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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섹슈얼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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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Man in pink
 
핑크가 어떤 색이던가. ‘꽃분홍색’은 오랜 세월동안 여성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새로 아기가 태어난 집에 옷을 선물할 때면, 남자아이는 하늘색, 여자아이는 분홍색을 선택하는 것은 오랜 관습이었다. 핑크색 원피스, 핑크색 머리띠, 핑크색 립스틱까지. 핑크를 증오하는 여성이 아니라면 핑크색 의상이나 소품은 아주 당연한 듯이 하나 이상 존재할 것이다.
 
반면 남자들에게 핑크는 금단의 색이었다. 정열의 상징인 빨간색, 쿨함의 파란색, 무게감 있는 회색, 무난한 검은색 등은 하등의 문제가 없었으나, 핑크라니. 당장이라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달려 나오셔서 "고추 떨어진다. 이놈아!"라고 노발대발하실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핑크를 애들도 아니고 다 큰 건장한 성인 남성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입기 시작했다. 보세 옷을 파는 거리든 메이커의 대리점이든 핑크색 티셔츠가 넘쳐난다. 오메. 어르신들이 연좌농성이라도 벌이셔야할 판이다. “이렇게 떨어져 나가다간 남아나질 않겠다! 젊은이들은 각성하라!”
 
그러나 남자들의 성기이탈유발행위는 핑크에서 그치지 않는다. 며칠 전 필자와 채팅을 하던 20대의 남자당원은 마스크팩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함께, 얼굴 작아지는 운동을 하고 있노라 이야기했다. 옷, 화장품, 헤어 관리 제품, 액세서리 등에 대한 남자들의 지출도 대폭 상승했다고 한다. 남자를 위한 피부관리실, 남자를 위한 성형외과 등이 생겨나고, 몸매 관리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바야흐로 오빠들이 ‘이뻐지고’ 있는 시대다.

 

거울을 보는 남자들
 
외모에 대한 관심은 그동안 여성들의 영역이었다. 남자가 외모를 가꾸는 것은 싸모님들의 재산을 사모하는 제비족이거나, 남성성의 부재를 드러내는 행동으로 인식됐다. 남자는 능력, 끈기, 성격 등 ‘외모가 아닌 다른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헤게모니가 지배적이었다.
 
물론 그동안에도 ‘잘생긴 남자’들은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 타고난 외모를 넘어서서 ‘가꾸는’ 외모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또한 미디어가 쏟아내는 예쁜 남자들의 이미지는 남자의 외모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삐져나온 코털’과, ‘양말에 샌들을 신는 패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지하철 섹시남이 되자
 
그동안 수많은 누님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던 꽃미남이 항상 존재해왔음에도, 외모에 대한 관심이 일반인에게까지 퍼지게 된 것은 하나의 트랜드에서 기인한다. 이른바 '메트로섹슈얼‘이라 불리는 그것은 1994년 영국의 문화비평가이자 작가인 마크 심슨이 인디펜던트지에 기고한 글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용어이다. ‘메트로섹슈얼’의 정의는 ‘현대적 세련됨을 가진, 외모에 관심 많은 도시남성’이다. 메트로라는 말은 게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가 후에는 패셔너블한 남성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다.
 
메트로섹슈얼은 게이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여겨졌던 것을 이성애자 남성에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조류의 대중적 확산에 큰 영향을 끼친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미국의 TV쇼 《퀴어아이 포 더 스트레이트 가이》다. 다섯 명의 전문직 게이들이 나와서 각자 자신이 종사하는 직종(패션, 헤어와 스킨케어, 요리, 인테리어, 문화)에 게이적 감수성을 포함시켜 운 좋은 이성애자 남자 하나를 통째로(그리고 공짜로) 변신시켜주는 프로인데, 한국에서는 여성들의 로망이라 일컬어지는 ‘온 스타일’에서 방영하기도 했다. 메트로섹슈얼의 대표주자로 일컬어지는 데이비드 베컴 역시 메트로섹슈얼의 대중적 전파에 큰 기여를 했다.
 

《Queer eye for the straight guy》의 출연진
 
메트로섹슈얼 이후 그냥 잘생긴 남자를 넘어서는 남성들에 대한 세세한 분류가 진행 중이다. 마초와 메트로섹슈얼의 장점만을 합쳐서 자연스럽고도 남성적인 멋을 추구하며 따뜻한 느낌을 주는 위버섹슈얼(조지 클루니, 김주혁 등), 여성의 액세서리, 패션 등을 과감히 차용하며, 중성적인 이미지가 강한 크로스섹슈얼(이준기, 강동원 등)등의 새로운 용어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것들 역시 대중문화를 통해 전파되면서, 남성들의 ‘꾸밈 있는’ 행동들을 촉구하고 있다.
 
