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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에로영화 감독이 되었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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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에로영화 감독이 되었나 4▶ http://goo.gl/AVvifi


영화 <레드카펫>
 
모바일 서비스
 
첫 촬영은 여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있는 다방 레지 영숙을 성진이가 훔쳐보는 씬이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던 씬이지만 상가 일층 화장실을 눈여겨 본 감독의 순발력으로 새로이 추가된 씬이었다. 충분한 준비 작업 후에 제작에 들어가는 극영화 현장에서는 드문 일이지만 2박 3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에로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이 씬 자체로도 여자 화장실 훔쳐보기 동영상으로 서비스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비디오 촬영을 하면서 동시에 모바일 동영상도 제작해달라는 투자사 쪽의 주문을 반영한 결과였던 것 같다. 예전에 투자사 사장과 감독의 저녁 식사 중에 오고 간 대화 내용이 생각이 났다.
 
"이 감독님, 요즘 모바일이 유행이잖아요."
 
"네."
 
"그래서 우리도 말이지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할 것도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음..."
 
"그냥 베드씬만 따로 편집해도 되는데 여유가 생기면 신경 좀 써주세요."
 
"한 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감독이 너무 착하게 생겨서 배우들이 말을 들을지 모르겠네."
 
"하하..."
 
"아무래도 기가 쎈 사람들이라 말 안 들으면 화도 내고 그래야 될 텐데... 괜찮겠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맞다. 우리 조감독 혹시 배우 해 볼 생각은 없어요? 순진한 재수생 역에 딱 어울리는데..."
 
"제가 연기는 자신이 없어서요."
 
"에이 잘 할 것 같은데..."
 
"제가요... 숫기가 없거든요. 남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갑작스런 에로배우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하며 마무리 했던 그 날의 대화 내용을 되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런 식으로 촬영 내용이 변경되고 추가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나리오 내용도 중요하지만 여체를 상품화할 만한, 돈이 될 것 같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무조건 찍어야 했던 것이다. 처음에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 에로비디오로 아트한다는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다른 현장에서는 에로비디오 한 편을 찍으면서 모바일 동영상 작업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편집만 달리 해서 서너 편으로 나눠 출시하기도 했으니 그다지 무리한 주문도 아니었던 셈이다.
 
스텝과 배우들이 도착하자마자 다방 일층에 위치한 상가 화장실로 이동해 조명 세팅과 배우 분장을 시작했다. 분장과 세팅이 끝나자마자 감독의 지시로 배우들이 화장실로 들어가 말 그대로 연기를 했고, NG 한번 없이 촬영을 마무리 지었다. 훔쳐보기의 특성상 카메라도 주인공의 시점에서 훔쳐보는 연기를 해야 했는데 촬영 기사는 에로비디오 촬영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연기를 했다. 그런 식으로 매 씬마다 스피디하게 촬영이 이루어졌다.
 
 
스타니슬랍스키와 에로배우
 
배우들은 '뭐 이런 것 쯤이야' 하는 식으로 매 씬마다 상황별로 연기를 후딱 후딱 해치웠다. 매우 능숙하고 노련해 보이기는 했다만 스타니슬랍스키를 연구하며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진실된 감정을 이끌어내보려는 정도의 직업 의식은 없는 것 같았고 단지 짧고 굵게 화끈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개념인 것 같았다. 보통 에로배우 출연료는 일당으로 계산되는데 하루 일당이 왠만한 아르바이트 몇 달치 월급과 비슷했으니 금액만 놓고 본다면 고소득의 아르바이트였던 셈이다.
 
사실 배우 뿐만 아니라 이 현장에서 그 정도의 직업 의식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자신도 에로비디오로 예술 한번 해보겠다고 뛰어 들긴했다만 촬영을 진행해가면서 현장 특유의 노가다 분위기에 서서히 젖어들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예술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드라마씬 촬영이 진행되가면서 서서히 베드씬을 찍을 차례가 다가왔다. 촬영 순서표를 짤 때 배우들 옷 벗고 공사할 시간을 감안해 일부러 베드씬만 몰아서 배치해 놨었는데 드디어 그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사전 작업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베드씬을 찍기 전에 배우들이 샤워를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분장 언니가 말해줘서 알았는데 처음 그 얘기를 듣고는 난감할 뿐이었다.
 
"조감독님 배우들 샤워는 어디서 해요?"
 
"샤워요? 샤워씬 없는데요?"
 
"호호. 조감독님 에로 처음이세요?"
 
"네."
 
"베드씬 찍기 전에 배우들 샤워해야 되거든요. 혀를 이용한 특정 부위 흡입 연기도 해야 될텐데 때라도 밀리면 곤란하잖아요. 일종의 매너죠."
 
"아~ 그렇군요. 샤워 준비해 놓을께요."
 
