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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여 포르노를 쟁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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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는 여성 비하적이다. 포르노의 여배우들은 남자들을 위해 가슴에 기꺼이 실리콘을 쑤셔넣고 곡예에 가까운 포즈를 취하며, 그들의 작은 애무에도 자지러질 듯 '오바'한다. '여자'로서 그걸 보면 확실히 거슬리고 짜증스럽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라고 핏대를 올려봤자 한 여성의 입장에서는 모멸감이나 심정적 불쾌감보다 표현의 자유가 더 중요할 수는 절대로 없다. 꽤 오랫동안, 본 우원에게 포르노란 어두침침한 하숙집에서 늘어진 런닝구를 입고 낄낄대며 강간을 기획하는 두서너명의 사회 부적응자들의 불쾌한 음담패설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강간할지도 모르는 남자들을 키워내는 일을 막는 것보다 중요할까? 임신의 공포도, 폭력적 섹스의 트라우마도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포르노의 여성들과 진짜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를 서로 혼동하여 언제라도 포르노의 지시에 따라 폭력적인 강간범으로 돌변할지도 모르는 남성들과 어떻게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인가.


> 포르노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포르노는 강간범을 낳는다' 식의 범죄 심리학적인 이유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우리의 거부 반응을 정당화하는 가장 타당하고 쉬운 길임에는 분명하지만 사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이 자신이 용서받을 수 있는 핑계거리로 포르노를 들이미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포르노가 성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 성범죄의 원인이 포르노가 된다면, 도둑질의 원인은 TV 광고가 될 것이다.

포르노를 보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숫자는 슈퍼맨 영화를 보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의 숫자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이 중력을 거부하며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강간이 심각한 범죄이며 저질러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해서는 원하는 섹스를 할 수도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1970년대 미국의 포르노 및 음란물 위원회는 (Nixon's Commission on Pornography and Obscenity) 은 성범죄자들에게서 어린시절에 포르노에 과도하게 노출되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는 사실을 밝혀 내었다. 또한 덴마크에서 포르노를 합법화 한 후에 성범죄의 어떠한 증가 추세도 없었다는 점도 성범죄와 포르노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포르노가 성범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포르노를 금지하자.'라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포르노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남성 중심적 사고관,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여전히 우리를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으며 우리는 포르노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혐오스러운 포르노 영화와 그것을 즐기는 남성들을 참아줘야만 한다. 이런 상황은 분명히 여성들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 전통적으로, 데이트는 여성의 영역이었다. '야경이 멋진 레스토랑에서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여성들에게 꽃과 반지을 선물하는 것'이 남자들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당원들은 없겠지.

개별적인 차이는 조금 있을지언정 여성들은 저런 것들을 '로맨틱한' 것이라고 부르는 데 별 주저함이 없다. 남성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여성들은 로맨스 영화와 멜로 드라마의 세계 속에서 이상적인 데이트의 환상을 구축해오고 있었고, 결국 남성들은 여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녀들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서부터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어딘가에서는 상상력이 없는 남자들이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여성에게 꽃과 반지를 선물하는 것으로 연인을 감동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섹스는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영역이었다. 남성들은 남성들끼리의 성적인 대화와 포르노 등을 통하여 섹스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방식을 구축한다. U.C 버클리의 교수이자 포르노 필름 전문가인 린다 윌리엄스는 그녀의 저서 <하드 코어(Hard Core)>에서 포르노 영화들이 1900년대, 그 발생 초기부터 자신의 내적인 구조들을 튼실히 구축해 왔고 그 구조들이 꽤 견고하게 오랜 시간동안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했는데,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포르노들은 '자극 arousal - 흥분 excitement - 구강 성교 oral sex - 삽입 penetration - 절정 climax - 사정 satisfaction' 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포르노 영화에서의 섹스 장면들은 위와 같은 구조들의 - 물론 종종 그룹 섹스나 동성애 장면 등으로 부분 변주가 되기는 하지만 - 확장 반복이라는 것이다. 린다 윌리엄스는 그러한 패턴의 변주가 '성행위' 만으로 이루어진 필름의 드라마성을 보장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반복적인 포르노의 구조는 포르노 영화 뿐만 아니라 우리의 침실에서도 거의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여성들이 '완벽한' 데이트로 다소 비현실적인 '이벤트'를 꿈꾸는 것처럼 '완벽한' 섹스가 드라마성을 지향한다는 점은 포르노가 실제 성행위에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실이라 하겠다.

