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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예술] 고통받는 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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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레슬링 중계방송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흑백으로 변했다. 피 튀기고 살점 날리는 흥미로운 장면에서 고장나고 지랄이다. 씨불씨불하면서 낡은 텔레비전을 때려주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죄가 없었다. 알고 보니 미국 일부 주에서는, 유혈이 낭자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중계할 수 없기 때문에 흑백으로 처리한다고 한다. 프로레슬링이야 어차피 짜고 치는 고스톱이고, 붉은 피의 정체는 색소물이라는 걸 누가 모를까? 트리플H가 골드버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서 링에 묶어놓고 슬래즈해머로 머리를 내리치던 순간이었는데 말이다.
현대인은 붉은 자극을 두려워한다. 클리가 오그라드는 공포를 외면한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흥분하게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폭력을 통제한다. 또는 폭력이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열광한다. 중세 사람들에게 철제 의자로 등짝을 내려치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끓는 물에 넣기, 대로에서 목매달아 죽이기, 목매달고 창자 꺼내고 시체 분해하기, 불에 달군 쇠꼬챙이에 산 채로 꿰어서 죽을 때까지 방치해두기 등등. 오싹하다면, 당신은 현대인이다. > 중세까지 거슬러 갈 필요도 없다. 대략 백여 년 전 중국에서 있었던 예를 들어보겠다. 중국 정부는 근대적인 사형방식, 공개총살로 사형수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짧은 총성과 함께 사형수가 쓰러졌다. 그러자 사형 집행장에 몰려든 사람들이 군인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군중은 '적어도 참수형 이상'의 볼거리를 원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잔인한 볼거리를 원한다. 타인의 고통을 보며 흥분한다. (여담이지만, 나는 사형제도에 반대한다.) 반 아이크(van Eyck, 1395~1441), <십자가 책형>과 <최후의 심판>
반 아이크 형제의 판넬화 두 점을 보시라. 오백년 전 네덜란드 사람들은 교회에서 이런 그림을 보았다. 예수님이 두 명의 죄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장면과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는 장면은 일반적인 제단화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최후의 심판> 부분 확대
오른쪽 <최후의 심판> 의 하단을 확대해 보면, 생지옥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사탄이 사람의 두 다리를 붙잡아 몸을 반으로 찢고, 큰 뱀이 사람의 배를 뚫고 내장으로 파고들며,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진 사람들은 날카로운 사탄의 이빨에 물어뜯기는, 이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지난 모든 악행을 회개하고 싶어질까? 고통 받는 사람들을 묘사한 또 다른 제단화를 보시라.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그린 <쾌락의 정원>의 일부분이다. 보쉬는 반 아이크 형제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태생이며 '지옥의 화가'로 유명하다. 그가 묘사한 지옥은 반 아이크의 것 보다 훨씬 기상천외하고 상징적이다. 인간의 타락과 죄의 대가를 잔혹하게 묘사한 이 그림 역시 성전에 바치는 종교적이고 교훈적인 그림이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 (Hieronymus Bosch, 1450~1516), <쾌락의 정원>
>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서 근대적 이성을 갖추기 시작했던 유럽 사람들은 더 이상 적나라한 잔혹을 선호하지 않은 것 같다. 유혈이 낭자하는 붉은 화면을 잠시 흑백으로 처리하는 현대 레슬링방송 영상처리의 시초라고 보면 되겠다.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Sebastiano del Piombo, 1485~1547), <성 아가사의 순교>
<성 아가사의 순교>는 고통받는 여체를 표현하고 싶었던 화가들에게 가장 널리 사용된 소재 중 하나이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순교자, 성 아가사는 로마 정부에 의해 달군 쇠로 젖가슴을 떼어내는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에 난 화상을 성 베드로가 하룻밤만에 아물게 했다고 한다. (중세의 마녀 감별법 중에는 '화상을 입힌 상처가 사흘 안에 아물면 무죄'라는 내용이 있는데, 바로 성 아가사의 회복이 그 근거가 된다 하겠다.) 베르니니 (Bernini, 1598~1680), <성 테레사의 환희>
또 다른 작품으로 베르니니의 조각 <성 테레사의 환희>를 보라. 수녀 테레사는 그녀가 본 신비스럽고 영적인 환영을 책으로 남겼는데, '한 천사가 황금으로 된 뜨거운 화살'로 그녀의 심장을 꿰뚫었고 그녀는 아픔과 함께 '무한한 달콤함'을 느끼면서 '그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그 고통은 테레사 성녀의 진술대로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것 같은 천박한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조각한 베르니니는 보통 사람이었기 때문에 테레사 성녀가 느낀 정신적인 쾌락을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성녀의 얼굴을 확대한 사진을 보자. <성 테레사의 환희> 부분확대
정신적 쾌락으로 무아지경에 빠진 성녀의 얼굴은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인의 표정과 다를 바 없다. 뜨거운 금화살이 심장을 찌르는 느낌이 어떤 것일지 우리같이 평범한 여인들도 쉽게 짐작 할 수 있을 만큼. > 예수를 포함한 성자의 모습은 기독교 미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인 주제였다. 많은 예술가들은 성상을 통해 내면의 가학적인 성적 욕구를 표현했다. 그것이 의도한 상징인지 자연스럽게 표출된 은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예술가들이 가학적인 성적 욕구를 보여주었다는 사실과 대중이 그런 볼거리를 원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서양문화사를 히브리즘과 헬레니즘의 두 갈래로 본다면, 미술에서도 기독교적인 주제와 함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한 주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다음 회에는 신화적 주제의 작품에서 표현된 가학성향과 가학적 관음증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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