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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요리] 원나잇 스탠드 - 절박한 이들을 위한 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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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나잇스탠드]
 
최초의 원나잇 스탠드가 어땠는지 말씀해 주세요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는가? '첫사랑 얘기 좀 해 주세요.'라든가, '첫키스는 누구랑 했어요?' 라면 몰라도, 아니 십분 양보해 엠티 가서 벌어지는 유치한 진실게임 덕분에 '첫경험은?'까지는 어떻게 한번이라도 들어보고 지나갈 수 있었겠지만 '첫 원나잇 스탠드'는 좀 다르다. 이런 건 남로당 채팅방이나 아예 원나잇 스탠드를 목적으로 만난 이들이 겸연쩍은 시간을 좀 쪼개볼 양으로 나눌 수 있는 대화지 다른 동네서는 쉽게 꺼낼 수 조차 없는 말에 속한다.

다른 동네에서는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사람에게 그다지 호감을 느끼지도 않을 뿐 더러, 잘못하면 '악의 축'으로까지 오해받을 수도 있다.

'취미가 뭐에요?'

'저요? 원나잇 스탠드요.'

소개팅에 나가 눈을 반짝거리며 이렇게라도 대답해보라. 상대방 역시 눈을 반짝거리며 '어머, 참 좋은 취미를 가지셨군요.' 라든가 혹은 '그거 할 만 한가요?' 라고 호기심을 드러낼까? 화장실 간다고 나가서는 안 돌아오던지, 혹은 바로 입맛을 다시며 '노는 사람' 취급을 하던지, 둘 중 하나 아닐까?

이 사회가 원나잇 스탠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사실 고울 수도 없다. 곱기를 바라는 것 자체도 우스운 일이다. 그리고 뭐 안 고와도 상관은 없다. 고운 시선 받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연말에 상 타자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니까.

그렇다고, 그럼 대체 왜 했느냐고 묻는다면 이 글이 사뭇 우스워 질 것이다. 차라리 어떻게 하느냐고 방법을 묻는다면 교육적 이기라도 하지, 왜 했느냐는 질문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어쩔 수 없어서 했어요.' '호기심에 한번 해 봤어요.' '누나가 시켜서 했어요.' 온갖 대답을 들이대더라도 결국 본질적인 대답은 한 가지 뿐일테니까.

'하고 싶어서 했어요.'
 


알고 지내던 선배라든가, 가끔 술자리에서 어울리던 사람, 몇 달 간 채팅과 사진교환, 전화통화 등으로 마음을 주고받은 대상은 냉정하고 엄밀한 의미의 '원나잇 스탠드 상대'라고 하기 어렵다. (이거 보기보다 꽤 까다로운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앞에서 열거한 상황은 원나잇 스탠드라기 보다는 '그 사람과의 첫 섹스'에 가깝다.

원나잇 스탠드의 조건에 맞추기 위해서는 일단 처음 만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다음, 상대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고 다시는 만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냉정한 의미의 원나잇 스탠드의 조건이다. 사실 굳이 냉정해 질 필요도 없고 이 기준 자체가 내가 방금 정한 것이기 때문에 객관성도 없다.(사실은 조건 따위를 만들 필요도 없지.) 하지만 이렇게 정해 놓고 나니 어쩐지 비장한 감이 느껴지지 않은가? (아님 말고)

내 최초의 원나잇 스탠드 상대는 회계사였다. 사실 그것 말고는 떠오르는게 아무것도 없다. 그의 얼굴도 이름도 전혀 생각나질 않는다. 그건 아마 그 남자도 마찬가질 거라 생각한다.

그날은 옛애인의 결혼식이었다. 5월이었고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그가 결혼한다는 사실은 이미 수개월 전에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날은 아침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내 무거움의 대상은 그가 결혼을 한다는 사실보다는, 그 사실로 불거진 내 마음,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의 꼬락서니였다.