물론 로맨스 영화나 포르노 영화들이 단순히 구조의 완성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을 확인시켜주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지는 않는다. 그 안에는 어떤 데이트 상대가 , 어떤 섹스 파트너가 '완벽'한지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과 논리들이 숨어 있고, 지속적인 학습효과를 통해 여성들에게는 돈 많고 피아노를 잘치는 사업가가 이상적인 로맨스의 대상이 되고 남성들에게는 요구에 순응하며, 자신의 섹스 판타지를 이해하는 가슴이 크고 교성이 매력적인 미녀가 가장 이상적인 섹스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성들이 포르노를 통해, 여성들이 로맨스 영화를 통해 환상을 만들어내고 실현하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다. 대리만족은 꽤 오랫동안 영화와 문학작품이 이뤄낸 대중성의 일부가 아닌가.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꽃을 선물하는 것이 대단한 돈 낭비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이나 남성들이 생각하는 섹스의 방식이나 아이디어들이 여엉 맘에 안드는 여성들은 낭패일 수 밖에 없다. 오랫동안 쌓아온 그들의 '좋은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게 힘들다는 건 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본 우원, 뻔한 데이트가 불만인 남성 당원들을 위한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니므로, 문제를 섹스와 포르노에 대한 것만으로 집중시켜보자. 문제는 다음과 같다. ' 난 남자들의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다. 때때로는 그러한 방식으로 전혀 흥분할 수 없으며, 당신이 강간 판타지를 위해 나에게 역할극을 제안하는 것도 - 정상적인 성인들의 세계에서는 파트너에게 역할극(role play)을 제안하는 것이 모르는 여자를 강간하는 것보다 훨씬 일반적이다. -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난 당신이 그런 요구를 당당하게 하게 만드는 포르노가 종종 역겹고 무척 거슬린다.'

물론, 남자들도 이 상황이 억울하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여성들의 성에 대한 취향과 감정은 항상 자신의 제안을 반대할 때만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몰이해와 소통의 단절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국가 권력이다. 그 배려 아닌 배려 덕에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와 오해들은 한번도 공론화되어 평가받거나 비난받은 적이 없고. 남성들은 포르노를 통해 학습한 불분명한 내용들을 '실제'의 여자를 만나서 실수하며 교정받기 전에는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드라마나 보고 질질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혹은 남성적) 경멸을 생각해보자. 여성들의 로맨스에 대한 판타지가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비난 받아 왔는지도 생각해보자.

 
 

유치한 로맨스 영화의 열광적인 팬으로서, 본 우원 이런 사회적 시선들이 무척 불편하고 불쾌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공론화하여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일은 실제로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공론화의 과정속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이 찾고 있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남자들에게서 찾기 힘든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되며 남성들은 여성들이 가지는 환상을 통해 그녀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의 꿈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포르노에 대해서는, 그것을 통해 섹스에 대한 관점을 지속적으로 형성해오고 있는 남성들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단 하나의 입장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금지한다' - 사회가 포르노를 '금지' 하는 동안은 여성들이 그 문제에 대해 개입하거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전혀 없다. '금지'라는 사회적 보호하에 포르노가 남성들만의 전유물로서 존재하고, 그것이 남성들의 세계를 바탕으로 발전하며 소비되는 한은 섹스에 대한 상이한 이해들은 화해하지 못하는 채로 서로 멀리 떨어져서 존재하며 불만만 쌓아가게 할 뿐이다.

여성들이 포르노를 즐길 수 있건 아니건, 여성들의 성욕은 존재한다. 물론 그 성욕이란 낯선 침입자들에게 약간의 저항을 하는 척하다가 금새 초흥분으로 치닫는 종류의 것은 아니겠지만, 당연히 여자들에게도 성욕은 있다.

여자들에게도 성적 판타지는 있다. 그것이 여러 명의 남성들에게 거칠게 강간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당연히, 여성들도 이상적인 섹스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꿈이 있다.

