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최우석
처녀가 뒷뜰에서 절구를 찧는다.
절구 - 그거 참 묘한 이치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절구통은 여성을 절구공이는 남성을 상징한다. 총각이 잽싸게 뒤로 가서 치마를 들고 고이춤을 대충 내린 뒤 급하게 일을 보고 있다.
어머 안 돼요, 왜 이러세요
주인 보면 난리 나요
가만 있어 지금 아무도 없어
그런데 돌아서거나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다. 절구통을 부여잡고 있다. 이 자세는 여자가 협조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옛날 처녀 총각들의 사랑이 아름답다. 요즘 처녀들 같았으면 절구공이를 들고 총각을 팰려고 덤볐을까?
역시 암탉은 찧어 놓은 곡식을 열심히 쪼아먹고 있다. 수탉만 뭐라도 배울까 하고 열심히 보고 있다. 숫놈들이란 조물주가 비슷하게 만들었다. 여자들의 내숭이나 새침과 비슷하다. 병아리와 수탉은 열심히 구경을 하고 있다. 절구질은 무엇을 찧어 알곡을 만드는 기구이다. 먹을 수 없던 것이 바로 조리할 수 있는 재료로 바뀐다. 사랑의 절구질도 마찬가지이다. 바구니 가득 알곡이 쌓이듯 사랑의 절구질을 열심히 하면 생산적인 무엇인가가 생긴다.
이렇게 짜릿하게 일을 치루고는 둘은 또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 떼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할 것이다. 이 평화스러운 장면에 정제 최우석은 병아리 세 마리를 등장시키고 있다. 이 두 남녀도 마음이 맞으면 얼마 안 있어 가정을 이루고 새끼를 셋은 낳겠지. 이런 사랑놀음에 죄책감이나 후회나 책임 자학은 뒤따르지 않는다. 아주 건강하고 일상적인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우스개소리에 흔히 수탉이 암탉을 올라타는 걸 보고 춘정이 동한 남정네가 여자를 찾는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위상이 뒤바뀔 것 같다. 구경을 다 마친 수탉이 암닭을 올라 탈 것 같다. 기둥 두 개와 바구니 두 개도 상징적이다. 절구와 공이도 상징적이다. 역시 걸작이다. 좆도 추하게 보이지 않고 건강하고 해학적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순결서약식이 있다고 한다. 뭔가 잘못되는 것 같다. 과연 누가 어떤 이유로 순결을 강요하는가?알기는 다 알면서 참으라는 말인가? 아니면 아예 눈 감고 귀 막고 모르란 말인가? 성이란 아주 독특한 체험이고 문화라서 자기 스스로 알기도 힘들거니와 거기에서 어떤 철학이나 가치체계를 세우는 것은 더 힘들다.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에게 <성은 더럽고 위험하니까 순결하라>할까? <성은 무서운 거니까 결혼까지는 무조건 지켜라> 이럴까? 성년이 될 때까지 순결을 지키라는 말인가 아님 결혼 때까지인가? 대충 분위기로 봐서 결혼까지인 것 같다. 그럴 경우 결혼을 잘 한 경우에만 이 논리가 성립된다.
그런데 어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아는가? 다른 면으로는 멀쩡한 사람도 성적으로는 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겉으로는 아무리 보고 이야기 하고 사귀어도 모른다. 점잖은 신사였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변태더라. 성적으로 불일치더라. 아주 야비하더라. 성격의 고착이 있어서 아기 같더라. 새디스트더라. 과연 이럴 때 누가 순결을 책임지랴?
나는 말한다. 처녀 총각들이여. 자주 만나고 사귀고 마음을 다 알 것 같으면 그 다음은 서로 몸을 탐구하라. 순결은 그때 가서는 헌신짝처럼 차버리라. 순결이 당신들 처녀 총각의 결혼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모름지기 처녀 총각들은 상대의 몸과 마음과 속궁합이라는 성적일치와 성에 관련된 상대의 모든 걸 알고 서로가 맞출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궁리한 다음에 결혼할지어다.
순결은 그 다음에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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