감독에게 달려가 샤워 어디서 해야 되냐고 물어보니 모텔에서 샤워를 시키라고 했다. 프리 프로덕션 기간 중에 섭외해 둔 모텔을 찾아가 숙박용 객실을 남녀 배우용으로 따로 하나씩 얻어 놓고 배우들을 데려가 각각의 방에서 샤워를 시켰다. 샤워를 마친 주연 배우 두 명을 데리고 오는데 그들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베드씬을 앞두고 있는 극중 연인 사이였지만 대화 내용은 무척이나 천진난만했다.
 
"오빠 스타 잘해?"
 
"잘하지. 넌 잘해?"
 
"그래도 나한테는 안 될 껄? 난 삼천승 넘어."
 
"와! 진짜 잘한다. 밥만 먹고 스타만 했냐? 넌 왜 이거 하게 됐어?"
 
"나이트에 놀러갔다가 캐스팅 됐어. 오빠는?"
 
"뭐 어영부영하다가 하게 됐지."
 
"조감독님 초보예요? 운전이 좀 서툰 것 같애."
 
"미안요."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겠네요."
 
"오빠는 운전 잘해?"
 
"난 면허 없는데?"
 
"헉..."
 
 
베드씬
 
날은 어느덧 어두컴컴해져 있었고 어두컴컴한 지하 다방에서는 베드씬 촬영 준비가 시작되었다. 베드씬 준비 작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녀 배우의 그 곳 공사였는데 여배우는 그 곳에 일종의 패드 비스무리하게 생긴 헝겊 같은 걸 붙이는 것 같았고, 남자 배우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물건에 씌운 후 고무줄을 이용해 벗겨지지 않도록 마무리 작업을 했다.
 
충무로 극영화 연출부 시절에도 베드씬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전 스텝들이 긴장한 채로 배우가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을 도왔고, 촬영 직전에는 배우들이 편하게 베드씬에 임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스텝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세트에서 철수하기까지 했다. 매 테이크마다 여배우 몸을 가려준다고 이불을 준비하고 추위에 떨지 말라고 휴대용 난로도 준비했었다.
 
반면에 에로비디오 배우들은 베드씬 연기에 아무런 거리낌도 수줍음도 없었다. 특별히 준비해야 될 것도 없었고 마음의 준비를 위한 사전 작업도 필요 없었다. 베드씬 연출은 특별한 요구 사항 없이 다양한 체위를 순서대로 지시해 주는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다리를 벌려서 하는 체위 있잖아요. 그걸 뭐라고 하더라?"
 
"아~ 가위치기요?"
 
"네. 그걸 꼭 해줬으면 좋겠거든요?"
 
"그러니까 남성상위로 시작해서 후배위로 넘어갔다가 가위치기로 끝내란 말씀이죠?"
 
"네. 시간은 한 5분 정도로 해 주세요."
 
"한번에 가실 거예요?"
 
"일단은 한 번에 가죠. 중간 중간 키스 같은 건 알아서 해 주시고요."
 
"레디~ 액션!"
 
감독의 레디 액션 싸인이 떨어지자 마자 몇 년 사귄 연인처럼 다정스럽게 애무를 시작한 후 다양한 애드립까지 구사하며 능숙하게 베드씬을 연기해 냈다.
 
"탁...탁...철썩...철썩...헉...헉..."


조용한 다방 안은 어느덧 남녀 배우의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로 가득차게 되었고 드라마씬 촬영 때와는 달리 조금은 숙연한 분위기로 변해갔다.
 
베드씬이라는 게 보는 사람은 재밌을지 몰라도 연기하는 당사자들에겐 노가다 그 자체였다. 당시 에로비디오 업계에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정해준 노출의 제약을 서커스에나 나올 법한 아크로바틱한 체위로 극복해보려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에로배우들은 허리에 상당히 많은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여 배우들의 수명이 짧은 이유가 베드씬의 엄청난 노동량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특히 남자 배우들의 노동량은 여 배우들의 두세 배 수준이라 베드씬 연기를 위해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진지하게 베드씬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그들의 열정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촬영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베드씬을 마지막으로 첫날 예정되었던 모든 촬영을 마무리 짓고 숙소로 향했다. 도착해서 잘 준비를 마치자 시간은 벌써 새벽이었고 아침 촬영 까지는 5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여 배우는 사려 깊은 분장팀장과 함께 숙소를 쓰기 때문에 걱정되지 않았지만 혈기 왕성한 남자 배우들이 행여나 숙소를 빠져나가 PC방에라도 가지 않을까 싶어 확인차 가보았더니 하루 종일 피곤했는지 옷도 벗지 않은 채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다. 괜히 의심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일 잘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숙소로 돌아가 촬영 진행사항을 최종 점검한 후 스텝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제일 먼저 일어나 스텝들을 깨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밤잠을 설치게 될 줄 알았는데 우려와는 달리 하루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는 뿌듯함과 보람찬 기분에 눕자마자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어떻게 에로영화 감독이 되었나 6▶ http://goo.gl/02tVjD

글쓴이ㅣ에로영진공 위원 최경진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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