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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가남은 힘차게 노를 저었다. 수상스키가 지나가면 일부러 손을 흔들었다.
 
미옥은 고물 갑판의 한쪽으로 움직여 손으로 강물을 훔쳤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원한 강물과 풀벌레의 찌륵찌륵 소리와 뱃전에 부딛치는 강물 소리와 노에서 나는 찌그덕 소리가 한데 어울려 합창을 이루었다. 지는 해를 등진 가남의 검은 눈빛을 피하지 않으면서 미옥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준태를 다시 끄집어냈다. 일년 가까이 준태를 사귀면서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미옥은 참 즐거웠다. 준태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고 여성 특히 자기에게는 끔찍할 정도로 다정다감했다. 언제나 미옥의 입장을 생각해주고 의사를 묻고 늘 미옥이 하자는 대로 했다. 갑자기 배가 기우뚱하면서 하마터면 미옥이 물에 빠질 뻔 했다.
 
수상스키가 지나고 물결이 치는 방향으로 가남이 일부러 배를 댔기 때문이었다. 놀라서 중심을 잡으려다가 미옥이가 고물갑판에서 미끄러지면서 쿵하고 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럴 본 가남은 오히려 더 놀라 배의 중심은 생각도 않고 후다닥 달려갔다. 미옥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이 중심을 놓친 자세라 미옥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순간 가남은 물컹한 촉감에 몸서리를 쳤다. 그러면서도 가남은 그 젖의 크기가 코코넛 반쪽만하다고 느꼈다. 배는 한번 기울고 흔들리자 둘은 더 놀랬고 엄마야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미옥 때문에 가남은 더 당황하며 그냥 미옥을 끌어안았다. 가남은 의도적으로 미옥을 끌어안았는지 중심을 잡기 위한 순간이었는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미옥의 태도에 더 놀라 순간 붕 뜬 기분이었다. 놀라서 중심을 잡으면서도 미옥은 가남을 뿌리치거나 피하지를 않고 오히려 태연히 즐기는 듯한 자세였다고 가남은 생각했다. 잠시의 소동이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온 가남은 미옥이 풀어진 단추를 채우지도 않고 그대로 갑판에 앉은 것을 보았다. 넓은 챙모자로 머리카락은 가려졌지만 모지 밑으로 굵은 컬의 굽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드리워져 있고 얼굴이나 몸매가 모두 갸름하였다. 분명 처녀는 아닐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정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미옥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준태 생각을 해서 사태가 이리 된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호탕하고 거칠 것 없는 저 남자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느 선까지 나를 대할 것인가. 저 남자는 누구이며 그냥 오늘 하루의 일로 끝날까. 둘은 배를 강기슭쪽으로만 몰면서 천천히 그리고 간단간단히 서로에 대해 물어보았다. 특별히 감출 것도 없다고 생각한 둘은 그저 사는 주변의 이야기를 했다. 물론 가남은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것과 바람둥이라는 것을 숨겼고 미옥도 자신이 별거라는 것을 숨겼다. 그러면서 둘은 상대가 유부남 유부녀라는 것, 상대의 직업이나 좋아하는 것 등 그런 것들만 아는 정도였다. 가남이 물었다.
 
“제가 누구이고 어떻다는 것을 다 아시기 바래요?”
 
갑자기 질문을 받은 미옥은 멍해졌다. 준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서로를 깡그리 다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되었는가?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준태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한 미옥이었지만 준태가 성불능이란 것을 몰랐고 그 모른 사실 하나 때문에 결국 준태랑 헤어지지 않았던가. 미옥은 누구를 안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알아서 무엇한단 말인가.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가남씨도 제가 누구이고 무엇이라는 것을 다 아시기 원해요?”
 
“아! 절대 아닙니다. 전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건 왜죠?”
 
“상대를 모르면 매번 만날 때마다 새롭고 신선하잖아요”
 
