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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소개팅에서 모텔까지 간 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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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류멸망보고서>
 
7년의 짝사랑이 끝났다. 지금 생각해봐도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공부 잘하고 예쁜 연상녀에 대한 동경이었나 모를 정도로 미숙했고 막연한 그러나 많이 아팠지만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되는 사랑의 끝은 갓 스무 살 대학생에게는 많은 희망을 주었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여러 동기에게 대시를 했지만 어린 남자의 소심함과 쓸데없는 자존심, 여자에 대해 글로 배운 지식은 나를 혼자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한 학기가 지나가고 그 당시 인기리에 방송하던 아이리스를 보는 중 친한 여자애 한 명에게 전화가 온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같이 교회를 다니며 신앙심을 길러왔던 우리지만 성인이 된 후엔 서로 세상일이 재미있어 근근이 안부를 묻던 친구는 갑자기 소개팅을 제안한다.
 
"우리 과에 1학년 언니 한 명이 있는데 번호 알려줄게. 연락 한번 해봐. 네 사진 보더니 소개해 달래."
 
소개팅을 해 보라는 말은 기뻤으나 내 사진을 봤다는 말을 듣고 주춤거린다. 얼굴은 보통이고 몸은 마르고 키만 컸고 피부는 아직 사춘기인 나를? 번호를 받고 십 분간 어떤 문자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문자를 남겼다. 적당히 호구조사를 하니 나이는 한 살 위고 이름이 특이했다. 천안 산다는 것까지 알고 문자 끝. 그날은 나 혼자 설레발에 소설을 쓰며 잠을 청하지 못했다.
 
꼴에 그래도 자존심이라고 문자는 격일로 2-3통씩 보냈다. 자존심이 아니라 그 때 당시, 여자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에반게리온' 좋아해요? 저는 요즘 '하루히'를 재미있게 봤다능. 이라고 덕밍아웃해서 내 자신을 솔직히 까발리고 진심이 너에게 닿기를! 이라고 하기엔 내겐 너무 용기도 나지 않았고 여차여차 친구 동반해서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둔산동에서 만나기로 했고 나는 그날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구스다운과 올블랙으로 코디를 하고 지갑에는 진짜 저녁만 먹고 헤어질 생각으로 3만원을 들고 나갔다.
 
솔직히 기대는 안 했다. 끼리끼리 논다고 잘생긴 것들은 잘생긴 것끼리, 못난 것들은 못난 것끼리 논다. 주선자는 내 오랜 친구고 그 이유도 끼리끼리다. 그 친구에게 여자 이상 감정은 없었고 나보다 시커멓고 한 덩치를 하던 친구를 보면 나 대신 군대 좀 가 달란 말이 몇 번이고 나왔다.
 
둔산동에 다 와 전화를 하니 룸까페란다. 그때부터 갑자기 긴장이 돼 들어가기 무섭고 침 삼키는 소리가 내 온몸에 전해졌다. 36번 방. 왕자님 같은 종업원의 안내로 문을 여는 순간 박봄을 약간 닮은 통통한 애교 많은 한 여자와 군인 같은 내 친구가 앉아있었다.
 
지금도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밥 먹으러 나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 여자는 내가 한 말에 일일이 웃어줬고 나는 그거에 신나 혼자 떠들기만 했고 만난 지 10분 만에 병신마냥 "누나 예뻐요. 누나 예뻐요."를 연발했다. 밥을 먹고 만난 지 2시간이 되었을 때 시간은 8시. 천안이 집인 그녀에게 내가 매너 있는 남자고 나는 너를 배려하는 세심한 남자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집에 가자 했다. 그러나 그녀 입에서는 모 커뮤니티 형들이 소설로 쓰던 말을 들었다.
 
"술 한 잔 하고 갈래요? 매운 게 먹고 싶네."
 
나는 신라면도 안 먹는 아기 혀 보유자이다. 매운 건 둘째치고 돈도 없는 나는. 이 말을 듣고 한치의 고민도 없이 '네' 라고 대답하고 근처 막걸리 집에 들어갔다. 안주가 나오기 전 주선자는 미리 가고 나는 문자로 돈 많고 착한데 나보다 못생기고 나와 같은 아다인 친구를 불렀다.
 
'나 소개팅 중인데 돈이 없네. 나 3만원만.'
 
그 놈의 3만원. 공대생인 친구는 변호사 합격한 손녀 잔치에 오듯 친구 2명을 더 데려왔고 화장실에서 조우했다 그는 그 당시 신권 5만원 짜리 3장을 건네줬다. '나 돈 이 정도는 필요 없어' 라고 손사래 치자 친구도 '형님들이 그러길 남녀가 단둘이 술을 마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카더라-' 라며 다시 건네 주었다.
 
그때까지 나는 전혀! 그날이 그날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첫 경험은 남녀가 고대하고 그리고 아름답고. 막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날 이후 경험이란 사고와 같다고 경험하며 살고 있다.
 
자리에 앉아 다시 이야기하는데 유학을 갔다 와서 1년을 꿇었고 그로 인한 문화차이 때문에 맘고생이 심하다고 눈물을 훔친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듯 나 역시 그랬냐며 '니 잘못이 아니다!' 라고 어디에서 한 번쯤을 봤을 듯한 글귀로 위로를 했고, 위로가 된다며 고맙단다. 그리고 잠깐 화장실 간다기에 술집 종업원을 불러서 그녀가 요즘 좋아한다던 태양의 나만 바라봐를 5분 후에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화장실 갔다 온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자존심은 없어진 지 오래라 눈도 못 마주치고 땅만 쳐다본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태양노래에 '이거 내가 틀어달라고 한 거야'라고 말하니 고맙다는 말을 하며 환하게 웃는다. 그때서야 내가 눈을 마주치고 어영부영하자 그녀는 왜?라고 여우마냥 나를 떠본다. 그 말에 나는 일생최고의 개드립이자 이게 왜 먹혔는지 아직도 이해 안 되는 '내 이성이랑 본능이 지금 싸우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 내 말에 그녀는 '그럼 지금은 누가 이기고 있는데?' 라며 내 손을 잡았다. 이 기세에 본능이 이겼고 매운 것도 못 먹는 내 혀는 그날로 어른이 되었다.
 
진짜 1시간 동안은 사람 많은 술집에서 키스만 했다. 그러나 주위는 보이지 않았고 1년은 사귄 커플마냥 진하게 키스는 이어갔다. 11시 반. 기차도 끊긴 상황에서 찜질방에 가잖다. 그쪽 지리를 잘 알던 나는 그전까지만 해도 나와 상관없던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모텔이라고 떡하니 서 있는 입간판을 보고 나는 그녀 손을 확 잡았다.
 
"나랑 모텔 가자."
 
 
> 다음 화에서 계속


글쓴이ㅣ이니시
원문보기 http://goo.gl/LnOf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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