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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출신 난쟁이 화가 로트랙의 성욕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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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Maurice Guibert / Getty Images 프랑스의 풍속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랙(Henri de Toulouse-Lautrec)은 성인이 되었어도 소년의 신체 그대로 성장이 멈춰 버렸지만 유독 심볼만은 기형적으로 커서 성행위를 즐기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19세기말 파리 하층민들의 슬픔과 고뇌, 술집, 창부 등의 풍속을 포스터에 잘 표현한 그는 신세를 비관하여 매춘굴에서 먹고 마시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외에는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면서 매춘부들과 놀아나는 생활을 했다. 그는 아무 여자하고나 어울렸으며, 누울 곳이 있는 곳이면 아무데서나 얼싸안고 짐승 같이 정사를 벌였다. 어떤 때는 방을 얻어 몇 달씩 창녀와 동거하기도 했고, 창녀와 동거하는 곳이 화실이 되었다. 귀족사회의 허위, 위선들을 혐오한 그는 주로 창녀들은 주제로 풍속화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사창가를 떠돌며 하층민의 삶을 피부로 느끼면서 함께 새우잠을 지냈다. 그러다가 정욕이 속구치면 망설임 없이 창녀들을 품에 안고 환락의 밤을 보냈다. 그에게는 그림과 술과 섹스가 전부였다. 이러한 무절제한 생활은 그에게 알콜 중독과 매독이라는 부산물을 선물로 안겨 주었다. 그럼데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 500여 점의 유화, 350여 점의 석판화와 포스터, 그리고 5,000여 점의 드로잉을 세상에 남겨 놓았다. 1901년 매독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던 그는 뇌일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으나, 정처 없이 뛰쳐나와 말로메성의 정원 한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한참 마시다가, "죽는다는 일이 정말 힘드는군."라고 뇌까리면서 세상을 떠났다. 로트랙과 같은 성욕과잉증 환자는 대체로 인구의 5% 정도로 추산된다. 성욕과잉증의 원인은 어린시절의 성장환경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지나치게 억업적인 환경이나 불안, 우울증이 주요 원인이다. 이밖에도 어린시절 당한 성적 학대에 대한 반발 심리가 이런 증세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증상은 첫째, 파트너에게 지나친 관계를 요구하거나 둘째, 한 여성과 관계를 맺은 후 즉시 다른 여성을 찾아 나서거나 셋째, 맺어질 수 없는 여성에게 죽도록 매달리거나, 넷째 강박적으로 자위에 몰두하는 자기애에 빠지거나 다섯째, 한꺼번에 여러 명의 파트너와 관계를 지속하는 형태 등으로 나타난다. 마치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에 걸린 것처럼 성적 과잉에서 빠져나오지 못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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