가남의 말에 둘은 까르르르 웃었다. 참 기막히게 맞는 논리였다. 둘은 그렇게 호흡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벌써 해는 한 뼘 정도를 남겨놓고 강물은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가남은 일부러 미옥이 해를 보도록 배를 저었다. 지는 해를 받은 미옥의 얼굴은 환하게 피어올랐다. 마치 갓 목욕을 시켜놓고 분을 발라주면 뽀얗게 얼굴이 피어나면서 쌔근쌔근 잠이 드는 아기 같았다. 가남은 미옥이 보기 드물게 이쁘다고 생각했다. 탈렌트처럼 모든 면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약간은 이지적이면서 약간은 도전적이고 또 어떻게 보면 멍청한 것 같기도 했다. 가남은 얕은 신음을 내면서 미옥을 한번 안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꾸만 아까 엉겹결에 만진 가슴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가남은 자신이 몇 달째 애인이 없이 지냈다는 것을 알았다. 차희를 보낸지 벌써 다섯 달이 지나고 있었다. 일 주일이면 한번씩은 꼭 품었던 차희 , 그 차희가 시집을 간 것이다. 차희 생각이 난 가남은 차희처럼 미옥도 맛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오줌이 마려웠다. 한번 마렵다고 생각하니 점점 오줌이 더 마려웠다. 가남은 난처했다. 가남은 자짜고짜로 물었다.
 
“미옥아! 나 오줌 마려운데 어쩌지?”
 
미옥은 가남이 반말로 물어온 것에 화들짝 놀랐다. 아니 놀란 것은 반말이 아니라 오줌 마렵다고 어찌 해야 하냐고 묻는 그 어처구니 없음에 놀랐다.
 
반말은 자기보다 다섯 살이나 많고 한참을 이야기하고 놀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오줌 마렵다고 졸라대는 아이 같은 태도에 미옥은 멍해졌다.
 
“그냥 싸요”
 
“보는 데서?‘
 
“남자가 뭐 어때요. 고추좀 봅시다”
 
미옥은 아무리 취했기로서니 남자의 고추를 보겠다고 무심코 던진 자신의 말에 킥킥거리며 웃었다.
 
“내가 미옥씨 오줌을 마시면 미옥씨도 내 오줌을 마실 겁니까?”
 
“까짓껏 마시죠. 마시면 어쩔 겁니까”
 
“미옥씨를 한 시간 내내 안겠습니다”
 
“어? 이상하네요. 그럼 누가 좋은 거죠?”
 
“둘 다 좋은 거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미옥은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기억이 가물거렸다. 미옥이 가남을 유도하는 건지 가남이 미옥을 유혹하는 건지 구별이 안 됐다. 해는 이제 산에 걸렸다. 강물은 완전히 황금색으로 출렁거렸다. 아까 배를 붙들어 매던 골짜기로 다시 배를 댔다. 배를 잡아매고 자리로 돌아오던 가남은 미옥이 앉아있는 고물까지 왔다. 엉덩이로 미옥을 밀어붙인 가남은 다짜고짜로 미옥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미옥의 목은 갓난아이의 목처럼 힘이 하나도 없이 흐느적거렸다.
 
미옥의 입술은 뜨거우면서 촉촉했다. 저절로 벌어진 웃니와 아랫니 사이로 가남의 혀가 몰려들어왔다. 미옥은 닝닝하면서 까실까실하면서도 미끈거리는 가남의 혀가 입안에 하나 가득 찬 것을 즐겼다. 가남은 혀로 미옥의 이와 잇몸을 양치질하듯 구석구석 헤매고 누볐다. 오른손은 벌써 미옥의 가슴을 헤집고 있었다. 몽글몽글하면서도 아직은 잡히는 멍울이 많은 것으로 보아 가남은 애기 젖을 많이 먹이지 않은 것으로 짐작했다. 숨이 막히는지 미옥이 꿈틀거렸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온몸을 맡긴 미옥은 때마침 지나가는 수상스키의 물결로 배가 흔들리면서 온몸이 붕 뜨면서 구름 위에 누운 착각을 했다. 가남의 키스는 꽤 줄기찼고 힘찼으며 강약과 기교에 있어서 수준급이었다. 미옥으로서는 처음 받아보는 진한 키스였다. 한 오분이 흘렀는데 미옥은 이십 분쯤 지난 것으로 느꼈다. 가남의 오른손이 미옥의 다리 사이로 내려오는 것을 느낀 미옥은 숨이 찬 것을 핑계로 가남의 품에서 벗어났다.
벗어나려는 미옥의 허리를 획 낚아챈 가남은 미옥의 입술에 닿을락말락 가벼운 키스로 긴 포옹과 키스를 끝내고 태연한 척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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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씨, 내기에서 내가 이겼으니 입술 주세요”
 
“아까 키스했잖아요”
 
“그건 제가 훔친 거죠. 아까 약속은 분명 미옥씨가 입술을 주기로 했잖아요”
 
“나 참, 못말리는 분이시군요”
 
미옥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어정어정 구부리고 배 가운데 가남에게로 온 미옥은 앉을 자리를 피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가남은 가운데에서 그냥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자리좀 내주세요. 그래야 앉죠”
 
“그냥 제 무릎에 앉으십시오. 제일 포근한 자리입니다”
 
미옥은 거부할 아무런 명분을 찾을 수 없었다. 자석에 쇠조각이 끌리듯 그냥 사뿐히 가남의 무릎에 앉았다. 술기운 때문에는 절대 아니었다. 가남에게 홀리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오기 비슷한 게 미옥을 휘젓고 있었다.
 
