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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에로영화 감독이 되었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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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에로영화 감독이 되었나 5▶ http://goo.gl/T7iHPD
 

영화 <레드카펫>
 
오늘 촬영은 주로 야외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스텝들을 깨우고 동네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한 뒤 첫 촬영지인 고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방학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고 날이 추워서인지 운동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에로비디오 촬영에는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주인공 성진이 발랑 까진 친구에게서 섹스 테크닉에 대해 강의를 받는 씬이어서 배우들만 잘 해주면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었다. 배우들을 불러 놓고 운동장 한가운데 카메라를 세팅하고 촬영을 시작하려는데 학교에서 아저씨 한 명이 달려 나왔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여기 책임자가 누구예요?"
 
"제가 담당잔데요?"
 
"촬영하는 거 허가라도 받으셨나요?"
 
"아니요."
 
"그럼 안 되는데... 잠깐 와주시겠어요?"
 
뭔 일인가 싶어 아저씨를 따라 교무실로 갔다. 쌀쌀한 바깥 날씨와는 달리 교무실 안은 따뜻했다. 젊은 여자 한 명과 아저씨 서 너명이 사무를 보고 있었다. 나를 데려온 아저씨는 성적 떨어진 학생 나무라듯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공공 장소에서 촬영을 하려면 허가를 받으셨어야죠."
 
"아, 그렇구나. 몰랐습니다. 저기 운동장 구석에서 조금만 찍다 갈꺼거든요."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하면 안 되게 돼 있거든요. 무슨 촬영이예요?"
 
"예. 연극영화과 졸업작품입니다."
 
"연극영화과 다녀요?"
 
"네."
 
"무슨 내용인데요?"
 
"고등학생들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학생이어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허가도 받지 않고 운동장을 사용하면 안 되죠. 자. 이거 작성하세요."
 
"이거 작성 좀 해 주세요."
 
아저씨는 나에게 운동장 사용허가선지 뭔지를 내밀었다. 뭔 일인가 싶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계속 쳐다보고 있던 아가씨가 사태 파악을 했는지 나를 응원해주었다.
 
"뭐 어때요? 보아하니 오래 있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냥 쓰라 그러세요."
 
"아니야. 모든 일은 절차가 있는 건데 이렇게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되지."
 
"그럼 잠깐만 있다가 갈께요. 감사합니다."
 
나는 아저씨가 시킨 대로 서류 작성을 마치고 나왔다. 교무실에서 운동장 사용 허락을 받고 나와보니 촬영은 거의 다 끝나 있었다. 오늘 촬영은 주로 야외에서 이루어질 예정인데 매번 이렇게 태클이 들어오면 내가 좀 피곤해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운동장 촬영을 마친 후 하굣길에 주인공 성진이 영숙을 등에 업고 가는 장면을 찍으러 이동을 했는데 학교 보충 수업이 끝난 건지 수백명의 아이들이 정문 안에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인지라 야시시한 화장을 한 채 노출이 심한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남자 등에 업히는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당연히 촬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고 현장 진행을 책임져야 하는 조감독인 나는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학생들이 카메라 쪽을 쳐다보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저기요. 학생. 카메라 보지 말아주세요."
 
"이거 뭐 찍는 거예요?"
 
"쟤 누구야? 못 보던 앤데?"
 
"카메라가 왜 저렇게 작어?"
 
학생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고 촬영은 계속 딜레이됐다. 이대로라면 촬영 일정이 연기될 수 밖에 없었는데 덩치가 크고 인상이 좀 험악한 남자 배우가 촬영장 주변에서 기웃거리던 학생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질렀다.
 
"야! 뭘 봐? 그냥 안 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카메라 주변을 얼쩡거리던 학생들은 남자 배우가 한소리 하자 거짓말처럼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내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답답해하던 여 배우는 남자 배우의 등에 업힌 채 깔깔 거렸다.
 
"호호. 오빠 최고. 옛날에 좀 놀았나 보네?"
 
"빨리 안 가? 뭘 봐?"
 
연기에 몰입해야 할 남자 배우의 도움으로 학교 앞에서 여자를 등에 업고 걸어가는 촬영을 무사히 끝낼 수가 있었다.
 
 
-
 
 
다음 촬영은 여 배우 영숙이 옛날 애인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장면이었다. 옛날 애인 역은 촬영 전날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세 캐스팅한 신인이었다. 감독과 스텝들은 다음 촬영지인 동네 놀이터로 이동했고 나는 근처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신인 아저씨를 픽업하러 차를 몰고 나갔다. 아저씨는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타세요."
 
신인 아저씨를 차에 태우고 촬영장에 가는 동안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에로 연기가 쉬운 게 아닌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나중에 비디오 껍데기에만 안 나오면 돼요."
 
