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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내 인생 가장 나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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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인 하프 위크> 중

고딩때였다.
이미 이 영화에 대한 소문은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문제는 단 하나, 어떻게 보느냐였다. '당신의 자녀가 이 영화를 보고 생길 문제를 책임질 수 없습니다'라는 포스터 카피문구가 엄청난 흥행 성공을 가져다 준 '보디히트(Body Heat,1981)' 이후로 가장 쇼킹한 뉴스, 영화가 너무 야해서 최초로 극장 입구에서 주민등록증 검사를 실시한다는 보도는 이제 막 2차 성징이 진행된 아이들의 호기심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단짝 친구와 극장가 오락실로 향하던 나에게 '녹슨 철문'이 눈에 밟혔다. 그 문으로 극장에 들어가다 붙잡힌 아이들은 간판 그리는 아저씨가 옷을 벗기고 고추에 페인트를 바른다는 둥, 온 몸에 페인트를 바른 어떤 아이는 피부가 숨을 못 쉬어서 죽었다는 둥 별별 해괴한 괴소문으로 유명했던 바로 그 철문.

하필 그 극장의 뒷문이, 그날 너무나도 당당하게 입을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아찔한 망설임을 정리하기도 전에 이미 문을 향해 냅다 뛰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야, 안돼!'를 외치며 친구를 잡으러 뛰어갔다.
정말 첨엔 친구를 잡기 위해서였는데... 어느새 나는 극장의 어둠 안에 들어와 버렸다.
 
영화는 이미 상영중이었고 불안한 더듬거림으로 어둠에 적응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킴 베이싱어

눈부시게 흩어진 황금빛 머리카락, 녹아 버릴 듯한 매력을 내뿜던 중성적인 턱선, 그 신비하고 깊어 보이는 퇴폐미 가득한 눈빛. 그녀의 치명적인 자태에 가뜩이나 불안한 심박수는 급상승했고 이내 들켜버릴 듯 큰 소리를 울리며 뛰고 있었다. 나 어떡해...
 
영화는 곧 꿈에 그리던 민망한 장면들로 이어졌다. 슬라이드 화면을 보던 베이싱어가 갑자기 이상야릇한 눈빛이 되더니 한 쪽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사타구니에 한 손을, 블라우스 속으론 나머지 한 손을 넣고 몸을 비틀던...
(그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 난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분명 난 느꼈다. 어린 내 몸은 뜨거웠다...)
 

이윽고 그 유명한 냉장고 앞에서의 페팅쇼.
 
그녀의 두 눈을 가리고 얼음을 입에 물고는 달아오른 몸을 훓어 내리던 미키루크의 섬세한 손가락과 입술. (우린 지금과 달리 그가 한때 얼마나 섹시한 남자였던가를 알고 있다) 남자의 커다란 펜트하우스에서 벌어지는 SM플레이, 쏟아지는 역광의 빗속에서 나누던 두 연인의 너무나, 지독히 관능적인 정사.
 
 
그랬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백주대낮에 아이들이 절대로 보아서는 안되는, 잔인할 정도로 '나쁜 영화'였던 거였다. 영화는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충격적이었고 그 후 소년에겐 자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내 인생 최초이자, 가장 섹시한 에로 영화는 그렇게 터질 것 같은 심장박동 소리와 열기와 함께 달뜬 사춘기의 가슴에 기스를 내며 지워지지 않는 명징한 문신을 남겼다.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을 때, 암암리에 나와 같은 은밀한 추억을 공유하던 사람들의 열광적인 희망에 답하듯 영화는 이화예술 극장에서 단관으로 재개봉되었고, 난 뒷문이 아닌 당당히 정문을 통해 극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시각에는 나와 더불어 몇몇의 남자가 다소 뻘쭘이 객석에 앉아 있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여대생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마치 단체관람이라도 온듯.
 
또 다른 떨림... 영화는 몇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숨막힐 듯 자극적이었고,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극장 안은 침묵으로 일관됐다. 지독한 열기와 안타까울 정도의 조심스런 호흡소리 만이 가득했던 그 공기...  그때 난 처음 알았다. 여자들도 이런 영화를 보면 나처럼 숨이 거칠어지고 얼굴이 달아 오를 수 있다는 걸.

세월이 흘러...이제 그 영화는 뻔뻔하게도 내 책장 한 켠에 DVD로 당당히 꽂혀있다. 그리고 난 아무때나, 누구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꺼내 볼 수 있다. 그런 나이가 되었고 그만큼 심장은 무뎌졌다. 하지만 가끔씩... 그 악마의 유혹 같던 극장의 녹슨 철문과 훔쳐보기의 가슴 떨림... 그리고 거기서 숨 죽이며 보았던,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너무도 아름다웠던 섹스... 그 짜릿했던 기억이 요즘엔 가끔씩...간절히 그리워진다.

나이를 먹고 키가 자라고 몸무게가 늘면서, 세월과 맞바꿔버린 그 심장들, 그 불안들, 그 떨림들... 혹시 지금의 극장들 어딘가에도 뒷문이 있을지도 몰라.
 
 
비오기 전,후의 영화 속 그 잿빛 하늘들. 그런 날들엔, 미키루크와 킴 베이싱어처럼 나도 뜨겁게 장난치고 싶다. 폭우 속에서 할퀴고 물어뜯듯 살을 부비는 가슴이 훅 달아오른다. 불량식품같은 영화, 나인 하프 위크(Nine 1/2 Weeks). 내 인생 가장 나쁜 영화.
 
하지만 지울 수 없어. 유턴하고 싶은...
Definetly, maybe...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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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ara 2016-11-02 21:28:16
ㅎ 오래전에  썼던 글이 다시 이렇게 올라오다니
감사하네요.^^
jj2535/ 글 멋지시네요. 요즘은 안쓰시나요? 자주 뵐게요.~
perara/ 감사합니다. 눈팅만 하고 있었는데 님 덕에 용기를 내어서 글을 좀 올려야 겠네요. ^^
짐승녀 2014-08-08 22:53:17
글 좋네요ㅎㅎ 영화도 좋을 것 같아요! 봐야겠어요~~
귀똘/ 아직 안 보셨다면, 꼭 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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