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권리만큼 이혼할 권리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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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마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결혼생활 10년째로 접어들고 있는 부부가 나와 전국적인 쪽팔림을 감내하며, 위기에 봉착한 그들의 결혼생활을 본궤도에 올려보겠다고 궁상을 떨고 있다.
서로에 대한 불만, 위태로왔던 결혼생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이라는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 위한 그간의 노력들을 피력하며 전문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줄기 구원의 빛을 안겨줄 전문가라고 해봤자, 신성일씨의 바람끼를 잠재우느라 인생을 다바쳤다는 엄앵란 여사의 '여자가 무조건 참아' 식의 구닥다리 충고나 신경정신과의라는 그럴싸한 타이틀만 달았을 뿐,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하라'는, 결혼식장에서도 들었을 그 촌시럽고 뻔한 얘기를 다시 한번 듣는 일 말고는 어떠한 해결책도 제공받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근데, 이렇게 터져나오는 설사를 참아내듯 죽을 힘을 다해 이혼 안 할라고 괄약근에 힘주고 버텨내는 사람덜이 이다지도 많은데, 우째 이혼률은 미친뇬 널뛰듯이 늘어만 가는가? 사실, 이부분 심각하게 대가리 싸매고 고민 좀 해봐야 할 대목이다. 결혼생활은 연애와는 다른 '현실'임을 인정하고, '자식을 생각해서', '집안어르신들과 친척들을 생각해서', '결혼에서의 실패는 곧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므로' '결혼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가족제도야말로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본'임을 숙지하며, '수신제가 치국평천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에 우리는 수없이 대구리 숙이고, 고개 끄덕여왔다 이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이혼률 증가는 무엇이란 말인가? 주례사가 그러케 목놓아 울부짖던 그 주옥같은 명언,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는 도대체 어데로 갔단 말인가? 본 우원,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누구나 공감하는 뻔한 사례는 일단 제끼고, 이혼과 이혼자에 대한 울덜의 태도에 대해 피똥싸며 고민 좀 해볼라고 한다. 1. 졸라 애매한 '성격 차이' 사실, 이혼은 증가하고 있는데, '가정폭력' '지나친 배우자의 외도' 이외의 뚜렷한 이혼사유는 언뜻 보기에도 별로 없어 보인다. 더욱이 이혼소장을 도배하는 천편일률적인 '성격차이'는 졸라 모호하고 더 애매하기만 하다. '결혼'을 결심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압도적인 것이 '사랑해서'이다. 그 안엔 물론, '경제적 필요'라던가 '나이가 차서', '주위의 부추김과 등쌀때문에' 등등의 이유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의 '사랑해서'이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빠굴=결혼이라는 공식이 압도적이었지만, 이제는 사랑=결혼이라는 공식이 더 우세한 듯 싶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혼해야 할 사유는 결혼하고픈 사유와는 맥락이 달라 보인다. 즉 애정이 결혼결심의 가장 큰 이유였다면 이혼 역시도 애정이 없어졌을 때가 가장 큰 이유일 듯 하지만 실상은 그러치 않다. 모 언론사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인이 생각하는 충분한 이혼 사유로는 성격 차이(65%), 폭력(65%), 외도(60%), 애정이 없어졌을 때(37%), 상습적인 음주(20%) 등의 순이라고 한다. 아울러, 법적으로 인정하는 타당한 이혼사유는 다음과 같다. <재판상 인정되는 이혼의 법정사유>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있었을 때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이쯤되면 결혼의 첫째 사유 '사랑'이 동시에 이혼의 사유로는 부족하다는 사회적 통념의 역설을 간파할 수 있을게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하겠다는 것은 인생을 조또 모르는 배부른 얘기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상대방의 폭력이나 외도, 경제적 무능 등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이혼'이 많았다면 요즘은 보다 나은 생활이나 행복을 찾아 이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울러 실제로 최근 이혼하는 부부들의 이혼사유로는 역시나 '성격차이 라는 애매한 표현의 부부 불화가 원인'인 것이 77%에 달한단다. 이 '성격차이'이라는 말 속에 얼마나 많은 속사정들이 숨어있겠냐마는 최근의 이혼사유의 대부분이 '부부불화'라는 것은 한번쯤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결혼이 애들 장난인 줄 아나?