 
 
패션, 소비, 코드
 
‘메트로섹슈얼-되기’는 단순히 패션과 외모에 치중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격과 관계에 대한 것들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간 젠더적 관점에서 남자에게 요구되었던 건 과묵함, 냉정함 등이었고, 관계에 있어서는 위계, 권위 등이 주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메트로섹슈얼-되기는 관계에 있어서의 ‘친밀감’을 중시하는 태도를 비롯하여 솔직하고 자유로운 감정의 표현, 유연하고 부드러운 의사소통 등 젠더적으로 ‘여성성’이라 규정된 것들을 남성의 삶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성찰이 없는 메트로섹슈얼-되기는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단순히 와이셔츠를 꽃남방으로 바꿔 입는 것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대중에게 이야기되는 메트로섹슈얼-되기는 소비 행위를 통한 ‘되기’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값비싼 유명브랜드의 옷, 화장품, 신발을 사야하고, 마찬가지로 비싼 돈을 들여 피부관리며, 성형수술을 받음으로써(그렇게 해야만) 메트로섹슈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 분위기의 변화를 소비행위와 연관시키는 것은 이미 한국사회를 거대한 식당으로 만들었던 ‘웰빙’ 열풍에서도 드러났다. 환경운동의 맥락에서 친환경적 삶을 모색하는 의미로 유기농을 비롯한 환경적 가치들을 추구하던 웰빙이 미디어에 의해 대중에게 전달되면서, 몸에 좋은 것을 ‘사먹는’것에 초점을 맞춘 식도락 탐험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자본과 미디어의 ‘코드화’는 정말로 막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누구보다도 치열한 투쟁의 삶을 살았던 ‘공산주의자’ 체 게바라의 사진을 박아 넣은 ‘초국적 기업’ 스타벅스의 커피 컵을 보라. 자신과 극점에 존재했던 것들마저도, 값싼 키치로 만들어서 돈벌이의 수단으로 쓰고 있는 이 모습에 어찌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승리하는 적에게서 도망칠 곳은 아무데도 없다. 심지어 무덤 속에서도.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전략에도 불구하고, 메트로섹슈얼의 현상들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 역시 난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외모를 돌본다는 행위만으로도 직간접적으로 초래하게 될 내면적 변화들이 존재한다. 또한 그동안 거의 일방적으로 대상화되었던 여성의 외모에 대하여, 동질감에 기반한 이해의 지평을(예를 들면 제모의 고통) 여는 것에 이러한 메트로섹슈얼 열풍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뻐진다는 거다. 아무렇게나 주워 입은 티셔츠에, 허름한 면바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무엇보다도 경악스런 신사 양말 +스포츠 샌들 조합(이에 대해서는 과거 딴지일보에서 심층분석한 바 있다)에 한숨 푹푹 쉬던 언니들의 시력이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이 드디어 도래하게 된 것이다.
 
 
 
미적기준 그리고 스타일
 
지금까지의 ‘외모’라는 기준은, 거의 절대적으로 여성에게만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었다. 여성의 외모는 내적, 외적을 가리지 않고 ‘보여지는 것’이자 ‘평가의 기준’으로서 존재해왔다. 그랬던 반면 남성은 외모를 제외한 다른 기준들로 평가 받는 게 당연해졌다. 심지어 잘생긴 남자는 ‘재수 없다’, ‘얼굴값 한다’등의 이유로 암암리에 기피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변하긴 변했다. 남자의 외모도 ‘보여지는 것’이며, ‘평가의 기준’이 되는 시대다. 온스타일에서 방영된 쇼프로인 《켑트》는 이러한 경향성의 극대화를 보여준다. 슈퍼모델 출신인 제리홀이라는 중년 여성이 미끈한 20대 남자들을 잔뜩 모아놓고 그중에서 자신의 ‘첩’이 될 놈을 선발하는 내용의 리얼리티 쇼다. 자신에게 남자는 애완동물이나 액세서리일 뿐이라는 그녀의 공공연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12명의 미끈한 놈들이 오글오글 모여서 행여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마도 오빠들의 머릿속에 온갖 회한들이 떠돌지 않을까?
 
한편 이러한 변화들이 자본에 의해 코드화되어 우리의 소비를 강요하는 시도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언제나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특히나 어떠한 ‘당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들을 코드화하여 제공했을 경우 많은 이들이 느슨해지고, 무력해지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러나 미디어가 쏟아내는 홍수 같은 이미지들 속에 떠내려가면서도 옥과 석을 구분하려는 시도들을 끝임 없이 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미디어에 휘둘리는 소비-기계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오빠들아. 우리 예뻐지자. 그런데 TV에서 시키는 대로 예뻐지지는 말자. 비싸고 좋은 옷만 입는 게 메트로섹슈얼이 아니다. 싸구려 옷도 연구하면 얼마든지 멋지게 입을 수 있다. 더불어서 예뻐지는 김에, 마음도 예뻐지자. 쪼금 예뻐졌다고, 자만심에 들떠서 작업할 생각만 하지 말고, 예쁜 마음으로 다양한 예쁜 사람들이랑 놀아보자.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준기가 될 필요가 없듯이 언니들도 모두가 김태희(전지현, 송혜교 등 취향에 따라 상정하시라)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명심하자. 우리 모두 각자 스타일대로 예뻐져서, 예쁜 세상 까짓거 함 만들어 보자.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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