"껍데기에 나오면 안 돼요?"
 
"조그맣게는 나와도 되는데 크게는 싣지 말아주실 거죠?"
 
"그럼요. 남자 얼굴 크게 나온 비디오를 누가 빌려보겠어요."
 
"돈은 오늘 바로 입금되나요?"
 
'네. 촬영 끝나면 바로 현금으로 드릴께요.'
 
"제가 카드빚이 좀 있어서 급하거든요."
 
"아~ 네."
 
왜 에로 배우를 하겠다고 나선 건지 궁금했었는데 미스테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연기 경험은 있으세요?"
 
"초등학교 때 학예회에서 주인공 해본 적 있어요."
 
"와 그럼 잘하시겠네요".
 
"제가 오늘 연기 하려고 에로비디오 몇 개 빌려서 연구했는데 뭐 제대로 연기하는 것도 아니던데요? 그 정도쯤이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예요."
 
"네."
 
"근데 공사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스타킹을 돌돌 말아 똘똘이에 씌우고요 고무 밴드로 마무리 해주시면 돼요."
 
"제가 해야 되나요? 그러다 발기라도 되면 어떡하죠?"
 
"글쎄요. 보통 발기는 잘 안 되는 것 같던데요?"
 
"제 물건이 좀 크거든요. 참 여 배우는 이뻐요?"
 
"네. 성격은 좀 터프하지만 일본 미소녀 스타일이예요. 몸매도 좋고."
 
"베드씬은 힘든가요?"
 
"아니요. 그냥 하던 대로만 해주시면 돼요."
 
이 감독의 말대로 확실히 에로 연기가 처음이어서 그런지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아보였다. 경제적인 이유로 캐스팅을 하긴 했다만 베드씬 찍는 도중에 실수라도 할까봐 걱정이 됐다.
 
"적당히 하는 척만 하면 되는데 너무 오바하지만 않으시면 돼요."
 
"오바요?"
 
"음... 에로 배우이기 이전에 여자잖아요. 적당히 눈치봐서 좀 싫어하는 것 같다 싶은 행동은 하지 말아야죠. 예를 들어 너무 들이댄다든가 지나칠 정도로 세게 마찰한다던가... 터치도 신경 써주시고요."
 
"터치요?"
 
"예를 들어 손가락을 빳빳이 세워 집어 넣으려고 한다든가 그런 행동은 좀 그렇잖아요."
 
"복잡하네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체위는 감독님이 정해주신 순서대로만 하시면 되구요."
 
"풍차돌리기 같은 것도 하나요? <정글 주스> 보니까 여자 위에서 뺑글 뺑글 돌기도 하던데."
 
"우리 감독님은 자연스런 체위를 선호하시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가 허리가 좀 안 좋아서요 부탁 좀 드릴께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촬영장에 도착했고 대강 인사를 나눈 후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신인 아저씨는 여 배우가 마음에 들었는지 '놀이터에서의 즐거웠던 한 때'를 리얼하게 연기해주었다.
 
연기력도 기존의 남자 배우들에 비교해 전혀 밀리지 않았다. 매니저들은 자기 회사 소속 배우들을 쓰지 않고 민간인을 썼다며 조금 못 마땅해 하는 눈치였지만 감독은 신인 아저씨의 연기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야외에서의 촬영이 끝나고 두 사람의 베드씬을 찍기 위해 다방으로 이동했다. 다방 쪽방에 이불을 깔고 세팅을 하는 동안 아저씨는 공사를 하기 위해 스타킹과 고무줄을 들고 다방 구석으로 갔다. 여배우는 남자가 신인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조금 걱정이 되는 눈치였는지 살짝 짜증을 내며 담배만 벅벅 피워댔다.
 
아저씨가 공사를 마치고 돌아오자 아니나 다를까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프로 배우들이 공사를 한 것과는 달리 경험이 없던 신인 아저씨는 행여 발기라도 되지나 않을까 싶어 물건을 있는 힘껏 고무줄로 꽉 조여놓은 것이다.
 
"저기 조감독님. 너무 꽉 조여서 좀 아프니까 빨리 좀 끝내주세요."
 
"허허... 연기를 잘 해야 빨리 끝나죠."
 
 
-
 
 
감독의 체위 순서 지정이 끝나자마자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아저씨는 뭐가 그리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박박 쓰면서 베드신 연기에 임했고 그러다 보니 예상 외로 리얼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체격도 좋았고 근육도 제법 있는 편이라 전문 배우를 해도 잘할 것 같아 보였다. 첫 베드씬 촬영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다음 베드씬 촬영을 위해 장소 이동을 하려는데 매니저들이 아저씨에게 접근해 뭔가 대화를 시도하려는 것 같았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아마도 캐스팅 제의가 아니었나 싶다.
 