세상이 어케 돌아가는건지, 정말 지구의 종말이 올라나 보네.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씨바' 라며 혀를 끌끌차는 당원제위 많겠지만 이것이 현실인 것을... 사랑을 기반으로 한 '연애'랑 생활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분명 다르다고 이미 수많은 인생선배들이 누누히 개거품 물고 백골이 진토되도록 강조하셨던 거 모르는 사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결혼 이후에 느끼는 공허함과 허탈, 고통과 좌절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설사 그렇더라도, 첨부터 결혼이 인생의 무덤인 줄 좀더 일찍 깨닫고 결혼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문지방에 대가리 박고 자책하며 엎드려 사는 일 말고는 어떤 결정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근데, 세상은 그러란다. 2. 이혼은 범죄인가 '워메~ 파주댁, 아들내미가 낼 모레믄 33살인디, 아적까정 장가도 안 보내고 뭐하는가? 직장도 멀쩡하고, 인물도 훤칠하던디, 어디 하자 있는 거 아닌감?' 시골에 계신 어무니, 이 얘기 듣고 가만 있겄는가? 명절에 아들내미 내려오믄 기다렸다는듯이, 선을 봐라, 참한 얘 있음 데려와봐라, 니가 어디가 부족해서 여태 결혼을 못하느냐...등등 잔소리 허벌나게 해대실테고, 친척분덜까지 가세해서 한꺼번에 융단폭격해댈 게 뻔하니 나이많은 아들내미에겐 명절은 지옥이 따로 엄따. '야~ 이노무 기집애야, 왜 이렇게 엄마 속을 썩이니? 너 많이 가르친 게 결혼도 못하는 노처녀 되라고 그런 줄 아니? 독신은 무슨 독신이야? 아직까지 결혼 안한 게 얼마나 부모한테 욕이 되는 줄 아니? 잘난 뇬 다 필요 없어.. 제발 시집 좀 가라... 엄마 주름살 더 늘리지 말고.... 이뇬아~!!' 딸보다 더한 불타는 교육열을 보여주시던 우리네 어머니라도 결혼 안하고 독신으로 지내겠다는 딸뇬에 대한 실망이 어찌나 대단한지, 예전에 보이셨던 교육열까지 후회하게 만드나 보다. 이렇듯, 울나라 솔직히, 결혼의 내용과 질과는 상관없이, 결혼을 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만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 되겠다. 그러니, 결혼 제도밖에 있는 사람들은 졸라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함량미달의 덜 떨어진 집단이 되는기다. 결혼 못한 난 분명히 내가 모르는
하자가 있을꺼얌~!! 상황이 뭐 이 정도인데, 더군다나 '이혼'은 말해 무엇하겠는고? 이혼은 그 자체만으로 비난받을만한 허벌난 '일탈 행위'인 거고 이혼자는 '무책임한 자' '결함이 있는 자' '자식에게 중차대한 범죄를 저지른 자'가 된다 이 말이다. 다음 인용한 글은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의 저자이기도 한 김혜련교사가 미용실에서 4,50대 아줌마들과 나눈 대화의 일부다. 50대 미용실 주인: 난 이혼은 결사반대야. 절대 안돼. 세상에 못할 짓이 그 짓이지. 그 문제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 거요 김혜련: 왜요? 손님1: 여자치고 이혼 생각 안 해본 사람 있나? 사람 사는 게 어떻게 살든 다 마찬가지야. 세상에 행복한 결혼 없어. 그러니 참고 살면 나중엔 다 그게 약이 된다고. 김혜련: 정말 안 맞는 부부거나 나쁜 남편 만난 사람도 있잖아요? 주인: 사람은 열 번 변하는 거야. 여자가 지혜롭게 대처하면 이혼은 없는 거야. 한마디로 남자를 요리를 잘못했다 이거야. 남편 폭력, 폭력하는데 그것도 그래. 여자가 맞을 짓을 하니 맞지. 슬기롭게 대처하면 왜 맞아? 같이 대놓고 딱딱거리니까 성격이 급한 남자가 주먹이 나가지. 정신 병자 아니면 이혼 안 해야지. 손님2: 정신 병자하고도 살대. 김혜련: 아줌마는 왜 이혼을 못하셨어요? 주인: 내가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게 싫고, 자식들한테 떳떳하지 못하게 되는 게 싫어. 이혼한다고 뭐 뾰족하게 달라지는 게 있어야지? 가슴에 상처만 갖지. 다른 남자 만나 재혼하는 거? 여자는 아이 하나 딸리면 그만이야. 인생은 다 비슷비슷해. 손님2: 우리 나이에 이혼한 사람을 누가 제대로 보나? 한풀 아래로 보고 냉랭하지. 동정같은 것 안해. 젊은 사람들이 기분에 이혼하지. 손님4(젊은 사람): 난 이혼 같은 건 머리 속에 생각조차 안 들어와 있어요 손님5:(젊은 사람): 이혼한 여자가 자기 문제 있어 그런 건데, 그 문제 성찰은 안하고 재혼하면 똑같은 반복이지 않겠어요? 주인: 그래, 자기를 알아야지. 자기를 몰라서들 다 그런거야. 뭐 구구절절이 옳은 얘기 아니냐? 근데, 이사람덜 퍽이나 행복해보이는가? 이들의 대화 속에서 이혼자들을 야무지게 비난하고 힐책하며, '몰염치하고 무책임한 자', '결함이 있는 비정상적인 자'로 여기는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비난의 이면에는 타인의 이혼이 애써 외면해온 자신들의 불만족스러운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전염성 완빵인 '악성 바이러스'라고 믿기 때문인 듯 하다. 좀 심하게 말해서, 그들이 결혼유지의 논리에 집착하는 것은 그들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기가 두려워서는 아닐까. '왜' 내 결혼생활이 이지경이 됐을까에 대한 의문과 결국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방법을 찾으려 하지 않은 채, 부부가 겪고 있는, 가족이 겪고 있는 문제를 언발에 오줌누듯 그때그때 땜빵질하고는 있는지도 모른다. 