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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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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애의 발견]

 
사람이 연애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가장 좋은 점은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전까지는 불안정했던, 조각조각 나 있던 심리 상태들이 마리를 통해 안정되고 자리 잡혀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하는 성격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고, 사실 내 인생의 모토도 그러했다. 하지만 마리가 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는 사실은 절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와 있으면 다른 잡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으며, 걱정거리가 있다 가도 금세 잊어버렸다.
 
그 덕분인지, 나는 정말 말 그대로 ‘열심히’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적응이 되니까, 일과 공부를 빡세게 병행하는 것도 할 만 한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과 공부 두 가지만으로도 힘들어 허덕이던 내게 연애가 활력소를 주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초반에 나는 정말 많은 종류의 일을 했었는데- 심지어 도시락 공장에서 밥 퍼 담는 일 까지- ,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일의 종류가 딱 세가지로 좁혀졌다. 한국 술집 알바, 일어/한국어 과외선생, 그리고 통/번역. 모두 내 사정에 따라서 시간 조절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어 가능했다. 다만, 술집이나 식당가 불경기가 끝나가는 철이라 사장님이 부르는 경우가 전보다 좀 많아 졌을 뿐.
 
그날은 식당에 조금 특별한 손님들이 왔다. 사장님이 알고 있는 한국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와, 좁은 가게를 순식간에 만석으로 만들었다. 걔 중에는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남자분 한 명도 있었는데, 거의 2미터는 되어 보이는 키에, 장발의 머리를 뒤로 묶어 올린, 스티븐 시걸 형님을 닮은 아저씨였다. 어디 가서 덩치로 꿇려본 적이 없었는데, 그 양반 앞에서는 나도 중학생 같을 지경이었다. 그 사람을 둘러 싸고 한국 아줌마들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는 형상을 슬쩍 눈으로 보며, 나는 목례를 하고 메뉴판을 건냈다.
 
“야야. 이리와 봐.”
 
사장님이 나를 주방 쪽으로 불렀다. 나는 내가 준 메뉴도 슬쩍 옆으로 치우며 수다에 열중인 아줌마들과 스티븐 시걸을 슬쩍 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왜요? 단체 손님인 것 같은데.”
“손님들 아냐.”
“누군데요? 빚쟁이?”
“뒤질래?”
 
사장님은 스티븐 시걸을 슬쩍 보더니 내게 말했다.
 
“내가 부른 손님들이야. 그냥 대충 우롱차 한 잔 씩 줘.”
“아 넵. 매출에 도움은 안되겠네. 좋다 말았구만 .”
“야야. 저기 머리 긴 사람 보이지?”
“스티븐이요?”
“그게 누군데?”
“아뇨. 아무튼…왜요?”
“저 사람이 일본 한국 왔다 갔다 하면서 사업하는 사람인데, 얼마 전에 신내림을 받았다더라.”
“사업이 아니라 장기 매매하실 것 같은 몽타주인데요?”
“이 자식이……”
“근데 신내림? 무당 같은 건가요?”
“아니 아니. 점쟁이지. 너 막 신 내린 사람이 얼마나 용 한지 알아?”
 
의외로 사장님은 그런 것을 믿으시는 모양이다. 알고 보니 저 시걸 형님은 사장님이 부른 것이었고, 소문을 듣고 점을 보려고 한국 아줌마 들이 우리 식당에 모인 것이다. 저마다 복채랍시고 얼마 씩을 꺼내 내밀며, 시걸 형님의 점괘를 경청하고 있었다. 마치 요즘 방송하는 나는 자연인이다 – 태백산 도인편에 나올 것 같은 포스의 그 형님을, 아줌마들은 마치 이 시대의 지성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집중했다.
 
“저 저런 거 안 믿어요.”
“시끄러. 이게 그렇게 미신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라니까?”
“아니 미신으로 치부는 안 하고……점 보는 심리에 대해 이해도 해요. 우리 엄마도 그러신데요 뭘. 근데 저는 딱히……”
“아오 이 놈의 새끼 진짜 말 더럽게 안 들어. 내가 니 꺼 복채까지 냈으니까 입 샷따 내리고 가서 좀 봐 달라고 해. 얼른.”
“차라리 그 돈을 현금으로 주……”
 
사장님이 프라이팬을 들려고 하자 나는 마지 못해 밖으로 나갔다. 막 신이 내리면 용하다니……그 세계도 오픈빨 같은 것이 있는 건가? 근데 일본 신일까 한국 신일까?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킥킥 대던 나는, 시걸 형님의 근엄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자네는 몇 살이지?”
 