미국에서 여성용 포르노를 제작하는 애니 스프링클, 캔디다 로열등의 여성 프로듀서들은 여성용 포르노를 제작하는 일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녀들이 속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조직 (www.ffeusa.org) 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타인의 선택을 제한하는 일이 집단이 저지르는 가장 큰 폭력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여성의 눈으로도 즐길 수 있는' 포르노를 제작해오고 있다.

 
 
 
여성 포르노 제작자 캔디다 로열과 그녀의 작품들
 

그녀의 영화에서는 여성의 얼굴에 정액을 뿌려대는 성기 확장수술의 남자 배우가 등장하지 않으며, 실리콘으로 터질 듯한 가슴을 과시하는 여배우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아직은 무엇이 '여성을 위한 포르노' 인지의 정의조차 불분명하지만 그녀들은 다양한 시도와 실험 속에서 그 답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녀들의 영화 속에서는 섹스 전의 합의가 일상적이며, 카메라는 성기가 아닌 배우들의 감정을 따라가고자 노력한다.

포르노 시장의 소비자 대부분이 '남성들'인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은, 여성을 위한 포르노가 남성 중심적 포르노를 숫적으로 누르고 산업의 핵심 장르로 떠오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여, 캔디다 로열이 운영하는 팸 프로덕션이 포르노 업계 최대 기업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이유를 들이대더라도 절대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러한 노력이 자신의 욕망을 따라 소비하고자 하는 여성 포르노 관객들을 만들어 내고, 여성 관객들이 소비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사회에 드러낼 수 있다면 , 그리고 그 공개된 욕망이 적당한 통로를 통해 토론될 수 있다면 남자와 여자간의 오랜 오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식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 <허슬러 (Hustler)>의 발행인인 래리 플린트는 법정에서 '나는 좋지 못한 취향을 가졌다는 죄밖에 없다'고 말했다. 취향은 개인적이고, 국가건 사회건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강간 포르노에 매달리는 동료의 우아하지 못한 취향을 놀려먹거나 비난할 수 있지만 그의 욕망이 국가 권력에 의해 좌절되는 것을 즐거워해서는 안된다. 나와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나와 같은 것을 즐기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욕망을 무시하는 것은 나의 욕망이 무시되도 좋다는 암묵적 합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가서 '포르노는 여성 비하적인가' 라는 질문에 답해보자.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 이다. 글을 시작할 때나 글을 정리하려는 지금이나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포르노가 여성 비하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시, '포르노는 여성 비하적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대답해 보자. 그 대답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일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을 이루어 내는것은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다. 포르노를 합법화 하는 일, 은밀한 상담들과 고민들을 사회 전체의 논의로 끌어내는 일은 성과 관련된 남녀의 오해를 종식시키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물론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대명제와도 잘 들어맞는다.

포르노는 힘이 세다. 포르노는 오랜 세월동안 성욕이라는 인간의 가장 강렬한 욕망 중에 하나와 굳게 결합해 왔으며 어쩌면 그것을 통해 남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정돈하고, 명제화하고 패턴화 해왔으며 그 논리로 침실을 주도해왔다. 여성 운동이 시작된 이 후 줄곧, 여성 운동은 여성의 섹스를 여성에게 돌려주자는 거대한 방향성을 가져왔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해야한다. 우리가 어떤 것에 흥분하고, 어떤 은밀한 욕망을 숨겨오고 있었는지 말하고 남성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물론 여성의 섹스에 대해 말하는 것은 남성들의 욕망을 부인하고 비난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와 주장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 마지막 질문에 답해보자. '포르노는 해악인가?' 욕망과 취향은 악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왜곡된 환상을 굳히게 되고 여성들과 소통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한 포르노는 여성들에게 적대적인 해악이다. 하지만 이 해악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이왕에 존재하는 욕망과 즐거움을 부인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여성용 포르노' 산업이 자리를 굳히게 하자. 우리나라 여성들의 성적 환상을 화면으로 옮겨내고 그것을 통해 여성의 욕망이 위로받고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기 쉬워진다면, 그것은 국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절대로 '사회적 해악'이 될 수는 없다.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 주요태그 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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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보이 2014-12-13 15:04:46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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