상처는 이미 곪을대로 곪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왜, 우리는 엄마, 아빠, 아내, 남편, 며느리, 가장이라는 명찰 하에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제대로 된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3. 지독히 혈연중심적인 사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로 대변되듯이, 사실 한국사회는 지독히도 혈연중심적인 사회다. 몇 년 전, 울덜 7일 중에 4일은 콩쥐를 괴롭히는 현대판 팥쥐엄마 스토리의 드라마를 보아야만 했더랬다. 주말드라마 '사랑과 성공' 2회, 월화 미니시리즈 '내일을 향해 쏴라' 2회, 거기다가 주말 낮시간대까지 포진하여 재방송됨으로써, 계모 얘기는 고장난 라디오마냥 울덜을 괴롭혀댔고, 이 악질 계모의 얘기를 피해 티비를 시청하기란 전쟁터에서 여기저기 쏟아지는 총탄을 피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딸랑 드라마 몇 편이 그 사회의 대다수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겠지만, 그러나 계모와 계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우리 역시도 재혼한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늘 계부나 계모에게 그 원인을 먼저 찾지 않았던가. 이렇듯 계부, 계모에 대한 우리의 편견의 골은 그만큼 깊다.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 내 핏줄이 아닌 아이에 대한 우리의 닫힌 마음은 입양문제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본지에서 다루었던 '해외입양아, 그들의 귀환'을 기억하시는가. 해외로 입양된 미셸은 자신이 해외로 입양되었던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본인은 자신의 삶에 당당하나,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미안함과 동정심, 안쓰러움으로 가득하다. 이렇듯 그들을 해외에 입양시킨 것을 조국의 수치로 아는 우리지만, 역설적이게도 친자식이 아닌 남의 아이를 입양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독히도 닫혀있는 우리의 모습을 구구절절이 조목조목 확인할 수 있었더랬다. 이같은 폐쇄성의 연장선 상에 보았을 때, 이혼은 곧 친부모 이외에 적어도 다른 한명의 계부 혹은 계모의 손에 자기 자식을 키우게 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포함하고 있음이니, 우리들 머리 속에는 자연스럽게 '이혼 이꼬르 아이를 버리는 짓'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자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낳은 부모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이 같은 생각이 극단적으로 치닫으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가족 동반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뭔 놈의 '가족 동반자살' 기사가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
'빚 때문에 일가족 3명 동반 자살' '일가족 셋 자살시도.. 3세 여아 숨져', '40대 에이즈 오해 가족 동반자살 기도' 등등 며칠 전 신문만 뒤적거려도 울덜, 어렵지 않게 어린 자식까지 죽이는 부모의 극단적인 사랑(?)을 엿볼 수 있음이다.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어떠한가. '얼마나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었으면, 자식까지 죽이고, 자기도 죽었을까?'라며 안타까워하고, 자식을 죽여야만 했던 가장의 절박한 상황을 어느덧 이해하지 않았던가. 친부모가 아닌 양부모나 혹은 사회가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는 천덕꾸러기로 자라날 수밖에 없으니, 끝까지 자신이 아이를 책임질 수 없다면, 차라리 아이와 함께 이세상을 등지는 것이 진정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어느새 우리는 수긍한 것이다. 설사, 그것이 그 아이가 앞으로 올곧게 자라날 가능성의 싹조차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것일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서 또 한번 자식은 '영원히 부모가 책임져야 할 존재'이고, '이 책임을 다할 수 없을 시에는 죽이는 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음이다. 지독히 혈연중심적인 가족관, 이로 인해 파생되는 계모와 계부에 대한 색안경 낀 편견과 자식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존재임과 동시에 생명까지 거둬갈 수 있는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생각... 이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한, 이혼은 먼나라 남의 얘기이고, 나한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죽었다 깨어나도 해서는 안되는, 천륜을 거스르는 범죄 행위가 되는 것이다. 4. 