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friends with benefits를 보았는가? 이 영화를 보았다면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눈치 챌 것이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밀라 쿠니스 주연으로 2011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섹스하는 친구사이가 가능할까를 관객에게 물어본다. 영화에서 보면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밀라 쿠니스는 섹스를 하는 친구 사이로 한참을 지낸다. 그러다 서로를 섹스 이상으로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섹스를 하는 친구 사이에서 섹스를 하는 연인관계로 발전(?)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우리가 소위 ‘섹스 파트너’라고 이야기 한다. 연인관계도 친구사이도 아닌 것이, 뭐라고 딱히 정의할 수 없지만 섹스를 하는 그런 관계를 섹스 파트너라고 한다. 영화에서도 저스틴과 밀라는 섹스를 하는 관계로, 말로는 친구이지만 조금 애매한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 영화에서도 그 둘은 자신들의 관계를 계속 헷갈려 한다. 그럼 여기서 독자에게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섹스를 하는 친구 사이는 가능할까?
섹스를 하는 친구사이. 나로서는 부럽다. 상상해보자. 어느 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다. 왁자지껄 놀다보니 벌써 새벽 세시, 앞에 놓인 술병의 개수도 가물가물할 만큼 술이 들어갔다. 달아오르던 찰나 옆 테이블의 lady에게 눈길이 가기 시작한다. 용기를 내어 다가간다. 불쑥 선 가운데를 억지로 누르고 조금은 당돌하게, 조금은 부끄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어 본다. “......”. 그래도 용기는 냈다.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이번에는 저쪽 table의 lady가 눈에 들어오길 시작한다. 몇 번의 반복된 작업이 이젠 지친다. 하지만 내 앞에 나랑 섹스를 하는 친구가 있다면 어떨까? 왁자지껄 놀다 옆 테이블의 lady에게 눈길이 가기 전에, 그 lady에게 다가가 차이기 전에, 이 모든 수고로움을 덜어줄 친구가 앞에 앉아 있다면 이 얼마나 황홀하고 감개무량한가.
그럼 다시 영화이야기로 돌아가자. 영화의 주인공들은 결국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섹스만 하는 친구관계에서 섹스를 하는 사랑하는 연인 관계로 바뀐다. 그렇다면 섹스를 하면 사랑 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아님 섹스만 하는 친구관계도 가능한 것인가? 혹여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한번 떠올려 보자.
심리학자이자 철학자로 저명한 프로이트는 성에 대한 성찰 과정에서 사랑은 오직 성적 본능 표현 또는 승화이기에, 성적 욕망을 생물의 유기체적 가려움이라 표현했다. 그러니까 섹스는 그 가려움을 긁는 과정이라고 이야기라는 것이다. 결코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는 또 그의 책(성 이론에 대한 세 가지 에세이)에서 성적 충동은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며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늘 의식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어린아이조차 섹스를 생각한다는 그의 이론은 섹스가 사랑의 결과물이 아닌 본능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섹스만 하는 친구 관계는 가능하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슬람의 시인인 루미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프로이트의 주장에 반박을 해왔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사랑을 하면 섹스를 하는 것인가, 섹스를 하면 사랑하게 되는 것인가? 아님 섹스는 단순한 욕망일 뿐, 사랑과는 다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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