신 내렸으니까 맞춰 보셈. 몇 살이~~~~게? 라고 장난을 치려던 찰나, 주방에서 나를 노려보는 사장님의 눈빛에 마음속 개드립을 접었다. 짙은 화장의 개량한복을 입은 사장님이 더 무속인 같았다. 나는 마지못해 생년월일을 시걸 형님에게 말해주었고, 시걸 형님은 장기매매…아니, 호수와 같은 깊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자네는 일본에 오래 있을 팔자가 아니 구만.”
“아 그래요?”
 
나는 최대한 성의 있게 대답하려고 애를 썼지만, 심드렁한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시걸 형님은 나를 가만히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큰 뜻이 있어서 일본 온 것도 아니고……한국에서 일이 잘 안 풀렸던 모양인데……”
 
어머? 이 양반 봐? 자……잘 찍네?
 
“아버지 쪽이랑 사이가 심하게 틀어져 있네. 미안하지만 다시 좋아질 확률 없어 보이고.”
 
어어? 이 형님 봐? Nice guess.
 
“일본에서도 운이 크게 흥 하진 않을 거 같은데……내 보기엔 학업 마치면 일본에서 조금 있다가 돌아갈 거 같고……”
“형님 저 재물운은 좀 있나요?”
 
나도 모르게 그 아줌마들하고 같은 포즈로 시걸 형님에게 입을 연 내 자신을 보며 화들짝 놀랐고, 주방에서 그것을 보던 사장님이 ‘새끼……저럴 거 면서……’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년에 있어. 엄청난 재물 뭐 이런 거는 아니고. 자네 신분에서는 나름 꽤 많은 돈을 벌겠군.”
“아……저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스타일인데.”
 
내가 시무룩하게 말하자, 시걸 형님은 웃음을 참는 듯 입 주위를 씰룩 거리더니, 다시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에 있으면서 물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면 자네는 크게 튀는 것도, 악재도 없어. 보이는 것은 그 정도. 또 궁금한 거 있나?”
 
많이 물어보면 물어 볼수록 복채가 비싸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물어볼까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어차피 믿지도 않는 거 지금 내 최고 관심사에 대해 물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이 사람이랑은 어떻게 될까요?”
 
주위에서는 어머어머 쟤 연애한대 이러면서 아줌마들이 쑥덕거렸고, 시걸 형님은 한 삼분 정도 나를 그윽히 응시했다. 약간 부담스러워 지기 시작할 때쯤, 그가 내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자네의 마지막 사람은 절대 아닐 거 같아.”

그 날은 마리의 생일이었다. 마리의 생일 날 나는 무엇을 해 줄까 몇 주 전부터 고민을 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으니 그런 쪽 선물을 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예전에 그녀가 좋아하는 옷이나 가방 브랜드를 슬쩍 보고 검색을 해 봤던 적이 있는데, 내 한달 생활비는 그냥 넘어가는 엄청난 고가였다. 마리……너 돈 많이 버는구나.
 
나는 예전에 마리가 지나가는 식으로 이야기 한, 한국 화장품도 써 보고 싶다는 것을 상기해 내고는,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 해서 화장품 세트를 준비했다. 화장품에 대해 잘 모르니 이것 저것 넣다 보니까 그것도 꽤 가격이 나갔지만, 오히려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손발이 퇴갤하는 오그라듬인데, 나는 화장품과 함께 음악도 만들어서 선물했다. 뭐 거창한 작곡 이런 거는 아니지만, 예전에 음악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장난 치던 때가 있어서 그때의 기억을 살려 마리를 위한 노래를 파일로 만들어 USB에 넣었다. 마리가 첫 데이트 때 해 주었듯이, 나도 야경이 보이는 건물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레스토랑에 전화해서 케익도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면 무슨 퓨전 음식 이런 느낌의 레스토랑 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데, 맛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오빠아!”
 