자식의 행복 이렇듯, 원치 않는 결혼생활을 기어코 부여잡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울트라 초특급 방어기제가 바로 주위의 시선도, 경제적 불안도 아닌 바로 '자식'이다. 이혼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는 부모와 일찍 사별한 편모, 편부가정의 자녀보다 더 불행하단다. 유년기/청소년기의 불행은 사회에 대한 일탈로 표출될 우려가 다분하고, 설사 용케~ 잘 크더라도, 그 자녀가 결혼할라고 치믄, 졸라 하자있는 집안에서 자라서 어딘가 문제있을 뇬놈일 것이라는 꼬리표를 달기 십상이기 때문에 진정 위대한 부모는 아무리 결혼생활이 엿같고 힘들어도 꾸욱~ 참아주는 게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숭고한 사랑이란다. 이쯤되니, 본 우원 역시도, 부모님덜의 피나는 희생과 하해같은 사랑에 눈물이 날라고 그런다. 글썽~!! 그러나, 함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자기땜에 희생하고 산다는 불행한 부모가 자식된 입장에서 과연 한없이 고맙기만 한 것일까? 매일같이 툭탁거리면서도 결국 자식땜에 헤어지지 못한다는 부모를 보며 고마워 매일밤 절이라도 하고싶을 꺼라 생각하는가. 오늘, 현성이가 나보고 결혼하자고 그랬다. 사실은 나도 현성이가 좋지만 싫다고 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서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맨날 유진이 때문에 산다고 그런다. 그래서 나는 누구랑도 결혼하기 싫다. - XX초등학교 2학년 김유진 어린이 일기 중에서 자식들은 이기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 본의아니게 부모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죄책감에 더 괴로워할 지도 모른다. 또한 부인 혹은 남편과 매일 툭닥거리고 서로를 지독히 미워하는 불행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로 하여금 인간관계 자체에 불신을 갖게 하거나 혹은 이후에 아이가 자라나 자신의 가정을 이루었을 때 불행한 부모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케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엄따. 이제 다시 한번 자식에 대한 진정한 책임감과 사랑에 대해 고민해보자. 두 부모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며,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 물론 이런 가정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자식의 삶에 진정 도움이 되는 것은 서로를 상처입히면서도 이혼하지 못하는 끈질긴 부모의 인내력이 아니라, 이혼한다 할지라도 두 부모가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며, 건강한 삶의 모습을 자식에게 몸소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인정하자. 건강한 부모이기 위해서는 먼저 건강한 인간이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실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누가 애써 구구절절히 이혼의 폐단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 사회에서 이혼을 아무렇지 않게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주위의 시선을 고려하고, 자식문제를 고민하고, 경제적 문제를 고민할 수 밖에 엄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결심하고 이혼을 한 자들은 '인생의 실패'로써의 '죽음'으로 이혼을 선택한 것이 아닌, '온전한 삶에 대한 갈망'으로써의 '삶의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좀더 명확히 얘기해서 인간으로써 제대로 살아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혼은 천국은 아니지만 최소한 지옥으로부터 벗어난 경험은 된다. 그러니 '행복한 이혼'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이 뭣보다 중요한 성숙한 사회가 될 때, 우리 사회의 결혼도 건강해질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 개인덜의 유쾌한 행복도 모색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혼할 권리, 당연히 이 사회에는 있다. 그러나, 머리떼내고, 다리뜯어내고, 가슴파내고, 씨바 이래도 이혼할래? 라는 분위기 속에서의 이혼은 사회적, 정신적 죽음을 의미할 수밖에 엄따. 불행했던 결혼 생활 만큼이나 이혼에 대한 차가운 사회적 멸시는 더욱 서럽고 모진 불행인 것이다. 진정, 헌법에 적혀있는 '행복추구'의 기본권은 '미혼남녀의 권리'일 뿐인가? 아니, 이혼하지 않은 정상적인(?) 부모를 가지도록 사회가 조또 배려한 '자식들만의 특권'이란 말인가? 결혼할 권리만큼 진정 이혼할 권리를 달라~!! 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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