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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예술] 냄새나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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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다시 쓰는 SM in Art. 오랜만에 돌아온 만큼 수위를 살짝 높여 SM에서도 상당히 하드한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SMer들조차도 여간해선 꺼리는 배설물에 관한 이야기. 넓은 의미로는 콧물이나 귀이 따위의 분비물도 배설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배설은 음식물을 소화하는 마지막 과정이고, 배설물은 그 부산물을 의미한다. 따라서 엄밀하게 배설물은 두 가지, 오줌과 똥을 말한다. 오줌을 성애의 소품으로 활용하여 상대의 몸이나 입 안에 오줌을 싸거나 남의 오줌을 맞거나 하는 행위를 SM에서는 골든 샤워(golden shower), 워터 스포츠(water sport - 물놀이) 등으로 부른다. 약간의 유머가 가미된 우회적인 표현들이지만 이런 은어들은 재미보다는 현실적인 필요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확실히 “우리 배설음란행위 할까?”와 같은 말은 성적인 유희에 방해가 될 만하다. 이보다는 “우리 물놀이하자.”가 훨씬 낫지 않은가. 용어야 어찌 됐든 이런 행위와 욕망은 도처에 존재한다.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면 주인공 캐리가 매너 있고 로맨틱한 정치인과 만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이 드라마에서 언제나 그렇듯이, 그 정치인도 다른 남자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단 한 가지 용납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캐리와 그녀의 친구들은 며칠이 못 돼서 다시 싱글이 되곤 한다.) 그 남자의 문제는 워터스포츠 마니아라는 점. [Sex and the city]season3-2 Politically Erect의 한 장면
이렇게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말이다...
누워 있는 자신의 몸에 오줌을 누어 달라는 요구에 캐리의 낭만은 산산조각난다. 캐리에게 오줌은 지저분한 것이었고 그 정치인 역시 지저분한 녀석이었다. ‘변태적인 음란증을 갖고 있지만 선량한’ 등장인물은 시청자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변태인 데다가 부도덕하기까지 하다면 훌륭한 악역이 될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캐리를 서운하게 만든 그 정치인처럼. 지저분한 짓을 하는 사람 역시 지저분하다는 것은,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감정적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등식이다. 우리는 시각적인 것에 쉽게 반응한다. 괴팍한 성욕이야 그렇다 치고, 그의 이기적인 언사에 배신감을 느낀 캐리는 여차저차해서 이 이야기를 자신의 섹스칼럼에 쓰는 복수를 감행하는데, 이 칼럼의 제목이 ‘to pee or not to pee’다.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비슷한 음운으로 패러디한 것이다. 싸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똥 놀이와 애분증 지저분하기로 치면 오줌을 이용한 물놀이는 스캇(scat)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스캇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똥 가지고 놀기’인데 구체적으로는 똥 싸기, 만지기, 문질러 바르기, 먹기 등의 행위를 말한다. SM 고전문학인 사드의 [소돔 120일]에는 똥과 항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온다. 피의 장과 대등하게 똥의 장을 구성해서 묘사하고 있는데, 남색(sodomy)이나 여성과의 항문성교의 쾌락에 대해서 뿐 아니라 똥 자체에 대해서도 반복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사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 [살로, 소돔 120일]의 한 장면을 보자.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 (Salo O Le 120 Giornate Di Sodoma)]의 한 장면
결혼피로연을 위해 그릇 속에는 똥이 가득 준비되어있다. 영화속에서 이들은 똥을 먹는 만찬을 벌이고 있다. 간략하게 세팅된 테이블 위로 똥이 담긴 쟁반이 오가고 감금된 소년소녀와 연회에 초대받은 다른 손님들은 똥을 각자의 접시로 옮겨 담아 먹는다. 여러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신선한 똥을 준비하기 위해 철저한 사전계획이 필요했다. 그래서 네 명의 주인들은 한동안 그들이 납치해온 소년소녀들에게 배변을 금지시켰다. 아이들이 배변의 욕구를 참느라 느꼈을 고통 역시 주인들의 쾌감을 자극했을 것이다. 마침내 배변이 허락되었을 때 아이들은 신선한 똥을 쌌고, 그날 저녁 자신이 싼 똥을 먹게 되는 고통의 저녁식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앞에서 예로 든 [소돔…]의 이야기는 스캇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경우이다. 대부분의 SMer들은 다른 방식으로 똥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일차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똥을 싸거나 다른 사람이 똥을 싸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흥분하는 경우가 있고, 이를 넘어서 배설물을 만지거나 몸에 바르면서 성적인 흥분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런 똥 놀이를 정신과에서는 애분증(愛糞症, coprolagnia)이라는 정신질환으로 규정한다. 애분증 환자들에게 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들 알겠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설명해보자. 프로이트는 성적조직의 발달단계를 구순기, 항문기, 남근기로 분류한다. 이 중 우리가 집중할 시기는 항문기, 항문기의 아이는 배설을 통해 양육자를 조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지배본능을 인식한다. 아이가 똥이나 오줌을 누면 엄마가 달려온다,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항문을 이용한 타인의 조종과 지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항문기의 지배욕은 성적인 부분과 밀접하게 연관되는데, 누군가가 항문이나 생식기를 씻어줄 때 일어나는 마찰이나 자극으로 아이는 (구순기에 무언가를 입에 넣고 물고 빨고 하는 것 이상의) 성적 흥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드 너드럼(Odd Nerdrum) [똥 무더기(Shit Rock)] 2001