마리는 날 보자 마자 뛰어와서 안겼다. 도대체 무슨 향수인지 물어보고 싶은, 그녀의 시그니쳐 과일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나는 한 손으로 두르고도 남아도는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생일 축하해!”
“고마워 오빠.”
“근데 마리.”
“응?”
“사람들 많은 곳에서 오빠라고 크게 부르지 마. 오해 하잖아.”
 
내 말에 마리는 소리 죽여 웃었다. 이유인 즉슨, 오빠라는 한국어 발음이 일본어의 옷빠이(おっぱい)와 흡사했고, 옷빠이는 여자의 가슴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녀가 나를 보며 크게 “가스으으음!” , “유바아아앙!!!” 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다.
 
“괜찮아. 뭐 어때.”
“아니……사람들이 내 가슴을 자꾸 보잖아.”

내 말에 마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한참이나 웃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고 그녀는 기대에 찬 눈으로 말했다.
 
“오늘은 어디서 뭘 먹을 건데요?”
“응? 아 가보면 알아.”
“많이 기대하고 있는데.”
“아니. 그러지는 말고.”
“싫어. 내 생일인데 엄!청! 기대 해야지.”

나는 부담감에 땀이 났지만, 다행히도 마리는 내가 데려간 그 곳을 매우 좋아해 주었다. 야경이 보이는 고층에 위치한, 그것도 아예 야경 장사를 하는 모양인지 자리 자체도 마주보는 것이 아닌, 창가에 나란히 앉는 형상이었다.
 
“와!!!!”
 
미리 주문한 음식과, 미리 부탁한 케익이 나오자 마리는 밝게 웃으며 좋아했다. 나는 그녀에게 화장품과 USB선물을 내밀었고, 그녀는 정말 가식 없이 좋아해 주었다. 친절한 그녀의 성격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좋은 척을 해 주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 때 당시의 그녀의 표정은 정말 진심이 묻어나는 것 같아 행복했다.
 
둘 다 일이 끝나고 만난 데이트여서, 짧은 시간이 아쉬웠다. 다음에 마리가 휴가를 내고, 나도 수업이 없을 때 같이 하루 종일 데이트하기로 약속하며,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야경을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마리는 내 손을 쓰다듬듯이 만지며 간지럽혔다.
 
마리는 유독 내 손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차린 게 워낙 없으니 손이라도 정 붙이자 뭐 이런 걸까? 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자기는 큰 남자 손이 좋다고 했다. 손에 페티쉬가 있는 스타일 이었는데, 훗날 마리는 의상 페티쉬가 있는 나와 서로 니가 더 변태라며 놀려 댄 적이 있었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토론(?)하는 나는 상대적으로 불리했고, 결국 ‘너는 이름 이니셜 자체가 SM(Saito Marino)이라서 너는 태생적으로 변태다’ 라는 내 무논리 초딩 식 우김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다.  
 
“마리. 혹시 점 같은 거 믿어?”
“점? 글쎄. 딱히 본 적은 없는데……왜?”
“아냐 그냥. 궁금해서.”
“갑자기?”
 
마리가 싱글거리며 물었고, 나는 마지못해 오늘 시걸 형님을 만난 것을 이야기 해 주었다. 마리는 처음 듣는 한국 신내림 점쟁이 이야기에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내 말을 경청했다. 처음 내 과거 몇 개 맞춘 건 그냥 우연일거야~라고 하는 내 말에, 마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진짜 보였을 수도 있잖아. 오빠 과거가. ”
“그런가. 난 잘 모르겠어.”
“또 뭐 물어봤어?”
“음……아니 뭐……내가 지금 여자친구가 있는데 우리는 오래 사귈까요?라고 물었지.”
“그래서? 뭐래? 뭐래?”
 
마리는 잔뜩 기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맞아. 어차피 난 그런 거 믿지도 않는데 뭐 어때. 정말 믿었다면 그녀에게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겠지.
 
“응 너랑 나는 오래오래 무탈하게 잘 사귄대.”
“정말? 그 아저씨가 그랬어?”
“응. 너무 오래 사귀어서 사회적 문제가 생길 정도라더라.”
“뭐야 그게.”
 
마리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지 연신 생글거리며 웃었다. 이건 뭐 선의의 거짓말도 아니고, 그냥 재미삼아 본 건데 뭐 어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고 마리의 마음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리의 양 볼을 쓰다듬었다.
 