두번째 베드씬 촬영은 조금 힘들었다. 처음 베드씬이 이별 후에 다시 만나 재회의 섹스를 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베드씬은 즐거웠던 한 때의 모든 정열을 불싸지르는 연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카메라와 조명을 세팅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왔다
 
"저기요. 다른 배우들은 ㅇㅇ 받는다는데 왜 나는 반값이예요?"
 
"다른 배우들은 이틀 찍잖아요."
 
"물어보니까 베드씬 수는 나와 별 차이도 없던데 조금 더 올려주시면 안 되요?"
 
"일단 감독님에게 말씀드려 볼께요."
 
"이게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이번 베드씬은 더 힘들었다. 분량도 거의 두 배에 가까웠고 감독이 요구하는 체위도 버라이어티했다. 아저씨는 서서히 지쳐갔고 여배우도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한 테이크가 끝날 때마다 땀을 비오듯 흘려대는 배우들에게 찬 물로 적신 수건을 갖다 주었는데 다음 테이크가 끝나면 다시 땀을 비오듯 흘려댔다. 특히 아저씨는 생전 처음 해 보는 듯한, 허리에 무리가 가는 격렬한 체위를 소화하느라 매우 힘들어했다. 더구나 이번에도 물건을 고무줄로 꽉 조여놨기 때문에 2중 3중의 고통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 그렇게 조이면 안 아파요?"
 
"갑자기 튀어 나올까봐 그렇죠. 쪽팔리잖아요."
 
조명기의 열기와 두 남녀 배우의 열기 때문에 촬영장은 점점 더워졌고 아저씨의 혼신의 힘을 다한 열연 덕분에 감독도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베드씬 촬영이 끝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삼겹살 집으로 이동했다. 아저씨는 감독 바로 옆에 앉아 페이 인상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거부하던 감독도 워낙에 아저씨가 열연을 펼친 터라 결국 인상해주고야 말았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얼마 남지 않은 분량을 촬영 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나눠줄 돈을 찾아오기 위해 은행에 가서 돈을 인출해 왔다. 촬영장 밖에 차를 주차해두고 현금을 계산하고 있는 동안 촬영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돈 다 찾아왔지?"
 
"네. 지금 나누고 있어요."
 
"근데 배우들 계약서를 써야 되는데 근처에 복사할 만한 곳 있나?"
 
"지금 열두 시 가까이 됐는데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럼 PC방 가서 출력해 올래?"
 
"이메일로 저장돼 있나요?"
 
"나한테 원본 있으니까 타이핑 해서 출력하면 되잖아."
 
"네..."
 
감독에게 계약서 원본을 받아 동네 PC방에 갔다. 계약서는 스텝용과 배우용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았는데 계약서에는 '을'은 '갑'이 원하면 재촬영에 응해야 하고 노출 연기도 거부할 수 없다는 말이 있었다. 나도 이 계약서에 싸인을 해야 하는데 감독이 원하면 벗어야 되는 건가 싶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촬영장에 돌아와 보니 촬영은 거의 마무리 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1박 3일' 간의 촬영 기간 동안 어느 새 친해졌는지 촬영장 구석에서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한 명씩 불러 계약서에 싸인을 받았는데 스텝들은 '갑'이 원하면 노출 연기를 거부할 수 없다는 조항을 보고서도 싸인을 했는데 원래 이런 식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잡일들을 마무리 하는 사이 촬영은 마무리 되었다. 촬영장 청소와 기자재들을 정리하는 사이에 감독은 사람들을 불러 돈 봉투를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금액을 확인 하고는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한 후 차를 타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막 정들만 했는데 이별이라니 조금 아쉽긴 했다. 촬영이 끝났다는 말에 다방으로 온 할머니 사장님은 임대료를 조금 더 달라며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촬영 기간 동안 다방을 찾아 온 손님 수가 대 여섯 명도 안 되었고 촬영팀 덕분에 횡재한 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료가 많이 나왔네, 단골들 불평이 대단하네 어쩌네, 하면서 위자료까지 물어달라는 식이었다. 감독은 이리 저리 사장을 어르고 달래서 협상을 마무리 지었고 기분 좋게 다방에서 빠져나왔다.
 
감독과 함께 사무실로 가서 짐 정리를 마친 후 편집 스케줄을 잡고 집으로 가는 새벽 첫 전철에 올랐다. 밤을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잠은 오지 않았고 정신도 똘망똘망했다. 첫 조감독 참여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는 뿌듯함에서 였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 새 충무로 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에로영화 감독이 되었나 7▶ http://goo.gl/Df564y


글쓴이ㅣ에로영진공 위원 최경진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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