결혼식에 교련복을 입고 나타나 호각을 불어댈 생각은 결코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 남자가 결혼식을 끝낸 뒤 깡통을 매달고 거리를 질주하는 내내 집구석에 처박혀 청승을 떨고 있다는 것도 서글펐다. 또 그렇다고 일부러 약속을 만들어 친구들과 웃고 떠들거나 카드를 긁어대며 쇼핑을 하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후가 되면서 우울함이 극에 치닫게 되는데, 그때 문득 낯선 남자와의 섹스를 떠올리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이고 구체적이며 확고부동한 섹스... 이런 표현이 있을 리도 없지만, 그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목적은 대충 이러했다.

나는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전화번호부책을 뒤질 수는 없었기에 일단 채팅 사이트에 들어가 사람을 물색했다. 긴 말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들이대기에는 위험부담이 없지 않았다. 다행인지 나는 겁이 없는 편이었고, 인복(?)이 있다고 믿는 편이었다. 특히 사람을 좀 믿었다. 게다가 혹시 나쁜 사람을 만나면 나도 같이 나빠지면 그만이고, 이상한 사람이 나오면 나도 이상한 척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세상에 나보다 나쁘고 나보다 이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 두려움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 회계사는 대여섯 명의 후보를 거쳐 낙첨된 사람이었다. 일단 대화가 좀 통했고 나이가 좀 많았고 성격이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그가 회계사가 아니라 마약거래상이나 밀수범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회계사라고 믿는 편이 나한테도 편했다.

낯선 남자를 집안에 들인다는 것과 낯선 남자와 모텔에 가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을까를 생각해 보니 집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 남자에게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남자는 내가 집으로 오라고 하니 좀 놀랐다. 사실은 그 사람 역시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일요일 오후에 콘돔을 사들고 집으로 오라고 하는 여자란 남자에게도 당연히 위협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단도직입적이고 구체적이며 확고부동한 섹스'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남자를 배웅하러 나갔다. 이미 밤이 시작되었고 하늘에는 인공위성인지 별인지가 몇 개 사뿐이 걸터앉아 있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그것은 다분히 남자의 의도였고 나 역시 암묵적 동의 하에 마치 연인인 것처럼 행세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전화번호를 저장하지도 않았고 눌러보지도 않았으며, 떠올리지도 않았다. 혹시 앞으로 어디선가 마주친다 하더라도 알아볼 수도 없을 것이다. 3년이 지났으니 그는 아마 결혼을 했을 것 같다. 아이도 하나쯤 낳았겠지. 어쩌면 어느 공원이나 대형마트에서 스치듯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그 남자 자체는 내 인생에 어떤 의미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 남자와의 짧은 섹스는, 의미를 그것도 분명한 의미를 남겨 주었다. 아니 그것은 내 인생에서 최초로 시도한 원나잇 스탠드가 남긴, 조촐하지만 단도직입적이고 구체적이며 확고부동한 의미라고 하는게 더 맞는 말이겠다.
  


그때 내가 떨쳐 버리고 싶었던 것은 사랑에서 파생된 어떤 것들이었던 것 같다.

영원이라고 믿었던 어떤 감정들,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들, 너는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시간과 대상, 우리는 다르다고, 이건 정말 중요한 거라고, 사소하고 하찮지 않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모든 감정들... 그것들을 좀 비웃고 싶었다. 낯선 남자와의 섹스를 시도한 그 '딴엔 용기'로 인해, 나는 지리멸렬하게 매달리고 있던 내 안의 낡은 감정들을 향해 스스로 침을 뱉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조금, 변한 것 같기도 하다.

사랑하는 대상과 나누는 섹스와 낯선 타인과의 섹스 - 어느 것이 더 우위라고 생각하는 방식의 전환, 섹스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를 거둔 대신, 몸에 대한 솔직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생각의 전환이 이뤄졌다.

