에 명하여 오룡제를 지내게 했다. 한양의 사방과 중앙에 황룡을 그려 붙이고 3일 동안 비는 제례였다. 도교의 술사를 시켜 용와경을 읽게 하고, 창덕궁 후원이나 경회루, 모화관 등 세 곳의 연못가에서는 항아리 속에 도마뱀을 넣고 띄운 뒤, 청의를 입은 동자 수십명이 징을 올리면서 "도마뱀아 도마뱀아 구름을 일으키게 안개를 토하여라, 주룩주룩 비를 쏟아지게 하여라. 그러면 너를 놓아주마"하며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시장을 남문으로 옮기고 북문을 열었으며, 곳곳에 누각을 세우고, 아이들이 무리지어 비를 부르며 소리치게 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기우제는 부녀자들이 노상이나 마을의 안산에 올라 방뇨를 하는 것으로 지신(地神)을 달랬는데, 오룡제는 어린 소년(童子)들을 이용한 것이 특색이 있다. 그런데 이때 동원되는 동자들은 전부 상직소환(上直小宦), 즉 나이 어린 환관으로 모두 고자였다. 이는 가뭄이 음양의 조화가 깨어진 것이므로, 마찬가지로 음양이 깨진 고자들을 통해 자연의 이치를 바로 잡고자 했던 것이다, 고자인 동자들이 소프라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양기가 세서 일어나는 가뭄을 음기로 달래는 효과가 있었다. 한편 기우제에 동원되는 제주(祭主)는 딸만 낳은 부인이어야 했는데, 쌍둥이 딸을 낳은 부녀자는 효험이 크다 하여 비싼 품삯을 받았다. 아마도 딸 낳은 여성이 유일하게 대접을 받은 사례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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