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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욕망 당하는 걸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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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탈리] 화가는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발가벗기고 자기의 척추 끝에서 용솟음치는 욕정에 몸서리친다. 그는 그녀를 발가벗기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마치 마약에 취한 듯 취해서 흥분에 젖어 있었으며, 수치심으로 바들바들 떠는 여자 앞에서... 성기를 찔러 넣는다. 움직인다. 신음한다. 절규한다. 야비한 짐승처럼 할딱거린다. 절정도 왔을 게다. 그 남자만을 위한 절정... 그 행위가 문제가 아니다. 그 순간 그 화가 남자에겐 이 여자가 없었다. 그저 하나의 짐승이 있을 뿐이다. 물론 뭐 여자라고 그 수동적인 요염스런 짓거리로 뭐 대단한 사랑 행위를 했다는 그것 또한 아니다. 어쨌든 자기 욕정에 발버둥 치는 그의 욕정을 받아내기만 한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서 신경 쇠약에 걸린다. 화가와 섹스하고 있는 그녀는 남편이 있다. 그녀는 그저 그녀의 육체를 한두 번 탐할 뿐이었던 남자와 결혼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타인의 시선에 내맡기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커다란 불확실성이 있었다." - 본문 중 왜 여자는 욕망 당하는 걸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걸까? 결국, 그 수동적 결정에 대한 책임은 그녀 스스로 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사랑을 몰랐다'라는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준다. 그녀의 남편과 그녀는 아이가 기어 다닐 무렵부터 서로에게 소홀해졌으며, 결국 완전히 멀어지게 된다. 몸이 완전히 멀어졌을 때 그녀는 그때야 깨닫는다. 예전부터 그 남자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고. 여자는 늘 자기에게로 줄어드는 남자의 욕정을 사랑의 잣대로 삼는다. 그리고 욕망 당하지 않는 순간 자기의 성적 가치마저 사라졌다고 단정한다. 그렇게 단정되었을 때, 여자는 자기의 육체뿐 아니라 다른 여자의 육체마저 원수처럼 여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욕망의 대상이 되는 다른 여자의 싱싱한 육체는 그녀에게 원수가 된다. "여자는 자기 몸과 더불어 충분히 잘 지내지 못할 때 결국 몸이라는 것이 원수처럼 보이게 된다." - 본문 중 그래서 그녀는 다시 느닷없이 그녀의 몸을 원하는 다른 남자의 품으로 뛰어든다. 그가 바로 이 화가이다. 또다시 혹여 사랑일까 하고 믿어보지만, 그저 수동적인 다른 욕망의 대상이 됨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는 새 남자(화가)에게 묻는다.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그는 답한다. 그녀를 그냥 맛보기로 여겼던 그는 돌려 말한다. "권투선수가 나비를 사랑하듯, 가수가 침묵을 사랑하듯, 불한당이 마을 여선생을 사랑하듯, 도살업자가 송아지의 겁먹은 눈을 사랑하듯이, 번개를, 목가적인 지붕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사랑한다"고 했다. 그는 답했다. -
밀란 쿤데라, '삶은 다른 곳에' 중 흔한 사랑 보고서. 이런 착각의 사랑이 세상에 넘쳐 난다. 만약에 눈앞의 남자가 도살업자가 겁먹은 송아지를 욕망하듯 자기를 욕망하면, 그땐 그 상황을 존재하지도 않은 사랑 부스러기로 미화시키고 또 수동적인 몸짓이나 하지 말고, 같이 짐승처럼 춤추고, 그가 척추 끝단에서 머리를 치고 올라오는 쾌락에 절절 떨기 전 여자도 자기 쾌락의 흐름을 도사리고 주시하는 짐승이 되길. 그래야 멋진 거래가 될 것이고 이때야 유치한 신파가 아니라 쿨한 퍼포먼스가 된다. 그래야 이 섹스를 자궁 의 자산으로 삼아 더 깊은 오르가즘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을 수 있다. 이제 이 세상에 섹스에 있어서 동화는 없다. 더구나 냉정한 오르가즘 세계에 있어서는... 이젠 먼저 사정하려는 그 앞에서 이야기해야 할 걸. “나 아직 아냐, 한참 좋아서 이러는 거야. 신음도 못하냐... 뒤로 젖히지도 못하냐...” 글쓴이ㅣ팬시댄스 원문보기▶ https://goo.gl/bPfoH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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