그 뒤로 내 사랑이 혹은 연애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첫 원나잇 스탠드'는 내게 해열제 같은 역할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영화 [원나잇스탠드]
 
영화 원나잇 스탠드
 
낯선 도시로 출장을 떠난 남자와 여자가 있다. 우연한 기회로 통성명을 하게 되고 어찌어찌하다보니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 두 사람. 서로에 대한 호감을 숨긴 채 타인이 주는 어슴프레한 자극을 즐기던 두 사람은 늦은 밤 으슥한 골목에서 강도를 만나게 된다. 강도에게 잡힌 여자는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게 되고, 운이 좋아 빠져 나온 뒤에도 두려움 때문에 잠들지 못해 남자를 찾아온다.

<원나잇 스탠드>는 두 사람이 어떻게 원나잇 스탠드를 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 뒤, 그 하룻밤의 열정이 두 사람의 인생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끝까지 따라가 준다.

이 영화의 결말은 재밌게도 ‘원나잇 스탠드로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 이렇게 정리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경험한 '원나잇 스탠드'와는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주제마저도 우연한 스침보다는 운명적 인연이란 말에 더 걸맞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영화의 결론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나는 '첫 원나잇 스탠드'의 공식 하나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강도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만남은 섹스로 이어지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강도로 인해 그들은 공포를 느꼈고 그것은 냉정하게 유지되고 있던 감정들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영화 <감각의 제국>이 보여주듯,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섹스를 원하게 된다. 주인공 맥스와 카렌이 느낀 것이 죽음의 공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은 그것에 가까운 극도의 공포를 경험했고 그것이 서로를 끌어안게 되는데 크나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사실이다. 내가 찾아낸 첫 원나잇 스탠드의 공식은 바로 '절박함'이었다.

'에이, 절박은 무슨...'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거 순 따먹는 재미로', '그저 콩 점수나 좀 올려보려고' 이런 이유들을 떠올리며 흐믓하게 웃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또 한편에서 우리 인생에 찾아온 공허의 공포, 집착의 공포, 쓴 사랑의 공포, 고독의 공포, 무료함의 공포들을 떠올리며 공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왜 했느냐고 물어볼 생각은 없다. 할 만하니까 했겠지. 그렇게 말하고 싶을 뿐이다.
 


영화 말미에 맥스와 아내, 카렌과 남편, 네 사람은 나란히 초밥을 먹으러 간다. 그리고 식당을 나온 네 사람은 원래 왔던 짝을 바꿔서 집으로 돌아간다. 알고보니 맥스는 카렌과 재혼하고 맥스의 아내는 카렌의 남편과 재혼했다는 콩가루식 결론이 이 영화의 나름대로 '반전'이었다. 이 반전에 대해 뭐라고 할 말은 없다. 할 만하니까 했겠지.

생선은 벗겨놓고 저며 놔도 단번에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다. 색깔이 다르고 씹는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나잇 스탠드의 경험이 많다고 해서 인생이 마모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공허해지는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그 공허함은 배부름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과식은 여러모로 해롭다. 아무리 초밥이라 해도 말이다.
 
초밥

재료

생선재료 - 냉동참치50g 소금1큰술,
초밥재료 - 쌀3컵, 다시마 약간, 청주1큰술, 물 3컵
배합초 - 식초4큰술, 설탕2큰술, 소금1큰술
 
이렇게 만드세요

1. 밥 짖기 1시간 전에 쌀을 씻어서 건져 놓았다가 같은 양의 물을 붓고 청주 1큰술과 다시마를 넣어 밥을 짓는다.
2. 참치는 도톰하게 저며서 썬다.
3. 밥이 끓기 시작하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뜸을 들인 후 넓은 그릇에 펴서 배합초를 넣고 나무 주걱으로 가볍게 섞은 다음 젖은 행주를 덮어둔다.
4. 적당한 크기로 초밥을 뭉쳐 와사비를 약간 바른 후 손질해둔 참치를 얹고 모양을 다듬는다.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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