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이 좆에게 물을 주고 있다. 화초를 정성들여 가꾸듯 줄줄이 늘어선 좆에게 잘 자라거라 깔축없이 잘 자라야지 하면서 물을 주고 있다.
여인은 좆을 키우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양육이고 달리 이야기하면 사육이다.
흔히들 말한다. 남자가 여자를 성적으로 억압한다고. 그러나 긴 세월 살다 보면 남자들은 느낀다. 세월은 여자편이라는 것을. 여자를 그렇게 만든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 스스로인데 남자에게 화살을 돌리면 여자 스스로는 좀 편해지나 보다.
하기야 여자는 세월과 친하다. 보다 덜 친한 남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편할 것이다. 나는 여자에게 길들여지는 것을 죽음처럼 싫어한다. 그 여자가 애인이건 동료건 어머니건 아내건 마찬가지이다.
난 세치 좆을 휘두르며 부르짖고 싶다.
날 길들이지 마라.
날 당신의 입맛대로 가꾸지 마라.
나는 21세기 지금에, 여자들에게 길들여지는 숱한 좆을 본다. 잠깐 동안 일신의 정치적 영달을 위하여 잠깐 동안 보여지는 화려한 갈채를 위하여 좆도 모르면서 탱자탱자 하는 얼치기 사내들을 본다.
난 수억대 일의 경쟁을 뚫고 탄생했으며 열 달 동안 징글징글하게 여성호르몬 속에서 이 악물고 버티다가 드디어 태어난 하나의 사내이다. 누구의 말처럼 덜 떨어진 남성우월주의자도 가부장제도 찬양자도 아니다.
나 이 한 사내. 당신들이 갓난아이 때 키워 온 것처럼 그냥 한 사내로써 사내의 길을 가게 해 다오. 나 비록 뻔데기에 잔뜩 주눅 든 우멍거지일망정 좆의 기능으로가 아닌, 불알의 알성을 간직하고 싶은 한 사내이다.
비록 수염 깎고 얌전하게 세속에 물들어갈망정 불알 두 쪽만은 탱탱거리는 사내로 살고 싶다. 제발 날 길들이지 마라. 내가 나답게 살고, 네가 너답게 사는 길만이 우리가 함께 어우러지며 같이 사는 길이지 좆을 길들여 뭣에 쓰려고 정성들여 물을 주느뇨.
난 좆 찬양자가 아니다.
다만 잃어가는 알성의 회복을 부르짖는 사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