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부들의 전쟁>
얼마 전 전 남자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다. 전에 말했던 Boo보다 오래되고, 더 잘 맞고, 더 오래된. 그 무섭다는 '떡정' 때문에 가끔 만나 자기도 하고 데이트도 한 뭐 그런 남자. 그는 나보다 열세 살이 많았다. 스무 살 때 만났으니 당시 그가 33살. 지금 생각해보니 도적놈일세?! 암튼 그가 그때 스물 여섯 살이라고 거짓말했을 때 '아, 조금 노티 나는 26살이구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엄청 동안이었다.
너무 오래돼서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잘 안 나나지만 잊을 수 없는 일화 하나가 있다. 대학 시절 갑자기 휴강이 떠서 집에 갈까 말까 고민을 하며 빈 강의실에 앉아 노트북을 깨작대고 있었다. 그때는 그와 썸을 타던 중이었는데 뜬금없이 그가 전화했다. 썸이라고 해도 그는 직장인, 나는 새내기 대학생. 서로 바빠 데이트는 꿈도 못 꾸던 때다. 그가 전화로 한 말은 이랬다.
"별다방 한번 갈래요?"
그는 순도 101%의 경상도 싸나이, 찰진 대구 사투리를 구사하는 남자였다. 서울에 살지만 사투리를 전혀 고칠 생각이 없다는 남자. 물론 지금도 순도 100%의 대구 사투리를 구사한다. 그때 난 튕긴답시고 이렇게 답했다.
"아뇨, 전 콩다방이 더 좋은데요.."
그는 좀 당황한듯싶었지만 그러면 콩다방을 가자며 학교 앞으로 갈 테니 나오라고 했다. 후에 그가 말했다. 여대생이 좋아할 만한 커피숍은 스타벅스밖에 몰랐고 콩다방이 뭔지 몰라 검색까지 했다고. 애니웨이, 날씨까지 좋아 그가 캠퍼스를 좀 걷고 싶다면서 주차를 하고 콩다방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둘이 걸었다.
봄바람 휘날리므어~ 흩날리는 벛꽃잎이히~ 진짜, 꿈같은 시절까지는 아니고 좋았다. 두근대기도 했고. 그 후에 정식적으로 교제를 시작했다. 그는 항상 우리에게 모자란 건 시간뿐이라며 만날 동안에는 하고 싶은 건 다 말하라고 했다. 나의 모든 페티쉬의 기반을 다진 사람이 이 사람이다. 수트, 아저씨(?), 스피릿 핑거스! 스피릿 핑거스가 뭐냐고? 영화 <브링잇 온>을 보시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는 절대로 손가락을 내 안으로 넣지 않았다. 내 꽃잎을 쓰다듬기만 하고 범하질 않는데도, 숨이 거칠어지고 신음을 내뱉게 만들었다. 나의 꽃잎과 암술에 그의 손끝이 닿을 때면 내 몸은 활처럼 휘었고, 곧이어 그의 머리를 끌어안게 됐다.
그는 모든 게 길었다. 얼굴 빼고. 손발 키 손가락 그리고 그것도 길었다. 굵기는 뭐 평범하지만 참 길었다. 다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닿은 느낌? 뭐 그런 남자였다. 취미로 꽤 수준급의 피아노를 치는 그의 손가락은 언제나 나를 탐닉할 때 '그분'이 오시도록 했고, 행복한 비명에 젖어들게 했다.
그의 빌라에는 검은색 그랜드피아노가 있었다. 언제나 섹스 후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그의 연주를 들어야만 했다. 아 물론, 싫었다는 건 아니고, 그의 널찍한 등이 참으로 섹시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 그랜드 피아노 위에서 커닐링구스를 받아 본 적 있는가? 나무 냄새와 내가 발끝으로 눌러대는 건반, 그리고 차가운 그 감촉.
열 세 살의 나이 차이가 무색할 만큼 그와는 순탄한 연애를 지속했다. 조금 바빴지만 회사생활과 연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와 연애한 지 2년 정도가 흘렀다. 그때쯤 나는 조금씩 바빠졌다. 취업과 대학원 진학. 심각한 고민을 하며 저울질을 하며 민감한 시기였다. 눈이 빠지도록 과제를 하는데 그가 메신저로 대화를 걸었다.
'우리 내일 호텔 가서 식사할까?'
'웬 호텔? 음흉하긴. 보나 마나 룸서비스겠지?' 속으로 생각하며 그러자고 답장을 보냈고, 정장을 입고 오라고 하곤 그는 외근이 있다며 로그아웃을 했다.
다음 날 평소 입지도 않는 정장 원피스를 입고 그를 만났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세련된 복장의 중년 부부와 함께였다. 그는 부모님이라며 부부를 소개했고, 아무 준비도 없이 그의 부모님을 만나게 됐고, 곧이어 그의 청혼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청혼은 거절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고, 더 놀고 싶었다.
청혼을 거절하니 자연스레 그와 이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몇 달 뒤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날은 눈이 왔다. 야작을 하던 중에 혈액에 니코틴이 돌게 하고 싶어 굳이 밖으로 나와 덜덜 떨며 담배를 입에 물던 찰나였다. 학과 건물 앞 가로등 아래 그가 서 있었다. 약간 홀쭉한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그가 손을 어색하게 흔들었다. 뛰어가 안겼다. 헤어졌는데 아직 나에게 딱 맞는 품이었다. 정신없이 그와 차로 뛰어가 입을 맞췄다.
뭐 그리고 근처 모텔에 가서 섹스를 했다. 여전히 잘 맞는듯한 섹스, 부드러운 섹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의 손길에 아득해졌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두 시였다. 그는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서 그를 두고 학교로 돌아갔고 후엔 정기적으로 만나 섹스를 했다.
이건 정말 후회한 건데, 그 정기적으로 만나 섹스한 게 그가 결혼식을 올리기 불과 몇 주 전 까지라는 거다. 나도 나이가 들었고, 그도 나이가 든 게 티가 많이 났지만 여전히 건재했고 잘 맞고 깔끔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의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도 내고 밥도 먹고 왔다. 그에게 인사를 건네던 때, 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난 널 결혼 후에도 만날 거야"
"옘병, 내가. 뭐가 아쉬워서 다 늙어빠진 유부남이랑?"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와의 길고 긴 사랑을 끝맺었다. 사족을 달자면, 선생님 편에 나왔던 그 '남자친구'가 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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