미옥은 남자의 무릎이 이렇게 포근하고 따뜻한 줄 몰랐다. 가남은 미옥의 허리를 오른손으로 꼭 휘감고 왼손으로는 미옥의 뺨을 어루만지며 키스를 퍼부었다. 미옥은 볼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도 느꼈다. 가남의 왼손이 미옥의 몸을 점점 더듬어 내려올 때마다 한 단계씩 미옥은 몸이 더 뜨거워지는 것을 알았다.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더 이상 수도 참을 수 없었다. 한증막에 온 것처럼 뜨거워졌을 때 미옥은 가남의 왼손이 벌써 자신의 바지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을 알았다. 가남의 왼손은 탱고리듬이었다. 미옥은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미옥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강물은 이미 황금색을 지나 온통 핏물이었다. 어두워지자 수상스키가 멈추었다. 강물은 잔잔해지며 찰락찰락 물소리만 뱃전에서 났다. 저 멀리 한쌍의 연인들이 배를 타고 있었다. 그때 가랑잎 하나가 두 사람의 머리 사이로 떨어졌다. 가랑잎 때문에 조그맣게 놀란 미옥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면서 화들짝 놀랐다. 자신의 손이 어느새 가남의 다리 사이를 헤집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둘은 오래된 애인처럼 팔짱을 끼고 걷다가 모텔 이름이 멋있어서 들어왔다. 한 이십 분 걸었는데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가남도 아무 말 안 하고 미옥도 아무 말 안 하는 것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둘은 팔짱에 힘을 주는 그 강약으로만 의사가 다 통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가남이 말을 안 하고 묵묵히 걷는 것이 미옥에게 편한 것으로 보아 둘은 그런 면에서 서로 비슷하다고 여겼다. 사돈에 팔촌이라도 끌여들여 서로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있다는 것으로 둘이 가깝다고 여기는 인심인 까닭에 둘은 열심히 공통점을 찾고 있는 중이다. 한바탕 흔들리는 배 위에서 치른 즐거운 일이 둘을 아주 가깝게 만들었기에 <숲속의 궁전> 이란 모텔을 보았을 때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의 얼굴을 웃으며 쳐다보았다. 가남이 미옥의 팔에 힘을 주었다. 미옥이 또한 팔에 힘을 주어 답을 했다.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가남의 팔에 매달린 검정비닐봉지 안에서 깡통맥주와 새우깡이 바스락거리며 달그락거리며 화답을 했다. 숲속의 궁전은 정말로 숲속에 있었다. 차도에서 한 오분 걸어 들어간 산자락에 포옥 파묻힐 듯이 깊숙한 숲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층건물인데 정면만 주차장이 있고 트였으며 건물의 삼면이 모두 숲에 쌓여 있었다. 모텔 색깔도 진한 초록이었다. 맨 위층 방을 달라는 가남의 말투로 보아 가남이 이런 곳에 자주 들렀을 것이라고 미옥은 추측했다. 가남이 바람둥이든 아니든 미옥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미옥도 사실은 이런 곳에 가끔은 드나들었다. 준태와 여러 번 드나들었다. 남편과 별거한 지 오년쯤 되었을 때 만난 종원이라는 사람과도 자주 드나들었다. 이런 모텔에는 처음 드나들 때가 쑥스럽고 챙피하지만 몇 번 드나들면 그 짓도 이력이 붙어 태연자약해진다. 처음에는 남자 뒤에 떨어져서 쭈삣거리며 끌려가는 송아지처럼 들어가지만 나중에는 남자 팔짱을 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간다. 가남은 자기 팔을 끼며 태연히 따라 들어오는 미옥을 보면서 꽤 맘에 들어 했다. 화끈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내숭이 없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여자의 내숭은 지나치지 않을 때에는 양념처럼 산뜻하고 감칠 맛 나지만 너무 심할 때에는 짜증이 나고 남자의 자존심도 상하게 된다. 좀 오래된 듯한 모텔이지만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니 도배를 새로 해서 산뜻하였다.
 
미옥은 침대에 앉으며 재잘거렸다.
 
“어머 어쩜 숲속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네요”
 
달랑 두쪽
죽는날까지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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