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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삶과 여자 성기의 공통점에 대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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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니체가 여성의 외음부에 삶의 진리를 빗대어 이야기한 본문은 참신하다. 바우보는 그리스 신화에서 여성의 외음부를 상징하는 신으로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스타벅스 로고에 새겨진 인물이 바로 바우보다. 니체가 바우보를 통해 여성의 외음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은 여성의 외음부가 어떤 힘으로도 좁힐 수 없는 ‘거리’를 표상하게 하며, 여성의 자궁을 통해 ‘생명과 창조’를 이야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어떠한 힘으로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듯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각자의 특성이 있으며, 그 존재 사이에는 어떤 힘으로도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다는 의미로 ‘거리의 파토스’를 이야기하고자 여성의 외음부를 예로 들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보면 삶을 여성에 빗대어 표현하는 니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삶은 움켜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니체는 여성의 메타포를 사용해 삶을 다음과 같이 뱀과 마녀로 표현한다. ‘오 얄미운, 날쌔고 날렵한 뱀이여, 그리고 미끌미끌하여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마녀여!’ 니체에게 삶은 잡으려 할 때마다 미끄러지는 신비다. 삶은 자신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빠져나가며 알 것 같지만 다 알 수 없고, 끊임없이 알아가야 하는 여정이다. 니체는 순수한 욕망으로 더 나은 삶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을, 좁힐 수 없는 ‘거리의 파토스’, 거리의 열정이라 말했다. 삶의 과정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새로운 창조를 여성의 외음부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여성의 외음부는 임신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게 한다. 새로운 창조, 생동감 있는 삶을 표현하기에 여성의 외음부만큼 직설적이고 확실한 매체는 없을 것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니체가 참 괴팍스럽게 느껴질 만도 하다. 지루한 철학적 이야기일 수 있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면 니체의 비유가 조금씩 이해된다. 그녀(타자)와 나(자아) 사이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이어주는 길목을 따라 내가 들어갈 때마다 그녀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는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처음엔 아픔과 상처로 시작했다가 강렬한 부드러움에 심취하기도 한다. 그러다 이내 익숙해지고 처음에 느꼈던 감정이 사라지면서 소중했던 의미를 잃어버리고 다시 찾기를 반복한다. 성관계의 피스톤 운동은 이런 점에서 삶의 과정을 상징하는 거 같다. 붙잡고 싶지만 이내 미끄러져 나가고,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라진다. 인생은 그녀와 술래잡기를 반복하는 일상이다. 가까이 있으면 잃을까 두렵고 멀리 있으면 그리워진다. 멀어질 거 같으면 끌리게 되고 가까워질수록 사라질 것만 같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항상 내 삶을 맴도는 것 같지만 그게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신비를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삶 가운데 펼쳐져 있다는 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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