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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를 섹스라 부르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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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New girl]
 
지인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다가 그런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다.
 
내 지인 A는 굉장히 털털한 여성인데, 그녀의 아버지께서 어느 날 캐주얼 차림으로 놀러 나가는 A의 모습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더랬다.
 
“네 나이의 남자들은 여자들이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알아, 제발 그들의 환상을 깨지 말거라.”
 
그 말을 들려주면서 A는 내게 동의를 구했다. 근데 요즘은 남자들도 여자들이 초록색 이슬만 먹고 산다는 건 다 알지 않을까? 여자들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트림하고 똥 싸는 건 다 알잖아. 내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생각과 직접 보는 건 다르지 않을까, 아마 그렇게 대답한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조금 다른 기억을 떠올렸다. 한 때 (생각만) 발랑 까진 소녀였던 필자의 학창시절 점심시간, 남학생들이 죄다 둘러 모여 책 한권을 둘러보고 있었던 적이 있다. 간간히 숨소리도 크게 들리고 자기들끼리 웅얼거리는 소리도 들리는데 럭비 수비마냥 층을 쌓고 있어서 책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한 용감한 여학생이 그 들 중 하나를 쿡 찔러서 야 너네 뭐해 하고 불렀고, 남학생들은 한입을 모아 어허, 여자들은 봐도 모르는 거야 저리가, 했더랬다. 거기에 누군가 어린애들은 몰라도 돼! 라거나 여자애들은 순진해서 안 돼. 라는 둥 낄낄대면서 여자애들을 힐끔대는 것이, 아, 이거 야한 책이구나 싶었다. 그 남자애들이 의도한 대로, 필자를 비롯한 여자애들은 입가를 가리고 흠칫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더 높아졌다. 그렇게 뒤로 물러난 우리는 그저 조용히 모여 엄마미소를 지었더랬다.
 
‘우린 너희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단다. 하하, 귀여운 것들.’
 
어쩌면 우리는 그대들보다 더 많은 야동과 야설과 교육적 자료를 접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우리는 굳이 그 아이들에게 너희보다 더 잘 안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선택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당시의 우리들은 ‘타인의 눈’이 무서웠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야동을 보고, 성적인 부분에서 남학생들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여학생들은 착한 아이들답지는 않았으니까.
 
사실 이 환상이란 상대의 로망에 맞춰주고 싶은 마음에서 생겨났다고 생각하는데, 환상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이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자라고, 여자라고 다르랴? 다만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은 당연히 야한 것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였다거나, 혹은 A양의 아버지가 말씀하였듯 일부의 남자들이 여자의 이미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그것이 깨어지면 실망한다든가 하는 요소들이 보일 때마다 여자에 대한 환상의 문제가 생각보다 우리의 생활에 꽤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느낀다. 환상이 환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 스스로의 행동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 스스로의 신념으로 순결을 선택한다든가,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첫 경험을 시도했으나 별로였다든가 하는 이야기였으면 좀 더 나았을 터다. 자신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가 떠날 것 같아서 고심 끝에 하게 된 섹스가 후회 된다든가, 부모님께 죄송했다든가 하는 경험 및 썰의 카더라 통신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자면, 이 ‘순결하고 우아한 여자’에 대한 문제가 옛 말 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는 한다. 심지어 이 자유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자조차 아직도 어린 시절의 성교육의 여파가 남아있다.(교육적인 여파가 남았다고 하기에는 조금 많이 삐뚤어졌지만)
 
섹스가 하고 싶어도 섹스를 섹스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인생이여! 게다가 이 여자에 대한 환상이라는 족쇄가 여자들에게만 나쁜 문제냐고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섹스란 결국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함께 즐기지 못하는 파트너란 서로에게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 사람들은 가부장과 보수와 성적압박의 요소들이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부모님의 세대가 받았던 교육과 생각을 부모님이 물려받았다면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대를 통해 현재의 10대까지도 이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요즘은 10대가 섹스를 즐길 만큼 성적으로 개방되었다지만,(책임의 여부는 뒤로하고) 여자들의 섹스 사에서 가장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정작 섹스를 즐기는 여자, 혹은 여자도 섹스를 즐겨도 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여자들의 섹스요구가 좀 더 자유로워졌다는 증거는 바로, 섹스를 하고 싶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냐 없냐다. 어떤 총명한 언어의 마술사는 여자다운 환상을 깨지 않으면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을 단 한 마디로 정리해냈다.
 
“라면 먹고 갈래?”
 
자, 우리는 이제 홍길동에서 아주 조금 레벨 업 했다.
종갓집막내딸
더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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