내가 아직 그 식당을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마리와의 첫 키스(뽀뽀가 아닌)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그 직원은 굉장히 센스 있게, 가장 건물의 코너 쪽 자리를 우리에게 배정해 주었고, 자리 배치가 창문을 따라 약간 원형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 자리는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서로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다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마리는 눈을 감고 내 목을 끌어안아 주었으며,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불편한 자세로 그 자리에 앉아 키스를 나누었다. 디저트로 나눠 먹은 케익의 달콤한 맛이, 그녀의 입술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었다.
 
마리의 생일, 늦은 저녁에 시작한 데이트는 같이 밥을 먹고, 야경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키스를 한 것이 전부였지만, 서로 바쁜 우리에게는 보석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창가 쪽 코너 그 자리에서, 우리는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의 발자국소리에 집중하며, 몰래 몰래 키스를 하고 서로를 만졌다.
 
당연하게도, 그녀의 집에 바래다 주는 그 길은 너무 아쉬웠다. 나는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그녀의 입술을, 운전을 하면서도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첫키스라 풋풋함은 있었지만, 마리는 매우 능숙하게 내 입술에 키스를 해 주었고, 입술로 느꼈던 짜릿함 때문에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막 시작한 연인의 발화점은 너무나 낮았고, 내 몸은 너무 쉽게 뜨거워졌다.
 
“으음……”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깊게 끌어 안으며 키스를 시작했다. 아까는 눈치 보여서 가만히 놔 두었던 내 손이 마리의 니트 안 쪽으로 거침없이 파고 들었다. 입술처럼 보드라운 그녀의 속살 감촉에 손이 그냥 미끄러져 버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혀로 내 입 안을 긁듯이 간지럽혔다. 내 손이 그녀의 가슴 쪽으로 향했고, 시트에 앉아 있는 마리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손에 잡히는 말랑말랑한 감촉. 크지는 않았지만 손에 딱 잡히는 사이즈였다. 마리는 나중에 가슴이 더 컸으면 좋겠다고 불평한 적이 있었는데, 글래머러스한 가슴을 좋아하는 나도 ‘진심으로 지금도 괜찮아.’ 라고 말을 했을 만큼, 나는 그녀에게 빠져 있었다.
 
마리의 맨션은 골목 끝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사실 9시만 넘어가도 사람들의 통행이 없었다. 나는 아까 만지지 못했던 그녀의 다리와 가슴을 더듬으며, 숨을 할딱 거리는 그녀의 입술에 아낌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하아……”
 
잠시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마리의 뜨거운 숨결이 귓볼을 간지럽혔다. 평소 이미지라면 그녀는 내가 막 더듬기 시작했을 때 웃으면서 ‘안돼’ 라고 할 것 같았는데, 그 날은 내 손길이 어디로 가든 허락을 해 주었다. 내 손은 그저 눈으로만 감상하던 그녀의 다리를 지나, 허벅지 깊숙한 곳까지 저항 없이 누볐고, 그녀는 그저 내 볼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몸을 맡길 뿐이었다. 저녁이라 꽤 쌀쌀한 바람이 불던 때였는데,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달아오른 두 남녀의 체온이 차창을 뿌옇게 만들었다.
 
마리는 아주 작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키스를 할 때 아랫입술을 살짝 깨무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하다가도, 마치 막대 아이스크림을 빨 듯이 입술을 입에 머금고 쪽쪽 빨기도 했다. 그 모습에 나는 몸이 터질듯이 달아올랐고, 하반신이 빳빳해 제대로 몸을 돌리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아앗……”
 
그것은 마리도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그녀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힘겹게 내 팔을 잡았다. 하지만 좁은 차 안에서 언제까지라도 뒤엉켜 있기에는, 자세도 불편했고, 간헐적으로 지나가는 행인들도 신경이 쓰였다. 맞아. 마리는 여기 사는 사람이니까. 내가 불현듯 그 생각을 했을 때, 마리도 동시에 나를 살짝 밀어내며 입술을 떼었다.
 
“오빠. “
“응……응?”
“이럴 줄 몰라서 정리는 못했는데……”
 
양 볼이 빨개져 하얀 얼굴과 대조되는 그녀의 표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야릇함을 느끼며 움찔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집으로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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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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