충격적인 이미지로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네덜란드의 화가 오드 너드럼의 위 작품은 항문기 성적 고착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항문의 점막을 통해 배설의 쾌감을 깨닫게 된 아이에게는 다른 사람의 배설을 훔쳐보고 싶어하는 관음증(절시증)의 본능이 생긴다고 한다. 위의 작품에서 여인들이 풍만한 엉덩이 사이로 똥이 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것은 이런 욕구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관음의 욕구는 일방적인 엿보기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배설을 보여주고 싶은 심리, 즉 노출증도 항문기에 형성된다고 한다. 노출증은 어떤 의미에서 호혜적인 욕구인데 “내 걸 보여줬으니까 너도 보여줄 거지.”라는 기대심리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프로이트에 따르면 항문기는 변태가 탄생하는 시기인 것이다. 이 시기에 고착된 또다른 예로 로버트 메이플솝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작가의 자화상인데 엉덩이가 노출된 딱붙는 가죽바지를 입고 있는 메이플솝은 항문에서 꼬리같이 긴 검은 물건을 끄집어내는 동작을 취하고 있다. 로버트 메이플솝(Robert Mapplethorpe) [자화상] 1978 한편 항문기의 아이는 자신이 배설한 똥을 자신의 일부로 생각한다. 자아와 타자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아이는 이를 자신의 첫번째 ‘선물’로 생각한다. “내가 똥을 쌌어, 이건 나의 일부야.” 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싸놓은 똥을 만지작거리고 “나의 일부를 엄마에게 줄게.” 라는 생각으로 웃으며 이를 들이미는 것이다. 똥을 치우는 엄마의 입장에서야 질색할 일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이는 원초적인 호의에서 나온 선물하기인 것이다. 똥을 선물하는 시기가 한참 지난 뒤에도, 자신의 똥을 작품으로 만들어 판매한 예술가도 있다. 이탈리아의 삐에로 만쪼니는 자신의 똥을 30g씩 90개의 통조림에 나누어 포장한 뒤, 이를 황금 가격으로 환산해서 300달러 씩에 판매했다. 그는 이전에도 직접 풍선을 분 뒤에 [예술가의 입김]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한 경력이 있었다. 삐에로 만쪼니(Piero Manzoni) [예술가의 똥(Artist's Shit)] 1961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작업은 예술가가 창조한 어떤 대상이 아닌 예술가의 존재 자체를 담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이런 지독한 자아과잉 작품을 과연 누가 샀을까 싶지만 현재 이 작품은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1961년 당시 300달러에 판매되었던 똥 통조림 하나가, 1993년 경매에서 75000달러에 판매되었으며, 2002년에는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38000달러에 캔 하나가 매매되었다. 그런데 이 오래된 똥 통조림 캔이 손상되어 내용물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후문도 있다. 예술가의 '똥'은 구체적인 형상을 지니고 있는 그의 일부분으로 예술가의 '정신'보다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달콤한 말과 허황된 약속뿐인 위선적인 사랑보다는, 자신의 일부인 똥을 선물하는 항문기 아이의 사랑이 보다 진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냄새나는 선물을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애분증과 SM 배설행위를 관음하거나 노출하고자 하는 욕망과 애분증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전자에는 똥 자체에 대한 욕망보다 수치심이 더 큰 요소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것이었던 배설에 타인의 시선이 개입되면 이는 수치스러운 행위가 되며, 수치심은 가학과 피학의 감정을 유발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타인의 시선(또는 그 가능성)을 동반하는 ‘공적인 배설’은 SM적인 쾌감을 동반하는 심리적인 괴롭힘이다. 반면 똥을 만지고 먹는 본격적인 스캇, 즉 애분증적 심리는 수치심과 무관하게 똥 자체를 욕망하는 것이다. 물론 똥 자체만을 놓고 봤을 때 여기서 가학과 피학의 요소를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스캇을 과연 SM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캇은 SMer 당사자들에 의해 SM 플레이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것이다. 이 글이 워터 플레이나 스캇과 같은 SMer들의 놀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만한 설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캇 플레이는 애분증이라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오줌을 싸든 똥을 먹든 합의된 성행위라면 이들을 손가락질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싸느냐 마느냐'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만큼 심각한 것이 아니다. 단지 '즐기느냐 즐기지 않느냐'의 문제에 불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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