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아노]

 
영화 '피아노'를 보았는지? 홀리헌터 주연의 '피아노'. 스토리는 대략 이래.
 
계약 결혼을 한, 언어 장애 여자가 있어. 말을 할 수 없는 그녀. 남편을 포함한 온 세상은 그녀의 꿈과 자유에 관심이 없어. 그녀는 사지가 묶인 거나 다름없는 자기의 막막한 현실에서, 서서히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게 되지. 자기의 꿈과 정체성과 자유를 의미하는 피아노를 치며...
 
난 지금도 말이야, 이 영화를 떠올리면 사람들이 그녀로 하여금 피아노를 못 치게 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고 피아노를 배로 싣고 가 바다에 떨어뜨리는 중에 그 피아노에 연결된 밧줄에 그녀의 발이 걸려 그녀가 피아노와 함께 물속에 빠졌는데, 물속에 빠진 그녀가 바로 버둥거리며 헤어 나오려 하지 않고, 그 물속에서 가만히 눈을 뜨고 정면을 응시하던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 그 눈빛.
 
허우적거리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그녀는 눈을 뜨고 자기의 생이 변화해 가는 것을 지켜봐.
 
삶에서... 죽음으로... 혹은 정체된 삶에서 변화된 상태로... 그녀는 아마 생각했겠지? 이대로 죽음에 이끌려 갈 것이냐, 그러지 않을 것이냐...
 
태연한 그녀의 표정을 보면, 죽음에 이끌려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했어. 그녀는 자기의 운명을 극복할 만한 힘이 없었고 환경은 온통 좌절할 것 투성이었거든.
 
그러나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결심하는 듯 보여. 그녀는 발을 감은 밧줄을 떨치고 상승해. 위로... 위로...
 
스무 살이 채 안된 나는 삶도 미래도 하나도 모르면서도, 웬일인지 그 장면을 보고 난 후에, 쿵쾅거려서 목구멍까지 차올라 기어 나올 것 같은 심장의 고동을 느꼈어. 한참을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쥐고 커피를 마셨지.
 
짐작이라도 했던 걸까? 어른이 되면 누구나 자기의 주위를 밧줄처럼 묶고 있는 어떤 케케묵은 것들을, 다리에 걸린 밧줄 같은 그것들을 애써 떨치고 상승하여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에이 설마, 그냥 막연한 예감이었겠지. 그러나 그녀가 운명을 헤쳐 나가려는 듯 단호하고 용기 있게 밧줄을 푸는 장면은 전율하기에 충분했거든.
 
그로부터 10년도 더 흐른 어느 날, 난 퇴근하기 전, 직장에 불을 끄고 한참을 앉아 있어. 바다 속에서 눈을 뜨던 그녀처럼 말이야.
 
밧줄을 풀고 올라갈 준비를 하는 그녀처럼 말이지.
 
 
글쓴이ㅣjj2535
원문보기▶ https://goo.gl/5PSu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